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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9/2010. 14:22 NZ코리아포스트 (122.♡.159.81)
지구촌 평화 특명대사 유엔UN
수단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여자 선교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대학생 해외봉사단이 온다는 것이다.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카튬시내의 빈민촌 어린이집을 방문하여 급식 봉사와 낡은 시설물등을 보수해 주고 또한 여기 대학교를 방문하여 수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영화상영, 사물놀이, 부채춤 및 태권도 등 한국 문화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때만해도 대학생들은 농촌 활동이니하여 방학이면 전국 각지로 일손이 부족한 농촌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이제는 우리 나라의 경제력도 여유가 있는듯 교육자원부가 일체 예산을 지원하며 대학생협의회와 한국의 “사랑의 봉사단”이란 NGO를 통하여 전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된 26명의 학생들이 방문한 것이다.
수단 카튬에 젊은 대학생들로 가득하여 한인 사회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그들의 일정은 매우 빠듯하여 좀처럼 학생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윽고, 기회가 생겼다.
카튬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의 “하주셉”이라는 빈민촌에 있는 어린이집을 방문하는데 여기에 동참해 달라는 인솔 교수님과 선교사님의 요청이 들어왔다.
먼지길을 달려 생명이라곤 전혀없어 보이는 흙벽과 나무천막 지붕으로 지워진 빈민촌 앞에 우리 일행은 도착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수십명의 아이들과 등뒤에 갖난 아이들을 업은 엄마들이 손뼉을 치면서 야단이다.
우리를 뜨겁게 환영하는 것이다.
봉사 내용은 우선, 남학생들은 아이들이 야외에서 수업을 받을수 있도록 그늘막을 설치해 주는 것이고 여학생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역할로 분담되었다. 한국에서 다양하게 준비해 온 것 같아 보였다.
온갖 재료를 준비한 그림놀이, 바구니 터뜨리기, 술래잡기, 고무줄 넘기등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뜨거운 뙤약빛 아래 남학생들은 쇠파이프로 기둥을 세우고 대나무로 지붕을 이어가고 있다. 준비가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용한 재료를 이용하여 마치 여름날의 대형 여치집처럼 야외 교실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시간 지구 저편의 화려한 도시속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아래 냉커피를 마시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다른 청년들과는 달리 지금 이친구들은 값지고 소중한 땀방울을 흘리고있다.
한국에서 하루 이상을 날아와 피부도 언어도 종교도 다른 이들에게 열악한 현장에서 직접 사랑을 베푸는 그들은 또 다른 작은 천사들처럼 보였다.
1월 17일, 저녁 일곱시,
한국 학생들과 함께 유엔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기로 약속의 날이다.
공교롭게도, 이 날따라 다푸르 문제로 뉴욕 본부에서 방문한 손님들과의 긴급한 줄달리기 회의로 저녁 시간이 지나도록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저녁 아홉시가 지나서야 회의가 끝났다.
전화를 걸었다.
“지금 회의가 끝났는데, 어떡할까요?” 시간이 너무 늦어 학생들과의 대화 날짜를 바꾸고 싶었다.
“괜찮아요, 학생들이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오세요.”
모든 일정과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똘똘한 인솔자의 대답이다.
배도 고프고 피곤했지만 곧바로 그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학생들이 깜짝반긴다.
2주간의 눈코 뜰새없이 바쁘고 피곤한 일정을 마친 그들은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고 모두들 진지했다. 유엔 및 국제기구와 수단 평화유지미션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유엔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으로 들어갔다.
“유엔에 어떻게 지원하는가?”
“무엇을 전공해야 하는가?”
“어떤 직책이, 어떤 분야가 있는지?”
“보수는 얼마인지?” 등 질문의 내용은 다양하고 끝이 없었다.
거의 2시간 이상 우리들의 대화는 진지하게 이어졌다.
허기가 지고 목이 말라왔다.
“자, 우리 물한잔 마시고 필요하다면 계속합시다.”
순간, 누군가가 무엇을 가져오라는 눈짓을 보낸다.
동시에 몇몇이 일으서더니 순식간에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과자와 음료수 그리고 급조로 준비된 종이컵 속의 케익과 초가 내 앞에 차려지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알았길레.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부르는 생일 축가가 자정이 되어가는 수단 카튬의 밤 하늘에 퍼져나가고 있다. 왈깍 눈물이 솟아져 나와 애써 감추려 고개를 들어올린다. 오늘이 바로 내 48회 생일이다.
아마 주변의 한국 사람으로부터 우연히 듣게된 모양이다.
아뭏튼, 이 열악한 땅에서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준비해 준 생일잔치를 받아본 이날은 내 생애 잊지못할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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