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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0/2010. 15:04 NZ코리아포스트 (125.♡.241.223)
아름다운 세상
“똥 싼놈이 성낸다”라는 말이있다.
인간의 역사와 기원을 찾아올라가 보면 성경에서 많은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인간의 마음속의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진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처음으로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였다. 에덴동산의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괴하던 날로부터 탐내던 것을 오히려 잃어 버린채로, 남자는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해야 생활고를 해결하게 되었고 여인은 해산의 고통을 포함해 자식 키우는 재미보다는 자식을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고통을 안게 되었다.
약속의 파괴자들은 그동안 은혜로 가리워져있던 자신들의 정체를 스스로 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담아~ 네가 어딨느냐”고 물으실 때 그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차라리 그 부르심의 음성을 들을 때 잘못 했다고 할 것을~)
아마도 그들은 그 부르심에 기쁘게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워 자신들의 엄청난 실수를 후회하면서 그날밤, 울고 또 울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던 어느날, 태동을 느끼면서 장차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할만한 자녀가 태어나리라 기대했었으리라.
가인이라는 장남에 이어 아벨이라는 동생이 태어났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날 그 두 형제는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
형과 아우가 나란히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형을 제쳐 놓고 아우의 제사만을 받으셨다.
형은 동생 앞에서 보기좋게 망신당한 셈이된것이다. 카인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깊은 거절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곤 나의 불행은 바로 “너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실패는 성공한 너 때문이라는 생각, 나의 가난은 부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내 실패는 못난 부모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엄마를 상습적으로 구타할수 있는 마음처럼.
내 행복하지 못한 생활은 아내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나 하나보고, 오래토록 자란 가정을 떠나 따라나선 그 연약한 여인과 자신의 아이들을 버리는 마음처럼 말이다.
거절감의 결과는 분노이다. 그리곤 미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가인은 어느날, 기회를 엿보아 아우에게 분풀이를 하고 말았다. 결국 살인자의 모습으로 에덴에서 더 멀리 떨어진 동쪽의 땅 - ‘에덴의 동쪽’에서 방황하며 살게 되었다. 결국 본질을 해결치 못한 대용품은 방황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부모로부터, 아내나 남편으로부터 받는 거절감은 깊은 상처가 되고 그 분노로 ‘화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카인의 생각처럼 그의 부당한 살인 행위가 동생 때문이라고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러한가?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동생의제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임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이다.
자신이 믿음 없는 제사를 드림으로 상달되지 못한 제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동생 때문이 아닌 카인 자신의 문제였다. 우리 자신의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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