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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007. 14:32 KoreaTimes ()
뉴질랜드 이민기
11년전 처음 이민와서 줄곧 지금까지 사이먼과 친구 S씨 그리고 J씨네 가족은 그 흔한 다툼 한번 없이 친분을 잘 유지해 오고이다. 어제는 J씨네 들렀다가 6년전 세부부가 공원에서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들을 보았다. 아! ~이렇게 우리가 풋풋했었나 ! 사진들을 손에들고 보면서 연거푸 되내이고 새삼 시간의 흐름을 인식했다.
그 사진을 보다보니 그 사진을 찍을 당시인 2001년으로 돌아가게된다.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었던 시절.
남편의 절친한 친구 S씨의 결혼으로 이제 커플끼리 자주 시간을 함께했다.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나눠가며 세쌍의 부부가 모일때면 좁은 아파트(Housing New Zealand에서 구한 서민 아파트) 안에는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S씨네는 첫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 부부는 여전히 아이없이 신혼부부처럼 지냈지만 은근히 언젠가는 아이를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부부는 숙제를 미루어가고있었다. *^^*
그해 11월 사이먼과 아이비는 팔머스톤 노스로 이사를하게 되었다. 사이먼이 메시대학과 통계청 두곳에서 JOB오퍼를 동시에 받게되었다. 고민끝에 (급여가 많은) 파미에있는 메시대학 IT프로그래머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아이비는 WINZ에서 일을하고 있었지만, 사이먼의 선택과 더불어 Palmerston North (편의상 파미로 부르겠다)로 가면서 다시 직장을 잡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파미에서의 새로운 삶을 결심한다.
이사하는날 우리 옆옆집에 살고있던 S씨네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날때 다시 한번 이별이라는 슬픔을 실감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대한 기대감은 그 슬픔을 이겨내게 해주었다.
파미(Palmerston North)로 이사를 가면서 렌트집을 구할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웰링턴에서 파미로 렌트집을 구하기 위해 올라가 이틀을 머물며 유스호스텔에서 지냈다. 발바닥에 불이나게 돌아다녀도 우리맘에 맞는 집을 못구했다. 학생들에게 렌트로 주던 집들이 많아 집이 너무 열악한 상태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시내에서 가깝고 집 상태도 양호한 집을 발견했다. 아이비는 흥분을 감추지못하고 이집은 꼭 잡아야된다고 사이먼에게 협박(?)을 했다. 사이먼은 생각끝에 한국에서 통하는 방법을 썼다. 그렇다고 심하게 청탁을 한것은 아니고 스타벅스 커피로 그 에이젼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이미 어떤이에게 렌트를 주기로 되어있었던 상태였는데 그 에이젼트가 그 사람 가족에게 적당한 다른 집을 구해주었고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집이 우리에게로 기회가 온 것이다.
이제 이 크지않은 도시에서 우리부부의 또다른 뉴질랜드의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도시에 대한 호기심으로 우리 부부는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다녔다.
일주일이 채 되지않아 우리는 파미의 지리에 훤~하게되었다.
파미는 작지만 SMALL BUSINESS가 활발한 교육도시이며 아이들을 기르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조기유학 오신 분들도 제법많았다.
우리 수빈이가 태어난 곳이라 그런지 정이 더 가는 도시이다. 다음편에 우리 수빈이가 태어나게된 동기과 과정이 소개됩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