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돌고 도는게 바로 돈 이어서 그 호칭도 돈 이란 말인가.
수없는 사람들의 손과 손으로 옮겨 다니는 것 이기에 위생적으로 보면 더럽기 짝이없는게 돈이다. 그렇더라도 어디를 어떻게 누구의 손을 거쳐서 내 손에 들어왔는지 그런걸 심각하게 따지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손에 주어지면 무조건 반갑고 좋아지는 그것, 그게 바로 돈의 마력이다. 돈으로 하여금 생명을 연장하기도 하지만 누구는 돈 때문에 미리 죽기도 하니 그 양면성의 위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더구나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행세하는 시대이니 뭐 묻은 돈이라고 싫어할 사람들은 없다.
얼마 전에 본 뉴스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요즘 일본에서는 심심치않게 버려진 현금다발을 발견한다고 했다. 그게 전부 쓰레기 집하장에서 생기는 일인데 그 액수가 만만치 않았다. 물같이 흘러야하는 돈이 오랜동안 한 곳에 정체되어 있다가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짐작컨데 노인들이 꿍쳐두었던 쌈짓돈 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경제적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말도 들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있는 일이라고 들었기에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쩌다가 그 귀한 돈이 쓰레기 더미에서 딩군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인 한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였다. 혼자 남겨진 남편께서 허탈하게 웃으며 하는 말을 들었다. 아내가 떠난 뒷자리를 정리하려니 예서제서 꼭꼭접은 지폐들이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양말 속까지 뒤집어보고 버려야 한다고 해서 웃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우리들 세대의 여인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가 있는 일이었다.
지금 살아보니 세월가고 나이 먹는다는게 그냥 되는게 아니었다. 건강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시대도 아니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노후자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세대가 아닌가. 적게쓰고 모으지 않았으면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인들 해냈겠는가.
보통의 주부라면 조금씩이라도 뒷돈을 챙겨두어야 하는게 너무도 당연했다.
딸을 시집 보낼때 남편들은 혼수로 가전제품 등 큰 것 몇가지로 끝인줄만 안다. 그렇지만 살림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그런게 엄마가 혼자서 감당하는 몫이다. 그런 시작에서부터 나열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다.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꼭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남편들의 특징이지 싶다. 은연 중 여인들의 뒷주머니 사정을 알기 때문이 아닐는지 . . .
남동생이 집을 크게 늘려 장만을 한다기에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 줬다. 그랬더니 답이 의외여서 놀랐다. 여지껏 벌어다가 다 맡겼으니 아내가 한몫 단단히 하지 않겠느냐는 것 이었다. 과연 동생댁이 돈 관리를 잘해서 한 몫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남자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다니 놀랄 뿐이었다. 시대가 습관을 만들었고 남편들은 모르는 척 시침을 떼다가 덕을 보는 것이었다. 월급봉투 관리가 그리 어려운 것이었다. 박봉일수록 아내에게 전부 맡긴다는 남편들도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돈은 버는 것도 어렵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한다.
금쪽같이 키운 아들 둘은 서울로 올라갔다. 삶이 고달프고 외로워도 자식들 기다리는 재미로 날을 보낸다. 일년에 딱 두번 명절 때라야 자식 손주를 볼 수 있으니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짧은 순간의 황홀한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이 애처롭다.
옛이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마음은 늘 변함없이 그렇다.
차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며느리들의 손에는 큼지막한 보퉁이들이 들려 있다. 그들에겐 그리 반갑잖은 물건들이었다. 시어머님 앞이니 어쩌지못해 고마운척 받아 차에 싣고 돌아왔다. 시커먼 비닐봉투조차 맘에 걸리는 큰 며느리였다. 차가 집에 도착 하자마자 그녀는 그 짐부터 내려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남편이 눈치 못채도록 조심하는걸 잊지는 않았다.
그 속에는 보나마나 봉지봉지 잡곡들이며 떡쪼가리들 뭐 시시한 마른나물 들일 것이다. 일년농사 애쓰고 땀흘려 지은거라며 맛나게 먹으라는 시어머니의 당부가 떠올랐다. 아주 조금 마음이 불편했지만 얼른 털어버렸다. 먹지도 않을걸 뭣하러 끌고 집에 들어갈 것인가. 얼른 치워버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보나마나 작은 동서도 그리 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웃음이 나왔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해 왔다. 검은 봉투를 쓴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작은 며느리 눈에 보이면 안되는 특별한게 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돈봉투, 일년내내 조금씩 모은 것이라며 잘 보태 쓰라는 말씀이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잘 받았노라고 우물쭈물 대답을 했지만 가슴이 떨려왔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수화기를 팽개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이 동그래서 쓰레기더미를 헤치고 버린 봉지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시어머니의 땀배인 이백만원은 누구의 것이 되었을까?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맘아팠던 어느 큰며느리의 고백이었다.
그 며느리는 그 날 이후 시어머님께 정말 좋은 며느리가 되었을까?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일화이긴 하지만 나는 그 뒷담화가 듣고 싶었다.
재산이 없어서 자식에게 버려진 노부모가 있는가 하면 캥거루족 자식에게 시달려 그들 몰래 귀농으로 도망친 부모도 있는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은 가끔씩 이런 말을 하며 나를 웃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줄꺼없어 편하겠다고 . . . 남기고 가면 싸움질이나 할테니 잘된 일이라며 남은생 편하게 살라고 한다.
덧붙여 자기들도 그리 살테니 미안해 할 것도 없다고 안심까지 시켰다.
H형님이 생각났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시니 부담없이 말을 할 수가 있다. 30대의 이혼녀인 그 분은 억척으로 남매를 잘 키웠다. 둘 다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 이었다. 자식농사 잘 해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했다.
이 곳으로 아들이 먼저 떠날 땐 거금 몇억을 손에 쥐어 보냈다. 몇년 후 딸에게도 그만한 돈을 주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아들은 자기 몫을 동생에게 뺏겼다고 늘상 투정이었다. 그 많은 돈을 해 준 어머니가 고마워야 하는데 서운함 이 먼저였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뼈빠지게 번 돈 이었다. 당당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들 보기가 미안해서 함께 살자고도 못했다.
매일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한다는 그 형님께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드려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어째서 돈 많은 형님은 밤잠을 설치고 나같은 사람은 두발뻗고 편히 잘까요? 그런 농담으로 얼버무리기만 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 부시시한 얼굴로 만나면 위로해 드리려고 카페에서 내가 커피를 샀다. 가끔씩 바람도 쏘이러 나가면서 형평성의 세상이치를 생각하곤 했다. 정말 없어서 그런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있는데 더 가지려는 욕심 때문이라니. . .
그래서 오래 살지 못하고 갑자기 쓰러진 것일까? 우리들 앞에선 오만의 끼가 하늘을 찌를던 분이 었었다.
돈. 정말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쓰면 독이 되는게 돈이다.
보통 사람들은 셈도 어려운 거금문제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떠들썩한 요즈음이다.
잘 살아야 백년 인생인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는지가 궁금하다.
제발 좋은일에 써 달라고 숨겨진 돈 다발들이 울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