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가난해서 절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물이 가난하면 참기 어려운 2차적인 고통을 만듭니다. 그 가난의 결과가 자기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더 큰 결과를 부르게 됩니다. 사회적인 정의를 벗어나 각종 사건과 범죄를 만듭니다.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고 폭력이나 살인을 통해 가난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가난은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업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는 아무 쓸 때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 교민사회에 함께 인연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가 얼굴이 틀리고 출신 성분도 다르고 촌수가 없을지라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진리적으로 볼 때는 지위의 높고 낮음, 미인과 추남, 부자와 가난한자, 신분의 빈부귀천이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노력하고 일하고 참고 견디며 미래를 위해 꿈꾸며 희망을 이루어 갑니다.
오늘 나보다 못나고 못가지고 지위가 낮다고하여 무시하고 외면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교만하다 보면 나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하고 인색하지 않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야 합니다.
유명한 중국의 철학자 ‘장자’가 친구 ‘혜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혜자가 장자에게 면박을 줍니다. “자네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야” 그러자 장자가 반박합니다. “자네가 쓸데 없음을 알기에 내 애기는 ‘쓸데 있는 것’이네. 예를 들어 이 땅위에 자네가 서 있는 자리, 즉 설 수 있는 땅은 겨우 발바닥 밑 땅 뿐이지. 그렇다고 나머지는 모두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발바닥 이외의 땅을 다 파 버리면 자네가 선 땅덩어리는 어찌 되는가?”
쓸모 있는 것만 남기겠다. 하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제외한 모든 땅을 다 파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꼼짝달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결국 자신이 서 있는 땅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쓸모 있음은 쓸모없음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서 남을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뜻이 맞지 않는다고 치고 박고 싸우면서 서로 지구에서 사라지라고 저주의 말을 퍼붓기도 합니다.
붓다의 말씀처럼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라고 하신 연기의 뜻을 모를 때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폭력적으로 자신의 무지를 들어내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상대적 가치로 세상을 봐야 합니다. 절대적인 자기만의 우월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인 우월성일 뿐입니다. 쓸모없다는 것,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도 언젠가는 쓸모 있는 것,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장점을 발견하고, 고정되고 편협한 생각,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희망이 보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존재가 필요합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 합니다. 또한 나는 다른 분들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맑고 부지런하고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희망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의 희망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자존이어야 합니다.
다른 존재를 사랑하므로 나도 모든 존재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정말 쓸모 있는 사람” 이라는 마음까지 버리고 함께 하고자 할 때 사랑과 자비가 충만해 집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실력을 키워 자신을 위해 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했더니 위대해 졌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