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전화해봐야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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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2006. 22:44
박신영 ()
사는 이야기
한국의 119처럼 뉴질랜드에서는 비상시에 111로 전화하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111로 전화해봤자 너무 늦게 와서 소용없더라는 얘기를 여러번 들어왔다
사실 속으로는 '혹시 한국인이라서 늦게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만약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거나 백인키위거나 그럼 대접이 다른것은 아닐까 하는 전혀 근거도 없는 일방적인 minority의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제 지역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
111이 정말 늦게 오긴 오는 모양이다
우리동네(Mt Roskill)에 사는 어느 키위아저씨가 아주 화가 나 있었다
사연인즉,
옆집에서 파티를 하느라 음악을 아주 크게 틀었길래 밤 9시에 그집에 찾아가서는 음악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요청을 했단다 그리고는 10명의 10대후반, 20대초반이 파티중인 그집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려하는데, 그 중 한명이 갑자기 뒤에서 내리쳤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집앞에서 길바닥에 쓰러졌는데, 뒤이어 뒷머리를 두대 더 맞았다고 한다. 비틀비틀하면서도 이 용감한 아저씨는 맞서 싸우려고 일어났고, 중간에 끼어 싸움을 말리려던 이 아저씨의 여자친구를 어느 놈이 한대 치려는걸 자신이 막아냈다고 한다. 그러자 또 다른 어느 놈이 칼을 꺼내 들었는데, 다행히 그 옆의 친구놈이 제지했다고 한다.
이 아저씨의 여자친구가 당장 111에 전화해서 신고했는데, 막상 경찰이 이집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오후 6시.........
이 문제에 대한 경찰측의 변인즉,
"콜센타에서 칼부림이 있었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았었다, 그 시간에 경찰이 몹시 바빠서 즉시 대응하지 못했다, 경찰차를 보내긴 했는데 파티참석자들이 다 해산했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어쨌든 그날밤에 신고자 집에 들르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전화할 필요조차 없는 111 신고전화도 많다................
앞으로는 향후 5년동안 550만불을 투자해서 111시스템을 정비하고 향후 3년이내 1000명의 추가인력을 배치해서 수요에 대응하겠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있을시는 절대로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냥 111에 전화해라"
피해자가 키위였기 때문에 이나마 자상한 설명이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딴지를 여전히 걸고 싶은 것은 왠지 모르겠다 .
이곳에 살자면, 우선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여러모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느낀다. 백인이라면 그 사람이 영어를 못하는 어느 동유럽출신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겉으로는 유러피안이므로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10년을 살았다는 어느 중국인 엄마도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백인에 비해 일자리기회가 적다고........사실 중국인이나 인도인으로서 산다면 한국인보다는 생활하기가 휠씬 편하고 기회부여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막상 중국인들은 꼭 그렇지 않은 모양인지.
몇주전, 나는 딸아이와 함께 실내 수영장의 baby changing room에 있었다
샤워중이었는데, 갑자기 문이 빼꼼 열렸다. 분명히 잠긴 줄 알았는데 고장이었던지 하여간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소리를 있는대로 질렀다. 그런데 어느 키위아줌마가 문을 밀어보고는 나를 보더니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쓱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신경쓸만한 사람은 없다는 듯이 아이를 changing unit에 눕히더니 옷을 갈아입히는 것이었다. 너무 어안이 벙벙한 나는, 겨우 입을 열어 밖에서 기다려달라, 금방 끝난다 어쩌고 했더니 이 아줌마, 너무나 카랑카랑하게
No, this is for everybody's."
그래, 공공소유시설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라, 차례차례 써야 하니까. 했더니 또 당당한 목소리로
"No, you have to share."
막무가내로 버티고 안 나가는데야 어떻게 두드려팰수도 없고 내가 얼른 옷입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수영장 직원을 찾아가서 한바탕 항의를 하고 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씁쓸하고 화나고 기가 막혔다. 만약 내 얼굴이 하얗고 내 머리가 노랬다면
그럼 그 아줌마, 얌전히 문을 닫았겠지
나도 이참에 노랑머리로 염색을 해 버려?!!!
이런저런 이유로 외국생활이 길어질수록 타민족과의 교류는 줄어들고 끼리끼리 만남은 늘어나는 것 같다. 그래도 서로 말이 통하고 서로 음식이 통하고 서로 이해상통하니 역시 우리는 하나야 뭐 그런 감정으로.......
하지만 또 한국인끼리는 이상하게 서로 경계하는 것 같다
중국인, 인도인들은 서로 잘 지낸다는데 한국인들은 외국나와 살면 동족에게서 사기당하지나 않을까 조심해야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오히려 한국인들끼리 서로 도와주는 일보다 등쳐먹는 일이 많으니 쉽게 믿지 말라는 충고를 한국떠나기전부터 들어왔다........ㅉㅉ
그럼 어떡하라구?
아무리 노랗게 염색해도 계속해서 검은머리는 삐져나오고, 인도카레 냄새는 역겹지만 된장찌개 냄새는 구수하고, 떡뽁이도 가끔 먹어줘야 하고, 아들녀석은 한국인 친구집에 놀러못가서 환장을 하고.......
결국 한국인끼리 더욱 뭉쳐야지 다른 방도는 없는 것 같다. 단 좋은 사람들끼리 ㅎㅎ
그리고 이웃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그냥 참자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