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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맵고 차다. 벌써 봄바람이 인사를 왔는가보다.
바로 엊그제 산책길에서였다. 시커멓게 묵은 나무에서 삐죽빼죽 솟아난 여린 연둣잎이 너무 예뻐 사진에 담아 왔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 . .
이 늙은이가 체감으로 느끼는 봄은 아득히 멀리 있는것만 같다. 많이 추워진 봄바람은 야속하기만 하다.
그리고보니 집 안으로 깊숙히 들어와 쉬고가던 햇볕도 슬쩍 방향을 틀어 창가에만 머물다 가고 있었다. 꽃샘 바람에 짜증을 부릴동안 봄은 마지막 동장군을 밀어내느라 한바탕 난리를 치르며 조용한 걸음으로 사뿐히 걸어오고 있는거였다.
어느집 마당가에 키낮은 노란 꽃이 진작부터 피어 있었다. 수선화꽃 리본을 달고 다니는 옆집 캔 노인을 보고 웃으면서도 나는 바보처럼 추위만 을러댔구나.
누가 들으면 담박에 그게 늙은이야,라고 오금을 박겠지.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마음을 다진다.
그렇더라도 옷 속까지 파고들어 피부를 할퀴는 기승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제 들어도 언짢은 그놈의 첩 바람 농간을 어쩐담 . .
남편 빼앗아 제 품에 품고 용용죽겠지 하는 그 저력에 맥못추고 움츠릴수밖에 없는 본마누라 신세가 지금 나 같을까?ㅎㅎ
그럴땐 그냥 생각없이 집을 나와 해맞이를 하면서 다른 세상과 부딪쳐야 한다.
당당하게 마주서서 대들어야 봄님도 반가운줄 알 것 아닌가.
코로나에서도 해방 되었다는 모처럼의 자유마저 부축이니 오랫만에 일탈을 서둘러본다.
어쩌다가 오늘은 나오라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으니 혼자서도 좋다.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차 안이 따뜻한 걸 보니 첩의 바람이 여기까진 따라붙지 않아 벌써 움츠렸던 어깨가 펴진다. 시간대가 한가로워 승객도 몇 명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묵주알을 돌리기 시작했다. 걸친 옷이 부담스러워 지는 것 만큼 무겁던 기분도 가벼워지고 있다.
목적지없는 유랑의 길. 차가 가는데까지 무작정 달리면서 그동안 고팠던 여행에의 목마름을 달랜다.
어느 정류장에서 차가 멈췄을 때다. 어린 여학생이 가방을 등에 맨 체 어렵게 차에 오르고 있었다. 선뜻 발걸음을 떼어내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모습이 이상했다. 신발도 안 신은 양말바닥으로 한 다리를 들고 쩔쩔 맸다. 방금 전에 발을 다친 모양인데 많이 아픈것 같았다. 차 안의 사람들 시선이 모두 그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조용히 울고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앉은 여인이 무슨 말 인가를 건네더니 자기 핸드폰을 학생의 손에 쥐어 주었다.
살짝 검은 피부에 길게 땋아늘인 어린 아가씨의 옆 얼굴이 귀엽다. 울고 있어도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좋은 때로구나.) 나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 엄마에게 머리 디밀어 쌍갈래머리 곱게 땋아늘였던 소녀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 바쁠때는 잘라버리자고 엄포를 놓아 질색으로 도망을 치기도 했었지.
그는 몇 정거장을 더 가서 오빠인듯한 청년이 올라와 안아서 내렸다.
기사 뒤에 앉아서 온갖 참견을 다 하고 말을 시키던 실없는 여인도 내리고 차는 그렇게 종점에 도달했다.
나는 그 곳에서 기차를 바꿔 타려고 역사(驛舍)로 들어섰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계단 입구에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 기차가 안 다닌다는 뜻이었다. 가는 날이 하필 장날 이었다.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했더니 . . . 그렇다고 그냥 돌아온다는건 너무 싱겁지 않은가.
내친김이라 기차의 목적지까지 다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차피 집시처럼 떠도는 시간이니 아무러면 어떠리.
30분이면 다다를 곳을 한 시간을 걸려 도착했다. 허리가 뻐근했다. 자가용 한시간이면 아무렇지도 않을 허리가 버스의 거친 흔들림 때문이었다. 몇 년만에 해보는 일탈의 과정에서 몸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갔다는걸 실감했다.
세월이란 속도가 1초에 436M를 지나간다고 한다. 과학적인 계산에 의해서 나온 수치이니 믿어야 했다. 지금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세월 속도를 생각하니 몸이 달라진건 너무도 당연했다.
갑자기 핸드폰의 보이스톡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열어보니 서울에서 오빠의 발신이었다. 듣는 사정도 좋지않은데 말 꺼내기가 민망해서 그냥 끊었다. 많이 궁금했지만 참아보기로 했다. 폰을 내려놓기도 전에 다시 또 울려왔다. 무슨 급한 상황이길래 이 야단인가 싶었지만 더더욱 받을 수가 없었다. 지금 밖이라 잘 들을 수 없으니 나중에 하시라고 톡으로 알렸다.
여러 형제중 한분 남은 고령의 오빠이지만 본인이 직접 했으니 급한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10분도 안 지나 또 다시 울렸지만 모른체 끊어버렸다. 숨돌릴새도 없이 또 다시 울렸다. 사람들 눈치가 보였다. 그런데도 무슨 고집인지 받을 용기를 내지못했다.
혹시 조카들이 아빠 전화로 하는게 아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90이 코 앞인 오빠의 안위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조금 뒤에 숨넘어가게 또 울린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모든 생각이 정지되는듯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10분 뒤에 집에 가서 받겠다고 톡으로 찍어 보내며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해댔다.
다음 차가 정차하자 무턱대고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어떤 음성이 들릴지 조마조마했다.
“응 나야”. . . 오빠의 그 특유하게 밝은 음성이 내 귀에 들어왔다.
휴~~~~ 안도의 한숨이 길게 터져나왔다. “오빠 무슨 일이셔요?”
어머님 산소에 성묘하고 두어달 전에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먼저 저 세상 가버린 동생의 묘소까지 온종일을 순회하고 왔다고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90노인이 큰 일을 한게 분명 맞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토록 무분별하게 자랑?하려고 벨을 눌렀다니 어이가 없었다. 오빠가 이상해지셨나? 갑자기 그런 불안이 밀려왔다. 100수가 문제 없다고 큰소리 치는 폼새도 조금 마음에 들지않았다. 아이처럼 천진스러워 가는 모습이 온당한 것인지 헷갈려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나 남은 이 동생에게 건강해서 오래 살라는 오라비의 말 이 고마워 다시금 차에 올라 가던 길을 계속 달린다.
그래봐야 목적지에 내려 찾아간 곳이 공원안에 있는 화장실이 우선이었다. 무더기로 피던 예쁜 꽃들도 아직은 이른지 쓸쓸하기만했다. 나풀대는 양귀비 꽃과 다녀간다는 눈인사만 하고는 돌아섰다.
마켓에 잠깐 둘러 귤 한봉지를 사서 하나 까먹었다. 집에서 먹던 맛과 달리 엄청 상큼했다. 기분 탓이리라.
벌써 햇살이 서녁을 향해 기울어가고 있었다. 돌아서야 하지만 잠깐 낯선 거리에서 귀소를 서두르는 바쁜 마음을 경험하는게 언제나 여행의 재미였다.
해가 지면 제 집을 찾아드는 새 들처럼 떠나온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귀소본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차 창에 드리워진 뿌우연 어둠속에서 문득 내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모습보다 정말 많이 늙어 있었다. 옛 생각대로 흉내를 낸 오늘 하루의 일탈이 참 많이 버겁다는걸 깨달았다. 허리도 불편하고 다리도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노구를 이끌고 성묘를 다닌 오빠의 자랑이 그럴만도 했다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머님 산소는 북쪽에 있고 동생이 묻힌 곳은 남쪽 어딘가에 멀리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님 생전에 효자소리 못듣던 오빠가 뒤늦게 크게 효도를 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어머님 산소를 가 본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예 불효녀인 주제에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러는지 . . .
문득 작은 딸이 해드린 세루(모직)두루마기 떨쳐입고 이웃들에게 자랑하시던 어머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것 뿐이었던가보다. 다급하게 그려진 엉터리 효도? 추억의 그림 한 장이었다.
그 두루마기 차림으로 상도동 고개에서 마주쳤던 어머님을 오늘 밤엔 아무래도 꿈속에서 만날 것만 같다.
아이같이 함빡 웃으며 좋아하시던 그 표정 그대로 . . . .
무념무상의 명상을 하듯 아무 생각없이 흘려보낸 하루였다. 길지않은 남은시간 허투루 쓴것 같지만 내 발 성하고 몸 견딜수 있어 한 일이니 오빠처럼 나도 자랑이나 해볼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