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장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기억장치

0 개 722 조기조

나는 정보시스템을 공부하고 강의했다. 정보시스템은 정보를 만들고 제공하는 시스템이니 IPO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소위 입력(input), 처리(processing), 출력(output)이라는 3 과정이다. 입력하면 일단 저장되어 처리하고, 출력해도 저장되어 있어야 하니 저장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저장에 문제의 소지가 많다. 저장공간인 메모리와 데이터베이스(DB)가 정보시스템의 속도와 성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입력은 5감이라는 센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뇌에서 처리하고 뇌에 저장한다. 그래서 기억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의 출력이란 우선, 쓰고 말(노래)하는 것이다. 


6ce27832bb6550ba1bc024945070c6dd_1620685870_5904.png
 

오래된 하드디스크에는 배드 섹터가 생긴다. 하드디스크 같은 기억장치는 레코드판처럼 돌아야 헤드(레코드의 바늘 같은)에서 읽을 수 있기에 많은 트랙을 여러 구역인 섹터로 나누어 저장 단위로 하였고, 여기에 번지(주소)를 부여하여 관리하고 있다. 마치 대단지 아파트를 동과 층, 호로 나누어 관리하는 방식과 같은 것이다. 이 중에 물리적으로 손상이 되어 기억을 시키거나 불러내지 못하는 곳을 배드 섹터라고 한다. 우리의 뇌에 배드 섹터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충격을 받거나 뇌혈관이 손상되지 않는다면 평생 쓰는 저장장치이니 결코 공장에서 만들 수 없는 저장장치를 가진 것이다. 


이젠 완연한 봄이고 곧 여름으로 들겠지만 지난 3월에는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낮엔 덥고 밤이면 춥고, 양지는 따뜻하고 음지는 추웠다. 그래선지 머리가 무겁고 맑지 않았다. 잠이 덜 깬 것 같은 느낌에 몸도 마음도 무기력하였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었으나 인터넷에 찾아보니 두불청(頭不淸)이라는 병 같았다. 영어로는 ‘brain fog’라고 하는 모양이다. 몇 년 전부터서 건망증처럼,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 것도 걱정이었다. 얼굴은 떠오르는데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고 가사를 몰라 노래를 부르기가 어렵다. 치매라면 어쩌나 싶어 더 나빠지기 전에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두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검사는 쉽지 않았다. 지시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는지와 계산, 논리, 색 인지, 기억력 등을 묻는 다양한 검사였다.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고는 안보고 그걸 다시 그려보라는 것까지 오랜만에 보는 시험은 힘이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열 개가 훨씬 넘을 것 같은 물건들을 들려주고 그걸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라는데 잘해야 대여섯 개를 기억할까?


하여튼 치매는 아니라 해서 자신감을 얻었지만 이제 기억하고 저장하는 힘을 단련해 보기로 했다. 메모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뇌에다 기억해 보려고 한다. 약도 침도 있다는데 스스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간단하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을 하는 것이다. 햇볕을 쬐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 매일, 만보(萬步)는 기본으로 채우기로 했다. 전해오는 건강명약이 만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날이 달라지는 것 같다. 불면증이 있을 리가 없다. 밥맛이 없을 리가 없다. 몸이 찌뿌둥할 리가 없다. 허리가 아플 리가 없다. 뛰다 걷다 하고 가끔은 언덕을 오르기도 한다. 돈 안들이고 내 발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장한 일인가? 소식다작(少食多嚼)에, 소차다보(少車多步)에, 일소일소(一笑一少) 맞다. 


컴퓨터의 출력은 화면에 보여주고 인쇄하거나 스피커로 들려주는 정도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은 엄청난 출력을 한다. 은퇴 후에 더 많은 입력과 출력을 하려고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적어보았다. 너무 많아서 우선 몇 가지를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피아노 연주다. 벼르고 벼르다가 시작했는데 참 잘했다 싶다. 서두르지 않고 계속해서 대중가요 정도는 자연스럽게 연주하도록 해 볼 생각이다. 두 손을 따로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겠다. 누가 정했는지 기호로 고저, 장단, 강약에다 서로 어울리는 화음을 배치시키니 빠져들고 있다. 매일 감탄이다. 



어쩌다 또 시낭송 강의를 듣고 있다. 어줍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 ‘엄마걱정’은 외우고 있다. 외워보려고 몇 백번은 더 읽었을 것이다. 첼리스트 나탈리 망세(Nathalie Manser)의 ‘Les Anges(천사들)’를 배경으로 낭송해보니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또 ‘해는 시든지 오래’인데 열무 30단을 이고 시장에 가셔서 안 오시는 엄마를 기다리며 ‘찬밥처럼 방에 담겨’ 천천히, 천천히 숙제를 하는 소년이 된다. 그립고 죄송스러운 엄마를 생각하며...... 중학생 때 숙제로 시작한 영시 두 편은 아직도 암송한다. 한 줄을 까먹었다가 새로 찾아 익혔다. 한 달 전에 만개했던 벚꽃을 보며 또 부활절에 다시 생각나서 그걸 글로 적어볼까 하다가 미루고 말았다. 시인은 70평생에서 20년을 빼니 겨우(?) 50년이 남았다고 엄살이다.(And take from seventy springs a score, It only leaves me fifty more.) 내게 50년이 남았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기억에는 이런, 몸과 머리를 쓰는 일들이 도움을 준다. 50년은커녕 30년이나 남았으면 좋겠다 싶은데 살아 움직이는 동안은 제대로 된 정보시스템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Now

현재 기억장치

댓글 0 | 조회 723 | 2021.05.11
나는 정보시스템을 공부하고 강의했다. 정보시스템은 정보를 만들고 제공하는 시스템이니 IPO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소위 입력(input), 처리(processin… 더보기

펜트하우스 유감

댓글 0 | 조회 1,113 | 2021.04.28
“100층 펜트하우스의 범접불가 ‘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욕망의 ‘프리마돈나’, 상류사회로의 입성을 향해 질주하는 ‘여자’와 채워질 수 없는 일그러진 욕망으… 더보기

미나리꽝

댓글 0 | 조회 2,038 | 2021.04.13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속풀이나 해장국으로 복국을 즐겨 먹는다. 요리사가 피를 뽑아 물에 잘 헹구어 해독을 한 복을 삶아 두었다가 국물에 삶은 복 덩어리를 뼈째 넣… 더보기

변종 바이러스

댓글 0 | 조회 1,100 | 2021.03.24
그땐 컴퓨터 바이러스가 호흡기로 옮고 그 백신이 알약이나 주사약인 줄로 알았다. 요즈음, 호흡기로 옮는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것이 조직에도 붙고 사회에도 번진다는… 더보기

가족, 그 고귀한 선물을

댓글 0 | 조회 1,630 | 2021.02.23
지역의 한 방송에서 설날에 나갈 멘트를 해 줄 수 있겠느냐고 해서 감히 영광이라고 했다. 독후감처럼, 감명 받은 책의 구절을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할 말을 덧붙이라… 더보기

먼 나라 어느 시장의 연설

댓글 0 | 조회 1,726 | 2021.02.10
지구 반대편에 있는 말과 글, 입고 먹고 사는 것이 전혀 다른 어느 도시, 시장의 시정연설을 들었다. 다함께 잘 사는 내 고장, 다함께 잘 사는 우리나라를 넘어 … 더보기

솜바지를 사고, 또

댓글 0 | 조회 1,706 | 2021.01.27
2년 전 겨울 들며 솜바지를 샀다. 거위 털, 오리털이 아닌 인조 솜이다. 10만원을 주고 3개를 사고도 돈이 남아, 이건 싸구려구나 했는데 입고 나가도 촌스럽지… 더보기

더불어!

댓글 0 | 조회 1,296 | 2021.01.12
세 가지 거짓말이라고 있었다. 세상이 변하니 이제는 안 맞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상당기간은 통했다. “장사가 안 남기고 판다.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 처녀가 시… 더보기

김치 예찬

댓글 0 | 조회 1,037 | 2020.12.22
김치 없이 살 수 있겠는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지만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이쯤 되면 중독이라 해도 심한 중독이다. 나는 쌀밥에 젓갈과 김… 더보기

어느 일간지의 자살을 보며

댓글 0 | 조회 1,426 | 2020.12.08
이 1896년이다. 이 보다 25년 전인 1871년에 처음 생긴 일간신문 솔트레이크 트리뷴(The Salt Lake Tribune)이 150년 만에 2021년부터… 더보기

홍합 우려먹기

댓글 0 | 조회 1,547 | 2020.11.24
손님이 북적이는 한 중국집은 얼큰한 짬뽕을 시키면 홍합을 껍데기 채 수북이 얹어 준다. 알을 까서 넣었다면 별로 표가 안 날 것이 인심 좋고 넉넉해 보여 사람들이… 더보기

랜선 이모, 랜선 국민

댓글 0 | 조회 1,080 | 2020.11.10
정보기술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내가 ‘랜선 이모’란 말이 회자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누가 물어보기 전에 얼른 찾아보고는 뒤로 나자빠질 … 더보기

레몬과 멜론

댓글 0 | 조회 1,385 | 2020.10.29
나이 탓인지 어떤 물건이나 이름, 단어가 가물가물하면서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독립영화제로 유명한 선댄스 영화제를 만든 사람, 로버트 레드포드는 입에 돌기만… 더보기

AESA 레이다 파동

댓글 0 | 조회 1,898 | 2020.10.13
중학생 때 광석검파기라는 것을 조립했다. 전원이 없어도 리시버를 통해 모기소리처럼 들리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전파라는 것에 고마워했다. 다른 방송 채널로 … 더보기

마스크 사피엔스

댓글 0 | 조회 1,162 | 2020.09.22
융합(融合)이라는 말과 수렴(收斂)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영어로는 컨버전스(convergence)로 통하지만 물질이나 정신 등이 합하여 새로운 하나가 되는 것… 더보기

틱톡소리

댓글 0 | 조회 1,068 | 2020.09.08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언제나 같은 소리 똑딱똑딱 하루 종일 일해요, 쉬지 않고 일해요.” 이 노래를 놀림노래로 부르면 ‘똑딱똑딱’만 반복되는 느낌이다. 째깍… 더보기

MLCC(적층 세라믹 커패시터)

댓글 0 | 조회 1,334 | 2020.08.25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그녀와의 사랑이 켜켜이 묻어있다. 그때 지리산 계곡의 우리 집에선 물방앗간에서 돌리는 수차에 횟대를 연결해 발… 더보기

젓가락 예찬

댓글 0 | 조회 1,405 | 2020.08.11
조그마한 몸뚱이 위에 철길 같아 보이는 긴 두 줄이 있어 그게 무어냐고 물으니 젓가락이라 하더란다. 그림을 잘 그리는 어떤 사람이 한 스님의 인상을 스케치해서 준… 더보기

스마트로 가는 중소기업

댓글 0 | 조회 1,064 | 2020.07.29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업 종사자의 87.9%가 일하고 있다(2014년 기준). 중소기업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발전하… 더보기

데이터 댐

댓글 0 | 조회 1,582 | 2020.07.15
그랜드 캐년을 보고 남쪽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오는 길엔 후버 댐을 건넌다. 콜로라도 강을 막은 후버 댐의 콘크리트 둑이 바로 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댐 아래로 … 더보기

NAVER, 나베르 아닝겨?

댓글 0 | 조회 1,312 | 2020.06.23
G2, 미국과 중국이 겨루고 있다. 무역적자가 큰 미국이 그 원인과 해소 방안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국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중국이 미국에 많은 물건을… 더보기

공인인증서

댓글 0 | 조회 2,003 | 2020.06.09
서류에는 서명 날인을 하는데 도장이 없으면 지장(指章)을 찍었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서명(사인이라는 signature)으로 인증이 가능했다. 그래도 중요한 문… 더보기

페르소나(Persona)

댓글 0 | 조회 1,621 | 2020.05.27
J.C. 페니가 파산신청을 했단다. 그럴 때가 온 것이다. J.C. 페니는 텍사스 주의 근교 북부인 플레이노에 본사를 둔 미국의 백화점 체인이다. 이 회사는 미국… 더보기

아마존의 서비스 정글

댓글 0 | 조회 1,541 | 2020.05.12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더니 책도 서점도 없이 책을 팔아먹은 최대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 닷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새 책은 물론 헌책도 사고 팔 수… 더보기

OLPC로 날아라!

댓글 0 | 조회 1,834 | 2020.04.22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등교를 못하고 지난 4월 20일 초등학교 까지 모두 온라인 강의를 시작하였다. 입학식을 못한 신입생은 화면에서 처음 선생님을 보는 것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