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도착한 선생님 일행들은 몬로비아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님 댁에서 일주일간의 봉사를 위한 베이스 캠프를 치게 되었다. 아침부터 사무실을 비워 오후에는 본부로 돌아가야 하지만 무엇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오후 시간도 함께 보냈다. 곧바로 난민촌에서 실시될 의료봉사 활동을 준비하느라 긴 여행 뒤의 피곤함도 잊은 체 모두들 분주하다.
몇 일 지난 어느날 오후, 업무를 일찍 끝냈다.
몇일간 고아원 방문을 마치고 의료 봉사단과 합류하여 난민촌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김혜자 선생님과 한국인 일행들을 위하여 큰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음료수를 가득 채워 난민촌으로 향했다. 수도 몬로비아 시내에서 약60킬로 미터 떨어진 라이베리아 최대 난민촌의 임시 천막 주변에는 아직까지 수백명의 환자들로 북적거린다. 아마 인근의 다른 난민촌 환자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까지 치료를 받으려 온 것 같다.
의사의 진찰이 끝나고 상처 부위를 치료하는 간호사들, 처방전을 들고 약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는 무리들, 하얀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꼬마 아이의 머리를 깎아 주는 아가씨, 참혹한 현실을 한 장면이라도 잘 담아 국내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려는 PD들과 신문 기자 모두가 너무 진지하다.
배우, 의사와 간호사, 약사, 미용사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랑을 전하는 거룩한 현장이다. 게다가 선교사님과 교민분도 한 몫하고 있다.
그야말로 난민촌의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한국 의료 봉사팀과 교민들이 펼치는 합동 작전 같았다.
더욱 가슴이 찡해오는 것은 온누리 교회의 의료 선교팀은 모두 자비로 이번 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아가씨는 항공권을 사기 위하여 매달 20만원씩 저축하던 적금까지 해약하고 이 곳에 온 것이다. 적금을 해약해서 올 정도면 넉넉한 형편이 아닐텐데 어떻게 이런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
그런데 아까부터 아픈 환자가 아닌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 옆에서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표정으로 서있는 한 여자가 있다.
라이베리아 월드비젼 직원이 다가가서 묻자.
“의사 선생님, 죽어가는 저 여동생을 살려 주세요.”라며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한참 다른 환자를 돌보고 있던 의사 선생님과 김혜자 선생님은 서로 뜻이 통했는지 곧바로 애원하는 여인을 따라 나섰다. 난민촌 구석진 조그만 움막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 여인이 초점없는 커다란 눈으로 천정만 쳐다보고 누워 있다. 움막 안은 시체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로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몸은 썩고 있었다. 그 냄새로 내 몸이 아파 올 것 같았다. 곧바로 나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아니, 이 두분은 지금 코로 호흡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 악취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어가는 여인을 이리 저리 만져 본다. 의사 선생님은 사람들을 시켜 깔고 누워 있던 메트레스와 함께 그녀를 치료소로 옮기게 했다.
바람 한 점없이 오후 태양이 내리비치는 간이 천막 밑은 매우 더웠다. 부풀어 오른 여인의 가슴 부위를 건드리자 누런 고럼이 마치 비닐 봉지 속에 담긴 물이 터져 흘러내리듯이 솟아 내린다. 인육의 부패되는 냄새에 수백 마리의 파리떼가 모여든다. 썩은 가슴 부위를 소독하는 의사 선생님의 이마에 땀은 죽어가는 여인의 얼굴에 소나기가 내리듯 떨어진다.
옆에서 직접 무엇인가 도울 수 없어 안타까워 하시던 선생님은 어디서 구했는지 두꺼운 보리박스 종이를 가지고 땀 흘리며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을 향하여 부채질하신다. 썩은 냄새를 맡고 상처 주위로 몰려드는 파리들도 내쫓으신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 쳐다볼 수 없는 역겨운 환자의 가슴부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현재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이분은 도대체 누구일까 ?
화려한 무대에 오르기 위하여 반짝거리는 고급 승용차 속에 조그만 손거울로 얼굴 화장을 고치고 계실 귀하신 분이 지금 청바지를 입은 채 연상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으시며 최악의 상황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저분! 신이 계셔서 천사를 이 곳에 보내셨다면, 분명히 저 분이실거야!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그 연인은 두 눈을 두 분의 향하여 쳐다보면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들이 오길 기다렸어요. 조금만 일찍 오셨더라면…”
하지만,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치료를 한번이라도 받았으니까요”
이틀후, 월드비젼 코리아의 지원으로 수도 몬로비아에 위치한 존 F 케네디 병원으로 그녀를 후송 시켰으나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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