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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1/2007. 13:53 KoreaTimes ()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내가 수면제를 먹고, 땅 속에 들어가 누우면 그 위에 흙을 덮어 주시겠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의 ‘체리 향기'(1997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는 죽고싶어 안달이 난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바디'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나의 주검 위에 흙을---, 돈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젓는다. 영화는 ‘바디'가 큰 눈을 희번득거리며 애걸하는 일로 일관한다. 얼마나 죽고 싶었으면. 그러나 죽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누구나 삶을 마감하고 싶을 때가 있으므로. 하지만 ‘바디'를 보는 동안 우리는 너무너무 살고 싶어진다.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서둘러 자신의 건강을 챙기듯이, 혹은 나의 절박함을 영화 속 주인공이 모두 가져갔으므로.
다행히 한 노인이‘바디'의 부탁을 수락한다. ‘바디’는 죽음을 완성시킬 수 있게 되어 한시름 놓고(?) 노인과 이 얘기 저 얘기 나눈다. 노인도 젊은 시절 체리 나무에 목을 매러 올라갔다. 그런데--- 아아, 달콤한 체리향기에 노인은 마음을 온통 빼앗겨 죽는 일을 까맣게 잊었다. 노인은 체리를 한 움큼 따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밤이 되자 ‘바디'는 관처럼 파 놓은 흙 웅덩이에 누웠다. 그의 심정 만큼이나 황폐한 돌투성이 무덤 속에서 그는 큰 눈을 껌벅껌벅인다. 그는 세상의 향기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눈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한 가지씩 떠오르는 향기, 향기들---.
아마 그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겐 이승이 아닌 저승의 향기도 있다.
후배가 죽었다. 꽃다운 나이 스무살 때. 화장터 주변은 누린내와 매캐한 향기로 가득했다. 허공에 누런 향기 입자들이 떠다녔다. 영혼에 색깔이 있다면 누런 색일 거라고 생각했다. 뼛가루도 누런 봉투에 담겨 나왔다. 그 봉투 안의 한 줌 가루가 그녀였다고? M.T.를 갔을 때 내가 그녀의 머리를 곱게 빗질 해서 묶어 주었는데.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가 귀여웠던 그녀. 나는 한없이 당혹스러워 따끈한 그 봉투를 그저 가슴에 안고 있었다. 붕어빵 봉지처럼, 호떡 봉지처럼. 매캐한 향기가 후끈한 열기와 함께 내 코를 찔렀다. 영혼들이 내뿜는 향기는 맵다. 이승을 떠나기 싫어서, 너무너무 원통해서---.
‘꽃 향기 가득한 날 다시 와.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잘 가' 하고 후배의 영혼을 흐트렸다.
내겐 ‘그런 향기'도 있었다. 사는 일 뿐 아니라 죽는 일도 생각하라는 향기.
사랑 또한 당신 코 끝에서 시작되었다. 짝을 찾아 헤매던 향기가 드디어 당신의 코 속으로 들어가 도파민, 옥시토신, 엔돌핀 등을 분비시키는 것이다. 뇌생화학자들의 주장이지만,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이도 살짝 풍겨오는 여인의 머리 내음에 반해 결혼을 했다. 그리고 세상은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기 위한 페로몬 향수 시장이 활황을 누리고 있다.
영양이 결핍되면 병들거나 죽게 된다. 삶의 향기가 고갈되면 따분하고 답답해진다. 심해지면 세상은 무채색으로 싸늘하게 식어 향기 결핍자는 미치거나 바보가 된다.
불교의 ‘유마경(維摩經) 향적불품(香積佛品)'에는 온통 향기로 가득 찬 향기나라이야기가 나온다. 그 나라의 이름은 중향성(衆香城), 그 곳 부처의 이름은 향적불(香積佛)이다. 중향성의 땅과 누각, 음식에는 향기가 강처럼 흐른다. 유마거사가 중향성의 보살들에게 물었다.
“향적여래는 어떻게 가르침을 설하십니까?”
“저희 나라 부처님은 문자로 설법하지 않고 오직 온갖 향기로서 많은 천인들과 인간들에게 계율을 지키도록 이끄십니다.”
보살들은 저마다 향기로운 나무 밑에 앉아 오묘한 향기를 맡으며 진리를 깨닫게 되고, 보살의 공덕을 갖추게 된다는 것.
향기 하나에 깨달음 하나--- 향기는, 인생은 그렇게 우리 곁을 지나갔다.
여름이 가기 전 간절한 소망--- 뜨락의 나무 아래 한가로이 앉아, 허공에 떠도는 나의 향기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