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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철새 댕기 물새 가지에 앉는다
새도 남이 아니라고 말하는 영감
비록 옷소매 땟국은 잘잘 흐를지라도
노여울 때도 씁스레 그냥 넘긴다
제 아들
깻묵같은 아들 둘 잃고 나서
하나는 호열자로
하나는 물에 빠져 죽어서
이 세상 살 생각 통 없다가
한 숨도 못 쉬다가
마흔 살 넘어
여남은 살 쯤 되는 아이
조실부모 아이
이놈 저놈 수양아들로 삼았다
집에 두기도 하고
다 친자식 만들어 사정 따라 떠나보내기도 하고
추석 무렵 다가오면
햇대추 후려쳐 한 됫박씩 손수 가져다 주는 영감
동네사람들 괜히 비아냥거리기를
웬놈의 수양아들 그리들 많이 두노
그러나 그 영감 차락차락 가라앉은 목소리로
사람이 귀한 줄 알면 다 자식같고 다 부모같지 않은가
그 영감 중뜸 비알밭 콩밭두렁 풀 깍다가
산등성이 쭈뼛이 오르는 바람에
일제히 뒤집어진 하얀 콩잎 돌아보더니
참 내일이 그 놈 생일이지
이따가 중병아리 한 놈
구럭에 넣고 다녀와야지
크는 놈이라 속이 허하면 안되지 안되구말구
- <만인보>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