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왈라코트 초소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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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왈라코트 초소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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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미묘한 긴장과 이별에 아쉬움이 집안에 가득했다.

약 두달 반 정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처음으로 배치받은 북부 캬쉬미르의 라왈라코트 초소로 떠나는 날이다.

큰 여행용 가방에다 미리 지급받은 조사 활동시 필요한 20킬로그램짜리 방탄 조끼, 방탄 헬멧, 매일 아침 나를 깨워 주는 자명종, 옷가지, 집사람이 이른 새벽부터 준비한 마른 반찬 등을 챙겨 넣었다.

또한 지난밤 지갑속에 큰 딸이 "아빠 힘들 때 꼭 보세요" 하며 챙겨 준 "자랑스런 아빠에게 보내는 엽서"도 확인했다.

아직도 잠에 빠진 두 딸의 볼에다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서는 나의 뒷 모습을 보며 집사람은 눈물을 글썽인다.

"내 걱정은 말아요, 건강히 돌아 올테니, 잘지내요."

얘서 웃음을 지며 미리 대기하고 있던 유엔 짚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병은 기다렸다는 듯이 본부에다 상황 보고를 한다.

"시에라 (C), 시에라 (본부의 호출번호), 여기는 이동차량 로미오 (This is Mobile Romio), 우리는 라왈라코트로 향한다 (Heading to Rawalakot)."

답신이 온다. "알았다 ! (Roger, Out !)"

어, 제법 실감난다.

이른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한국에서 야외훈련 중 자주 애용하던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유엔기가 나부끼는 유엔 짚차 속에 앉은 나는 마치 한국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멕아더 장군이 된 것처럼 우쭐해지는 것 같다. 작은 마을을 지날 때 마다 어린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리거나 손을 흔들며 쫓아오는데 마치 내가 어릴적 부산 하야리아 부대 미군들이 지나 갈 때 껌 달라고 짚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생각이 난다.

"바보, 이 정도는 예상하고 챙겼어야지, 너무 아쉽다 "

사실은 한국에서 껌이랑 볼펜, 연필 등 아이들에게 줄려고 많이 챙겨 왔다. 정신을 어디다 뺏는지 아침에 깜박해버렸다.

미안해 꼬마들아! 다음에 꼭 챙겨서 너희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아이들에게라도 주도록하마.

오후 3시경,

이슬라마바드를 떠나 약 5시간 후에 첫 임무지인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한 파키스탄군의 여단 본부내에 위치한 첫 임무지 초소(Field Station)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나와서 나를 환영하는데 너무 오버할 정도이다.

아니, 이 친구들이 사람을 처음 보았나, 왜들 이러지, 내심 그래 이 외딴곳, 보이는 것은 단지 푸른 산이요,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교신 소리뿐,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겠는가 !

배정받은 내 방에다 이것 저것 정리하고 있는데 조금 전 도착했을 때 마치 그리운 애인을 만난듯이 굉장히 반갑게 악수하고 포옹까지 한 이태리 출신 "파올로" 라는 중령이 짐이 정리되는데로 잠깐 사무실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는 고참 중령이지만 여지껏 복지장교 역할을 해 왔었다. 복지장교는 파키스탄 군에서 지원된 취사병(전혀 음식을 만들지 못함)을 통제하여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거나 지급된 부식을 이용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는 초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주방장 역할을 인계하겠다는 것이다. 참 ! 기가 막힌다.

이미 들은 이야기지만, 해도 너무한다. 이제 막 도착하였고 아직 업무 브리핑도 받지 않은 상태인데…

거룩한 사명감을 감당하기 위하여 이곳까지 왔는데 이게뭐야 ! 겨우 부엌에서 시답잖은 몇가지 재료가지고 취사병아닌 취사병이 하는 음식을 감독하고 잔소리해야하니 앞으로 내 신세가 한심스러웠다.

몇일이 지났다.

취사병이 무얼하는지 궁금해서 부엌에 들어갔다.

이럴수가 ! 커다란 통에 수저, 포커, 나이프, 접시 등 온갖 그릇을 담아 놓고 막 하이타이를 푸는 순간이었다.

여태까지 이 녀석이 하이타이로 그릇을 씻었단 말인가! 참으로 한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슬렘들은 화장실에서 큰 것을 보고 사후 처리를 위하여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엔 꼭 준비된 물과 바가지가 있으며 이땐 반드시 왼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이 녀석의 손, 특히 왼손 손톱을 보면 영 비위가 상하여 더이상 그를 부엌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취사병 역할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실망과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정전 감시단 생활이 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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