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이달 초에 한국에서 오클랜드로 이사 온 동생이 한국 화장품을 보내 왔다. 그 화장품들 중에는 지인에게 선물할 화장품도 있었다. 동생 심부름도 할 겸 오클랜드에서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연세에 비하여 무척 젊고 아름다우신 분. 예전에 파미에서 사실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시다. 깔끔한 성품에 깊은 신앙심으로 운동까지도 열심히 하시니 심신이 젊을 수밖에 없을 거 같다.
동생의 선물과 함께 순무 깍두기를 조금 들고 갔는데, 당신이 정성껏 만들어 놓으신 레몬 티 엑기스를 선물로 주셨다. 내가 노후 복이 많다는 덕담까지 덧붙이셨다.
“여럿이서 함께 활동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혼자가 되면 외로워요, 심하면 우울해 지지요. 지향씨처럼 글 쓰면서 혼자 활동하기를 즐긴다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네요. 늙어서 외롭지 않은 것이야 말로 큰 복이지요.”
그분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내가 복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노는 것을 즐기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 되었고, 이젠 혼자 있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단단해져 있다.
10여 년 전에 내 주위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나가고, 마지막으로 내 동생까지 한국으로 갈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생이 가고 난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을 빨리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서서히 터득해 나간 것 같다. 그 결과 이제는 혼자 노는 게 아무렇지도 않고, 혼자 있는 게 편할 때가 많았다.
사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카톡 친구도 있고, 내 글을 읽어 주는 독자도 있다. 매일 계란 프라이를 해주는 남편도, 저녁을 함께 먹는 가족도, 비디오 톡으로 만나는 손녀도 있다. 가끔 만나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지인도 있다.
요즘 나의 하루 일과가 참 단순하지만, 나는 이 단순함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약 먹고, 108배하고, 명상하고, 밥 먹고, 책 읽고, 오디오북 듣고, 산책하기를 하면서 지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며칠 전부터는 딸기도 따 먹고 있다. 오늘도 몇 안 되는 딸기지만, 딸기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내일은 머위를 잘라서 먹을 예정이고, 이제 갓 올라온 깻잎도 때가 되면 따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주에 지인이 심어 준 호박 모종들도 얼른얼른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일주일 중 이틀 동안은 넷플릭스에서 연재되는 한국 드라마도 본다. 요즘에는 슈룹을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달에 두 번 쓰는 칼럼 준비도 해야 한다. 칼럼 한 번 쓰려면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과 함께 공감이 될 수 있도록 내 생각을 제대로 잘 전달해야 한다.
지난 호의 내 칼럼은 생전 써보지도 않았던 시를 적었다. 도저히 내 안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슬픔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보고 느낀 걸 다 적기도 전에 내가 먼저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목뼈에 염증이 있어서 불편했었는데, 10·29 참사 현장을 보고나서 목에 칼이 스치는 듯 아프고 뒷골이 쑤시고 무거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떨리고 추워서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약도 듣지를 않았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화를 삭여야 되는데, 참사에 대한 그들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분개를 하고야 말았다. 결국 시인도 아니면서 시답잖은 시로 내 속을 드러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내 마음에 동조를 해준 독자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이렇듯 나는 혼자 놀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사랑한다. 내가 혼자 고독한 작업을 하고 있기에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혼자라도 혼자가 아닌 것이다.
오늘 만나 이야기를 나눈 그분도 나의 이런 마음을 읽고 계시기에 나에게 복이 많다고 하신 거 같다. 그런데 난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뜨끔했다. 요즘엔 예전처럼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조차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늘어질 데로 늘어진 시계추 같다.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하면서 다시 어린애가 되었다고 즐거워했었는데, 나는 지금 완전 호기심 없는 사토리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애 늙은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손녀 유은이와 함께 놀려면 제대로 아기가 되어야 하는데.
유은이는 벌써 크레용이 아닌 볼펜으로도 선이 그어지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괴성을 부르면서 신나게 종이에 마구잡이로 선들을 긋는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 환호인 것이다. 이런 열정이 나에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미는 유은이가 일어나는 시간부터 밥 먹고 씻고 놀고 잠자는 시간까지 규칙적으로 지킬 수 있는 습관을 들여놨다. 잠자는 시간이 되면 의례히 자기 방의 침대에 들어가는 줄 안다. 그 안에서 혼자 뒹굴다가 잠이 든다.
백일 전부터 철저하게 길들여 놓았던 것이다. 유아교육과를 나와서 유치원 선생을 한 것이 유은이를 키우는데 크게 공헌을 한 거 같다.
어디 그뿐이랴. 카이로 프랙틱 공부를 하였으니, 의학에 대해서도 빠삭하여 유은이를 키우면서 당황 한 번 하지 않고 지냈다. 그렇게 비싼 공부를 한데 비하여 지금은 또 다른 직업을 선택하였으니, 맹모삼천지교가 따로 없다. 유은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유은이의 시간에 맞춰서 새로운 직업으로 바꾼다고 하던데, 앞으로 직업을 얼마나 바꾸려는지.
나도 늦게나마 잠자는 시간부터 규칙적으로 바꿔야겠다. 108배를 아침 9시에 하고 있는데, 그 시간을 재조정하고, 그 시간을 기점으로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글 쓰는 시간 역시 정해놓고 나아가야 되겠다.
죽는 그 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면 심신이 건강해야하지 않은가? 요즘 저녁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어 약 처방을 받았는데, 그 약을 먹으면서 잠드는 시간 조절부터 해야겠다. 제대로 된 시간표를 짜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부처님은 병이 있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다. 병이 없으면 탐욕에 빠지기 쉬우니. 그냥 병과 함께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 말은 병도 좋은 친구라는 소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서로 도움을 주면서 함께 한다.
지금 나는 나의 고독이 주는 선물을 아주 감사히 받고 있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규칙적인 생활로 병을 친구 삼아 겸손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갈고 닦아 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잘해야 고독도 긍정의 결실을 주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108배를 시작하면서 내 생활태도를 규칙적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오늘 그분이 나에게 칭찬을 하신 것이다. 마음을 바꾸면 주위가 바뀐다고 하더니 그분을 찾아뵙게 될 줄이야. 오늘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그분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나에게 능동적으로 고독을 대면하게 해주신 그분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시간표대로 운동을 하고,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계실 것이다. 신앙의 힘까지 합하여 오늘도 엄습해오는 외로움과 맞대면 하면서 꿋꿋하게 정진해 나가실 것이다.
그분은 고독이 주는 선물을 잔뜩 받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곁다리로 그 분과 함께 선물을 받아야겠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렇게 돼야지... 그렇게 될 지어다!” 내 안의 목소리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