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유료 위성방송을 시청하는 까닭에 한국의 KBS 위성 방송을 같이 볼 수 있다. 집의 어른들을 위한 오락과 아이들의 한글 및 한국 문화 체험이 최초 목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즐기는 프로그램이 몇 생기게 되었다. 그 중에서 토요일 초저녁 시간에 방영하는 ‘러브인 아시아(Love in Asia)’프로그램은 가능한 한 꼭 빼놓지 않고 보려는 프로그램인데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혹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한국 사람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서 가정을 꾸리는 아시안 배우자(대부분 여성)의 한국 정착기이다.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한국 농촌 노총각의 결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국제결혼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인데 이 프로그램도 이러한 추세 속에서 국제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 온 동남아 여성이 초기 언어 소통이 전혀 안되다시피 하는 한국 배우자와 함께 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어떻게 정착을 해가는지를 보여 주면서 또 하나의 코리안으로 자리매김하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시청자에게 호소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이다.
***** 동병상련 *****
이 프로그램을 꼭 보려는 것은 필자의 의지라기보다는 감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즉 프로그램이 교육적이어서 가능한 보려 하는 의지적인 측면보다는 왠지 끌려서 보고 싶은 그런 감 정 말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가장 큰 배경은 이들 아시안 배우자들의 한국 살아가기가 우리 이민자들의 뉴질랜드 살아가기와 흡사한 부분이 많아 쉬이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살려고 온 나라이지만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한 채 온 점이나 주류 인종(혹은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이러저러한 차별을 경험하는 것 등이 뉴질랜드에서 우리 한국 이민자들이 겪는 애환을 이들이 우리가 떠난 그 빈자리를 채우면서 비슷하게 겪는 것 같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한국으로 시집 온지 채 2 3년도 안되고 제대로 한국어 교육을 배우지도 못한 동남아 새댁의 한국어 실력을 보면서 과연 내가 뉴질랜드 이민 3년 차에 저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었던가 하는 생각을 거의 매번 하게 되는데 한국에서의 조기 정착은 원활한 한국어의 구사에 있다는 이들의 인식과 노력에 스스로를 뒤돌아 보면서 저렇게 목숨 걸 듯 영어를 배우려 했었나 하는 자문을 또 해 보곤 한다.
***** 올블랙스 팬이 되다 *****
한국에서부터 스포츠 시청을 좋아하는 필자인데 처음에 뉴질랜드에 와서는 도통 취미를 붙일만한 스포츠가 없었다. 정말 들어나 봤나 하는 크리켓(Cricket)부터 시작해서 넷볼(Net ball) 그리고 럭비(Rugby)에 이르기까지(이 럭비가 또 다시 럭비리그와 럭비유니온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치루어진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아니 한국에는 없다시피 한 종목만을 이들 키위는 열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모든 키위가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는 분위기 속에 살다 보니 자연스러이 티비 시청시간도 늘어나고 룰도 하나, 둘 알게 되어 이제는 토박이 키위들 못지 않게 올블랙스(All Blacks: 뉴질랜드의 국기라 할 수 있는 럭비 유니온 국가 대표팀의 별명)의 경기는 한 밤중에도 자지 않고 발가락에 힘을 주어 가면서까지 시청하는 팬이 되었다. 그래서 올블랙스가 빅 게임, 가령 호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상대로 이겼을 때는 환호를 지르면서 좋아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질 경우 덩달아 우울한 기분 속에 며칠을 지내기도 한다.
이러한 필자이지만 가까운 키위들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이민 온 내가 올블랙스를 이토록 마음에서 성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해서 어떤 때는 섭섭하기도 했다. 아직 아시아로부터 본격적인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역사가 깊지 않은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겠지만 이들 유러피안 키위들은 대다수 아시안들이 올블랙스를 자기들처럼 “우리”의 올블랙스 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 그들도 월드컵에서 한국을 응원할 텐데 *****
다시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건너와 결혼생활을 하는 아시안 외국인 배우자들을 생각해본다. 이들은 과연 2006년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참가하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을 어떻게 생각할까? 남편(아내) 나라의 스포츠 이벤트일 뿐 먹고 살기 힘든 한국 이민생활 와중에 관심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축구의 룰도 제대로 모를 수 있는 그들이지만 자신의 남은 생을 보낼 한국이고 그러하기에 하루라도 더 빨리 한국사람이 되고 싶은 그들이기에 한 밤중에 티비 앞에 앉아 한국 남편(아내)과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그들의 의지이자 제 2의 조국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국심이 어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 가족이 지난 밤에 가슴을 졸이면서 ‘대~한민국'을 소리쳐 응원한 이들인데 만약 다음 날,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흉을 시장에서 듣는다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튀기라고 놀려서 울고 집으로 온다면 이보다 더 큰 상처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래 전 일이다. 갓 온 뉴질랜드의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일 때인데 공원에서 몇 가족과 함께 바베큐를 하고 끝날 때 공원을 둘러보니 버려진 쓰레기가 많아 다른 가족들과 한국 이민자의 성실함을 보여 주자는 의견 교환을 통해 즐거운 마음으로 수거를 하고 있는데 백인들이 차를 타고 괴성과 함께 가운데 손가락 질을 하고 홱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때 우리 일행이 느꼈던 기분을 다시 이들 동남아 배우자들이 한국에서 느낀다면 잔인한 반복이라는 생각이다.
***** 세계 시민(Cosmopolitan)을 향해서 *****
거창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인종, 민족, 종교의 다름을 떠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사람은 모두 또 같은 지구촌 이웃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뉴 질랜드에 살면서 해야 할 의무는 피하면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 받으려는 태도를 우리 한국인 이민자들이 가진다면 뉴질 랜드라는 국가는 철저히 내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용대상으로만 인식될 뿐, 우리의 국가라는 공동체 개념으로 다가 가지 못할 것이다. 이럴 경우 All Blacks 럭비게임은 뉴질랜드에 사는 키위들의 축제이고 뉴질랜드에 살지만 우리들의 이번 축제는 월드컵 축구만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월드컵 한국 대표팀은 우리의 대표팀이지 저 아래 못사는 나라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한국인과 국제 결혼한 이들 동남아 이민자들의 응원을 받을 이 유가 없는 팀으로 남을 것이다.
과거 감독이었던 히딩크씨는 한국 명예 시민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명예시민이니까 그렇지만 사실 이 나라 영주권 재입국비자(Returning Resident Visa) 기준으로만 본다 면 히딩크씨는 한국에 어떤 베이스도 없어서 2년 뒤에 영구 영주권은 커녕 가지고 있는 영주권도 날아갈 케이스이다. 현재 감독인 아드보카트씨의 경우 어찌 된 일인지 월드컵 16강 청부 사라는 자신의 직분은 잊은 채 월드컵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느낀 바를 모은 수필집부터 발간하여 인지세를 챙기고 있다. 하기야 16강 실패하면 누가 그 사람 책을 사겠느냐만.
뜬금없이 전ㆍ현지 한국 축구감독 흉보는 것은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축구를 파는 상인들을 우리편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갈수록 척박해져 가는 한국 농촌의 한 축을 실질적으로 담당해 나아가면서 새로운 이웃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들 아시안이민자들을 그저 똑같은 우리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보듬어 안는 것이 훨씬 절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모국에 있을 때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우리 코리안 뉴질랜더(Korean New Zealander)도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