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번째 짐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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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번째 짐싸기

0 개 4,505 코리아타임즈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어느 일요일 저녁 아이비와 사이먼은 당시 오클랜드 시내에서 선물가게 하시던 할아버지 집으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그 분 집은 한국 유학생들이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고를 개조한 공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 조그만 간이 부엌이 있었고, 차고에 카펫을 깐 거실 그리고 달린 방 하나, 임시로 만든 샤워실이 있는 공간이었다.

급하게 이사하느라 카펫트는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아 눅눅한 냄새가 풍겼고 윗층에서 학생들이 뛰어 다니는 소리들로 혼란한 분위기였다.

당시 165불을 주고 (전기세는 별도로) 식사는 우리가 해서 먹는 조건이었다.
싸지는 않다 생각했지만 그나마 그 전 집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재미있게 지냈다. 처음에 심하게 고생하면 그 다음 어려운일은 좀 덜 힘들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일요일이면 아이비와 사이먼은 친구 SB씨랑 그의 남동생 (당시 영어 연수하러 왔었다)을 집에 불러 신문지를 깔고 아이비가 손수 빚은 주먹만한 만두로 만찬을 벌였다.  

그당시 이민자들은 신문지를 깔고 음식을 먹어 보지 않고는 이민 생활의 참 맛을 모른다고 우스게 소리를 하곤 했다. 메뉴는 만두 한가지였지만 구워 먹고 쪄 먹고 만두국도 해먹고, 그저 만두를 먹을수 있음에 행복해 했다.

그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안되어 한국에서 온 손님, 이실장님도 들렀었고…

참 많은 추억들이 필름 지나가듯 아이비의 눈앞에 지나간다.

그 집에 몇 달 살면서 느꼈던 많은 것들 중에 잊혀지지 않는 건, 어린 나이에 뉴질랜드에 와 있는 몇몇 유학생들의 문제였다. 밤늦게 귀가 하는 학생들이 새벽마다 대문으로 못 들어오고 밤고양이처럼 차고에 붙은 우리방 창문을 두들겨대며 문을 열어 달라는 바람에 사이먼과 아이비는 잠을 설치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사람의 인정상 야밤에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수는 없었고..

아무튼 그런 경험들 때문인지 한국에 계신 기러기 아빠들 한테는 미안하지만 어린 아이들만 유학을 보내는 것 보다 엄마가 따라오는 게 조금은 더 나은 결정들이 아닌가 하는 것이 아이비의 소견이다.

(온몸이 파래져가요)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남편의 귀와 입술과 손톱 발톱들이 파래졌다.  나 또한 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우리는 타국에 이민와서 드디어 우리가 병까지 앓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슬펐다.  그래서 서로 부둥켜 안고 한참을 애통해 하며 푸념과 한탄으로 그날 밤을 지샜다.

이민 온지 얼마 되지않아 벌써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나, 한국으로 돌아 가야하는건가 자신감도 잃어가고..

다음날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난후 집안 청소를 하던 나는 얼마전에 구입한 파란색의 이불 커버를 빨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데 밖으로 퍼런물이 줄줄줄 흘러내리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나는 아!!! 하고 큰 안도의 한숨을 돌렸고 그 전날에 둘이서 서로 부둥켜 안고 슬퍼하던 모습이 떠올라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날 오후 아이비는 우리가 병든 것이 아니라 이불 커버에서 색이 빠져 나온 것 였다는 사실을, 학교 다녀온 사이먼에게 아주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반갑게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이런 불량품을 팔다니 갑자기 화가 났다.  하기야 그다지 비싼 제품이 아니니 그렇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중국 제품의 질이 좋지가 않았다.

그날 밤 사이먼과 아이비는외국에서 살려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며, 파란 물감이 많이 빠져나간 그래서 물이 더 빠지지 않는 색이 바랜 이불이라도 덮고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마음이 편안하니 조금의 불편함이나 부족함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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