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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일로 강원도 태백시에 3일을 있었다. 태백산으로 익숙한 이름, 태백시는 아담하다. 높은 곳인지 한 여름에도 벌레가 없어서 의아스러웠다. 빛을 보고 몰려드는 벌레들과 파리, 모기가 없다니..... 곳곳에 옥수수 밭이 있고 비탈에 무, 배추를 심고 가꾼다. 산등성이에 한가로이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날개가 좀 아쉽다. 더 빨리 돌면 좋겠는데, 느릿느릿한 게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여름이라 그런지 산천이 무성하고 푸르다. 집집마다 텃밭에 무언가 심고 가꾼다. 이게 자급자족이고 심고 가꾸며 탄생의 신비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내가 나서 자란 지리산 기슭의 시골집에는 남새밭이 있었다. 너르고 좋은 집이었다. 식구가 많아 북적댔지만 여름에 푸성귀는 넉넉하게 먹고 자랐다. 밭 어귀에 커다란 호박구덩이를 파고는 두엄을 두어 삼태기로 부어놓고 호박을 심으면 10미터는 뻗어 나가는 넝쿨에 호박이 수박처럼 자란다. 가지도 오이도, 고추며 상추도 거름을 잘해야 병이 없이 잘 자란다. 그런 것들로 배를 채우고 자랐다. 오랜만에 태백에서 고향집에 머무른 기분이다.
외국에서 나온 신문 어디선가 읽은 글인데 기억이 어렴풋하다. 어떤 외국인이 한국에서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음식(반찬)을 먹었다고 자랑을 하더란다. 그 향긋함이며 짭조름함이며 아삭한 식감, 어느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최고라고 침이 마르도록 좋아하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나무인지 풀인지는 모를 가지에서 딴 잎이라더라는 것. 그게 무얼까 궁금했다. 한참에야 기억을 되살린 그 사람이 무릎을 치며 하는 말, 개니프! 뭐라고? 개니프(ganif)는 도둑, 사기꾼, 깡패를 뜻하는 말이다. 이런 것은 아닐진대.....
깻잎 반찬 500그램에 1만원을 넘게 주면서 그 부피를 보고 고기값이다 싶다. 나물과 김치를 좋아하는 나는 짜지 않으면 밥 네댓 숟갈에 다 먹을 분량이다. 깻잎 한 장씩은 양에 차지 않아 한꺼번에 서너 장씩 먹는다. 그러니 한 장 한 장 떼어 먹는 것에 불편한 적이 없다. 서너 장을 입에 넣고 짜면 밥 한 숟갈 더 먹으면 된다. 그런데 깻잎의 가격이 왜 그리 비쌀까? 이유가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비싸지 않은 것이 어디 있나 싶다. 깻잎은 한 잎 한 잎 따서 씻고 또 한 잎 한 잎 양념을 바르는 일손과 정성이 얼마인가? 깨밭에서 연푸른 깨벌레를 보았는가요? 누에 같은 것이 보호색으로 초록을 띠고는 내가 좋아하는 깻잎을 갉아 먹는데 손으로 잡으려면 물컹해서 징그러운 놈이다. 봉투에 담아 와서 닭장에 던지면 꿀맛이라 먹는 것 같다. 낚시의 미끼로도 최고인 것이 깨벌레다. 한때 어떤 제자가 비닐하우스에 깨를 심고 깨벌레를 대량 번식시켜 낚시 미끼로 팔 사업을 한다고 아이디어를 가져왔기에 깨벌레가 그렇게 좋은 미끼라는 것을 알았다. 사업이란 투자를 하여 제품을 만들고 팔려서 수금이 되어야 하는데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알리려면 또 광고비가 들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있어도 못하는 것이다. 돈을 들이고 그만큼 회수가 안 되면 어쩌겠는가? 그 제자에게 한두 평만 시험적으로 해 보라고 했다.
농장에서는 거름 주고 키워 잎만 따서 판다. 그러니 꽃피워 열매 맺는 깨는 뒷산의 밭에서나 기른다. 그 밭에서 자란 깨를 베어 바닥에 천막을 깔고 털어 말려서 씻어 모으고는 정말 작은 그 깨알을 볶아 짜서 참기름, 들기름을 만든다. 놀랍다. 깻잎의 가격에 비하면 참기름, 들기름이 비싼 것은 아니다. 화단에, 빈터에 깨를 심으리라! 참기름을 넣은 비빔밥! 들기름을 넣은 나물, 생각만 해도 침이 먼저 넘어간다. 기름을 짜고 지게미로 남는 유박(油粕)이라는 깻묵을 자랑스럽게 먹고 다녔다. 최고의 간식이었다. 이제는 먹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료나 거름으로 쓴다.
깻잎 한 장씩에 양념을 발라 포개어 두었다가 반찬으로 먹는 것은 들깨 잎이다. 보드라운 잎이 달린 순을 따서 살큼 데쳐 잔멸치를 넣고 된장으로 간을 해서 익힌 반찬은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맛이다. 그런데 이것도 금값이라 물어보고 살까 말까를 망설이게 된다. 시골의 비닐하우스에는 겨울에도 땀이 난다. 습기 차서 불편하다. 이 여름에는 비닐을 걷어도 덥다. 누가 거기서 한 잎 한 잎씩을 따겠는가? 한 시간을 일하면 거의 쪄서 죽을 정도다. 이런 여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60~70년대에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랑 다를 바 없다. 열사의 중동 모래밭에서 대 수로를 건설했던 어른들이 생각난다. 625를 겪고 나서 헐벗고 굶주리며 자란 사람들이다. 사실은 돈 때문에 월남전에서 목숨도 내 놓지 않았던가? 이제 그 놈의 돈 때문에 그런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우리의 밥상을 차려 주는 것이다.
여럿이서 밥을 먹는데 깻잎을 떼어 주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가 자진해서 그러는데 그게 고마우면 사랑이란다. 거북하면 무얼까? 친절도 베풀기가 쉽지 않다. 위생을 생각하면 먹던 젓가락으로는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위생이 먼저다. 그러나 사랑은 위생을 넘는 것 아닌가? 사랑하는지 확인해 볼까싶다. 개니프를 떼어줘 봐야지.....
■ 조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