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개
2,277
24/08/2011. 15:15 NZ코리아포스트 (202.♡.85.222)
새움터
이번 호에서는 필자가 평소 일선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 동안 변변치 않은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일선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한국인 이민자로서 참 많은 부분에서 오해를 사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하리라 본다. 아무리 뉴질랜드가 세계적으로 다문화 사회의 모범이라고는 하나 이 사회 역시 우리 같은 아시안들을 본격적으로 받아 드린 지가 겨우 20여년 밖에 되지 않다. 그나마도 문화적 언어적 장벽으로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 없이 서로에 대한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만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키위들은 그런 것 같아!” 아마 키위들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당연히 편견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를 많이 느낀다. 대학에서 공부중인 이론 중 ‘상징적 상호론’이 있는데 요지는 “인간의 사회는 구성원 상호간의 원활한 접촉에 의해서 유지 발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서로가 아직까지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편견 중에 필자에게 가장 마음이 걸리는 것이 있다. 현지 사회에서 특히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현지인들이 한국인들을 가끔 다혈질로 보는 견해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한국인 개개인이 모두 다 참을성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현지인들은 어떨까? 아마도 그들도 당연히 다혈질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는 어느 특정 집단의 민족성이 아닌 개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화를 낼 상황이 발생 했을 때, 현지인들에게는 상황을 설명할 능력(언어적인 능력)과 도와줄 조건(가족 또는 친구 등)이 있고 우리에겐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전체를 다혈질인 경우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던 중 필자가 얼마 전 미국에서 간행된 논문 중에 흥미로운 논문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에 주변인에게 우리 한국인 성향을 알리는데 유용하게 쓰는 것이 있다. 바로 “화병”이라는 것이다. 화병은 미국 정신과 진단책에도 기재되어 있는 한국인만의 특이한 정신증상으로 그 역사적, 문화적 유래를 이야기하면 밤이 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한국인은 현지인들이 생각하는 다혈질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논문인 것이다. “화병”이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참다가 참다 생긴 병이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참았기에 병이 생길까?
그렇다 우리는 오늘도 참는다. 때로는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 배웠으니까. 때로는 말이 안되니까 참고, 문화가 틀리니까 참는다. 우리의 희망인 아이들도 아마 참을 것이다. 우리들과 비슷한 이유로. 청소년 상담을 하다가 늘 묻는다 “어떻게 그 동안 참았니?” 내 경험으로는 대부분은 눈물을 보인다. 가만히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그냥 한동안 같이 침묵을 지킨다. 이 아이들에겐 단순히 성격상의 문제로 “Anger Management”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종종 일이 발생하면 아이들을 나무란다 “그래도 참았어야지”. 맞다. 우선은 참았어야 한다. 하지만 이젠 거기에 더불어 “네가 얼마나 참았기에...”라고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는 믿는다: 대부분의 우리에게,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트레스 해소법(Stress management)과 자신의 감정을 자연히 표현 할 수 있는 방법(Assertive Training)이 필요한 것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필자는 “화병”이라는 논문을 누구에게 전할까 가방 한 켠에 두고 일을 나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nger management”가 아니고 스트레스를 표현할 기술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새움터 (김학연 /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