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게임과 “다대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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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게임과 “다대기” 문화

0 개 3,035 NZ코리아포스트
내겐 거의 매주 골프를 즐기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어쩌다 만나면 내기 골프를 했던 이야기를 한다. 고스톱처럼 네 명이 점 당 얼마씩 걸고 매 홀마다 판돈 거래를 하면서 친다고 하는데, 돈을 따는 때 보다는 잃는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도 아쉬움과 미련을 못 버리고 번번이 거기에 휘말리는 것은 아마도 내기 게임이 주는 감칠맛이랄까 땡기는 맛 때문이 아닐까 싶다.

테니스 동호인들 중에도 내기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 가끔 외부 동호인들이 내 직장 코트에 와서 게임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내기 게임들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복식게임을 할 때 마다 만 원짜리 누런 지폐 4장을 네트에 쪽지편지처럼 묶어 놓고 게임을 하는 광경이었다.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눈 앞에 놓고 하는 ‘돈 내고 돈 먹기’ 식의 게임인지라, 모두가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볼을 쳤다. 다행히 그들 사이에 시비가 일어난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고, 경기를 마치면 판돈을 모아서 소주도 한잔 걸칠 겸 인근의 돼지갈비집으로 몰려갔다.

이곳 뉴질랜드 한인 테니스 동호인들 중에도 기회다 싶으면 내기 게임을 하자고 발동 걸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그리고 테니스건 골프건 한인들 중에 내기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새삼스럽거나 유별난 사실이 아니다. 내기 게임에 대한 시비판단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좌우간 그것이 스포츠에 반영된 우리 한국인 특유의 사고방식의 결과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사실상 키위 테니스 동호인들은 좀체 내기 게임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한인 동호인들 중에는 여름이면 자진해서 수박이라든가 시원한 맥주 박스도 들고 코트에 나타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키위들 중에서는 결코 그런 동호인들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저 자기가 마실 물병과 바나나 한두 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 고작이다. 냄비 하나 놓고 둘러 앉아 구수한 된장찌개를 나누는 것 같은 우리 동호인들의 정감있는 분위기에 비추어 보면 너무 썰렁하고 싱겁다.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키위 테니스 동호인들이 게임하는 태도가 싱겁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코트에서의 그 진지함과 주의집중의 수준은 오히려 한인 동호인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그 이하는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한인 동호인들과 달리, 어항 속의 붕어들처럼 조용하면서도 아주 진지하게 볼을 친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우리처럼 운동 후에 “2차”라는 개념이 없다. 운동을 마치면 그저 잠시 벤치에 앉아 싱거운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는 곧바로 “Thank you. See you later”하고 각자 제 갈 길로 갈 뿐이다. 한국인들은 ‘우리끼리’의 끈적거림을 선호하는 편이나, 키위들은 개인적 자유를 우선시한다. 테니스에서도 이러한 문화차이가 보인다.

이원복교수가 쓴 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를 보면 우리 문화사에 대한 해학적 통찰 하나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면 거기에 ‘다대기’를 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수용한 것을 우리 식으로 바꾸되, 다대기처럼 가급적 맵고 짜고 지독한 맛을 거기에 가미 가공하는 성향이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의 유교가 그랬었고, 북한의 공산주의가 그 모양이고, 남한의 노조투쟁과 고스톱이 그렇고, 한국화된 기독교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다대기 문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인 동호인들 사이에서 흔히 보는 내기 테니스도 그 목록에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테니스건 골프건 내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그런 취향을 변론하겠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스포츠를 노름판으로 전락시키는 행태라고 비난을 한다. 하기야 동호인들의 내기 게임은 스포츠를 이용한 노름인 것이 사실이다. 이익을 얻으려고 자기 돈을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을 하는 놀이(play)가 곧 놀음, 또는 노름의 말뜻이기 때문이다. 내기 게임은 물론 프로 게임이 아니다. 프로들은 주최자가 내 놓은 상금을 놓고 게임을 하지만, 내기 게임에서는 자기들이 판돈을 걸어놓고 서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게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궁극적 기원이 다르지 않다면, 테니스나 골프 동호인들 사이에서의 내기 게임도 본인들이 선택한 것인 한 그 자체로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좋다, 나쁘다는 언제나 결과를 보고 붙인 명칭들일 뿐이다. 결과가 건설적이고 조화로운 것이면 좋은 것이고, 파괴적이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면 나쁜 것이다. 내기 게임을 통해 서로 게임의 묘미를 더 즐기고 기량도 더 향상시키고 상대방과의 친화관계가 성장된다면 좋은 놀이가 되는 것이고, 반대로, 각자가 재미보다는 스트레스를 더 받고 기량보다는 꽁수가 늘고 상대방과의 신의와 우정에 금이 간다면 그것은 분명 나쁜 놀음이다.

그렇긴 해도, 내기 게임은 액수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서로 판돈을 내 놓고 희생자를 만드는 놀이라서 그것을 통해 재미와 기량, 그리고 인간관계의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란 쉬울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체가 자기희생을 무릅쓴 하나의 도박인 셈이다.

Anyway....Good luck to you all whatever you choo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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