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개
3,899
08/04/2008. 17:07 KoreaTimes ()
따뜻한 남쪽나라
'문화의 차이' -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들에게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명제이다.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말은 희랍어 '민중'(Demos)과 '권력'(Kratos)의 합성어로 '민중에게 권력이 있다'는 제도이다. 의견이 없는 민중은 결코 체제나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런데 교민들끼리는 너무 시끄럽고, 키위들 앞에만 서면 왜 그리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민 와서 무시와 차별을 당하지 않으려면 '시간 지키기, 줄서기, 양보하기, 조용히 말하기' 등의 기본 에티켓과 의사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영어는 몸에 베어야 한다.
<지난 주 일이 있어 BNZ은행 B지점에 갔다가 좀 민망한 순간이 있었다. 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한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무심코 돌아 보니 공항에서처럼 벽에 걸린 대형 TV에서 오락성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어느 특정 퍼포먼스 장면을 편집해서 DVD로 보여 주는 것이었는데 조금 있으니 아주 낮 뜨거운 장면이 나오는 것이었다. 반 나체의 젊은 남자들이 나와 춤을 추다가 순간 순간 아주 선정적인 성행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고객 중에는 엄마를 따라 온 애들도 있었다. 가서 "제발 저 프로 좀 끄라"고 하고 싶었지만 "내가 키위문화에 아직도 덜 익숙해서 혼자 민망해 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도 들고, 자신도 없어 그저 얼른 내 차례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중년 여성이 창구로 다가가더니 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아니 대낮에 왜 저런 내용을 틀어 놓느냐?" "도대체 매니져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내 보내는 것이냐?" '쟌다르크'의 후예처럼 느껴지는 그 여성을 보고서야 불안한 마음이 가셨는데 다음 순간 그 '쟌다르크'는 얘기를 듣고 뛰어 나온 매니져를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당신 애들이 저런 프로를 보고 있다고 생각 해 보세요." 문을 나설 때에야 '저런 용감한 사람들이 더러 있구나' 하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10여 년 전 소위 '비우'(view)가 좋고, 교통이 편리한 길가로 이사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폭도 넓은 데다 양쪽 동네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이어서 꽤 많은 차량들이 다녔다. 게다가 걸핏하면 폭주족들이 펑펑 머풀러 터지는 소리를 내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아 끼익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게 무척 신경이 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도널드' 할아버지가 길가에서 열심히 뭔가를 적는 것을 보고는 무슨 일인지 다가가 물었다. 그랬더니 "폭주하면서 일부러 소음을 유발하는 문제아들을 고발하고 뿌리 뽑기 위해 증거자료를 작성 중이라는 것이었다. 노트를 들여다 보니 (발생일시/ 차량번호/ 색깔/ 문제내용) 순으로 차곡차곡 기록 되고 있었다. 하루 세 시간씩 벌써 일주일째라는데 '죤 웨인'처럼 생긴 그 '007할아버지'를 보면서 말로만 듣던 키위들의 고발 정신을 실감할 수 있었다.>
80년대 중반 영화 'MASH'는 6.25전쟁 이후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가난과 극도의 혼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더니, 90년대 초에는 영화 'Falling Down'이 한국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재미 교포들은 물론 전 세계 한국인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그런 한국인들이 어느 순간 올림픽을 개최하고 'OECD'에 가입하고, 무역 선진국으로 부상했으니 놀람과 질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바로 LA폭동의 원인으로까지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점수제 이민이 도입 되었던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밤 9시이면 온 동네가 조용해 지고, 일 년 내내 제복 입은 경찰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평화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15년 동안 너무나도 달라졌는가 하면, 아직도 우리는 키위사회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어제 어느 아줌마한테서 8주된 고양이 새끼를 얻어 왔는데 BB라 이름 지었다. 한 세상을 풍미하던 S라인의 원조 '브리짓 바르도'의 이름을 딴 게 아니고 온통 브라운 색깔에다 처음 인상이 꼭 공이 굴러 다니는 것 같아 'Brown Ball'이라고 이름 짓고 줄여서 BB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갖다 놓고 하룻밤이 지나도록 움직임이 거의 없다.
엄마 떨어진 슬픔과 온통 주위가 낯선,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겹친 탓이리라.
그러더니 이튿날에야 서서히, 아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발, 오른발 그리고 밥그릇 냄새, 화장실 점검, 그리고 문과 피난처 등 지형지물을 파악 하더니만 '포복 앞으로!'이다. 논산 훈련소도 안 갔다 온 게 온갖 각개전투의 기본 요령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물도 한 모금 마시고, 밥도 몇 알 씹어 보고. 그러는 동안에도 주위에 온통 신경을 집중 시키고 행여 자신의 행동이 노출 될까 봐 조심 또 조심이다. 이민자들이 적응하기까지 살아가야 할 처신 방법이 바로 그 고양이 전술인 것이다. 먼저 키위들을 알고, 그들의 문화 속으로 서서히 접근하면서 조용히 물 스며들 듯 현지화 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