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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09. 14:53 kdy (122.♡.145.22)
김동열 칼럼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단 몇 초 후의 일도 알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영국에서 벌어진 수잔 보일(Susan Boyle) 의 업 사이드-다운 해프닝을 보면서 어찌 사람들이 그렇게 표리부동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외모와 행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다르게 포장 될 수 있는지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더욱 나이에 대한 차별이 모든 분야에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다는 것도 실감케 한다.
아마도 그런 차별과 비웃음 앞에 홀로 서서 자신의 노래를 꿋꿋이 불렀기 때문에 그 녀가 더욱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11일 영국에서 방영된 ITV ‘Britain’s Got Talent’에 출연한 한 무명가수 지망자의 노래로 지구촌이 들썩들썩 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신인가수등용문에 해당 되는 프로그램인데 여기 출연한 수잔이라는 올드미스의 노래가 전세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통 노래자랑 프로의 관람 재미 중 하나는 까칠한 심사위원들이 출연자를 초장에 깔아뭉개 기(氣)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들 수 있다.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3명의 심사위원들 가운데 가장 까칠한 사이먼의 질문이 첫 출연자 수잔을 쉽게 제압 하는 듯 보였으나, 수잔은 어색한 자세와 제스처로 잘 받아넘겼다.
머리 스타일이며, 육중한 체격에 턱이 두개인 수잔은 사이 먼이 미래의 꿈을 묻자 다소 긴장하여 목이 막힌 듯 “가수가 되고 싶다”는 답변에 심사위원은 물론 청중까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고개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수잔이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의 첫 소절이 끝마치기도 전에 관객들은 기립하여 환호하기 시작했다.
외모와 정 반대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실내에 퍼지자 심사위원까지 기립 박수를 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피어스 모건 심사위원은 “3년 동안 이 쇼를 하면서 이렇게 놀란 일은 없었다”면서 “노래하기 전에는 모두가 비웃었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비웃을 수 없다”고 극찬했다.
‘천상의 목소리’로 불리고 있는 수잔이 ‘제2의 여성 폴포츠’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는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가 2년 전 휴대전화 세일즈맨이었던 폴포츠의 탄생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폴포츠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모드’의 ‘네순도르마’를 불러 유튜브닷컴(youtube.com)에 4천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2007년 BGT우승자로 세인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수잔도 이미 유튜브 3천만 조회수를 넘겨 폴포츠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수잔이 부른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은 프랑스 대혁명(1789)을 다룬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 판틴이 부른 노래로 이 뮤지컬의 클라이 막스이며 무대 마지막에 나오는 유명한 노래이다.
병들어 죽은 판틴의 딸 코제트라는 어린이를 통해 비친 당시 프랑스의 심각했던 빈부갈등,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던 프랑스 노동자들의 현실을 재현한 사회성이 강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례에는 불경기 속에 집을 빼앗기고, 가정이 파탄 나는 지금의 현실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로 떠오르면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또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시골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던 수잔 자신이 판틴과 같은 현실에 저항하고 대립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의 처지를 가장 잘 표현한 노래라는 뒷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수잔이 다른 노래를 불렀다면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비웃음 앞에 선 꿋꿋한 수잔
하룻밤을 자고 나니 신데렐라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 있다.
수잔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그녀의 노래가 유튜브를 통해 지구촌 각지로 퍼지고 각 TV에 출연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그녀의 출세는 이미 시간문제로 레코드 취입과 인터뷰로 곧 백만장자의 문턱 앞에 와 있다.
그녀가 무거운 걸음으로 무대에 섰을 때부터 사이먼과 무슨 악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사이먼의 음반회사에서 레고딩 제작 계약을 하게 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기도 하다.
외모와 출생만 가지고 남을 비웃고 업신여기던 사람들에게 펀치 한방을 제대로 날렸다.
그녀를 비웃던 사람들에게 외모보다 그녀 속에 숨겨진 재능으로 복수 한 수잔에게 존경을 보낸다.
비웃음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그녀가 이 시대의 가장 진솔한 사람 중에 하나로 부각되는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나 기만과 거짓 속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불경기로 모두가 어렵다는 지금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는 오랜 갈증 속에 한 모금의 물을 마시는 것 같은 해갈이 되었다.
보통 사람으로 돌아간 수잔은 우리에게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으며 더욱 꿋꿋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그녀도 이젠 겨우 예선을 지났으니 본선까지 험한 길만 남아 있다.
그러나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천박하고 어리석었음을 알려주는 교훈을 수잔으로 받았다.
잔인한 달 4월에 울려 퍼진 애절한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인내와 포용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dyk47@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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