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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010. 10:12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아이비리그 진학 칼럼
필자가 한국에서 전공한 교육학을 20년만에 이 곳 오클랜드에서 다시 전공하면서 양국 사이의 문화의 차이와 그 동안의 시대의 변화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강의실에서 현대 교육의 바탕이 되는 교육학 이론을 배울 때는, 비록 그 교육 이론이 성립된 장소도 유럽이나 미국이었고, 교육학자들도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하여도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공감 할 수 있는 이론들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는 이론대로만 되어지지 않기도 한다.
때로 어린이들이 친구와 놀다가 억울한 일이 생기면 선생님께 다가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도움을 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긴장을 풀면 나의 교육엔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습관과 모성애가 물씬 묻어 나온다. 아이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상황을 묻고 해결안을 모색해서 제안한다. 아이도 만족해 하고 빠르게 사건이 해결된다.
그러나, 내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대학에서 공감하면서 배운 대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긴장할 때는 다르게 접근한다. 우선 아이에게 지금 몸의 어딘가가 다쳐서 아프냐고 묻고,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럼 우는소리 말고 또렷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시 설명해 보라고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상황을 제법 또렷이 잘 설명한다. 상황을 파악한 후엔 아이와 마찰이 된 친구도 함께 불러놓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하면 공평할까?’ 등의 질문을 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유도하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서로 타협안을 찾아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사이 좋게 지낸다.
아이들이 다시 사이 좋게 놀 수 있게 되었다는 결과는 똑같다. 그러나 교사가 아이의 응석을 받아 주고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집중하는 대신 아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 줌으로 해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연습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만들어 내는 법을 터득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운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과목에 presentation이 포함되어 있고 전 세계의 유수한 대학들이 debating 실력이 좋은 지원자를 선호한다. 자신의 의견을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거나, 다른 사람과 나의 의견이 다를 때 서로의 의견을 절충하여 바람직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은 단지 학교에서의 교육만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의 말씀을 존중하고 부모님의 옳은 결정에 순응하는 우리의 문화는 분명 아름다운 문화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있고 교육의 방법도 바뀌고 있듯이, 우리의 2세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 그저 말대답으로 치부되고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토론문화가 자리 잡혀야만 교육의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주기 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아이들의 진로를 대신 결정하여 따르게 하기 보다는 토론을 통해 모두가 만족하는 목표를 세울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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