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드 사운드 → 퀸스타운(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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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 → 퀸스타운(Ⅱ)

0 개 1,611 NZ코리아포스트
양쪽으로 길이 뚫리면 도로에는 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그 때문에 땅이 조각나서 생태계가 파괴될 가능성이 생긴다. 또 도로라는 벽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던 생명체들의 공간을 축소하고, 그들을 사람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자생력을 감소시키고 사람과 종속 관계가 되도록 만들어버린다. 따라서 사람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주는 것으로 자연을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대부분의 도로는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목적들에 맞춰 만들지만 94번 도로는 순전히 관광 목적으로 만든 길이다.

모스번(Mossburn)에서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테아나우에 도착했다. 호안선이 500킬로미터나 되는 커다란 호숫가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깨끗한 거리와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푸근했다. 권 선생의 말대로 바다가재 공판장에 가보았는데, 유리문 속에 팻말이 걸려 있다. “Open Monday ~ Friday” 주말이라 판매하지 않는단다. 만약 이쪽으로 여행을 오는 사람이 있다면 꼭 평일에 들러 바다가재를 먹어보길 권한다. 살아있는 바다가재를 판매하므로 취향에 맞게 조리해서 먹으면 된다. 뉴질랜드에서 바다가재를 직접 잡을 수 없는 경우에는 테아나우의 공판장이 바다가재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테아나우 호수와 건 호수(Lake Gunn), 퍼거스 호수(Lake Fergus), 거울 호수(Mirror Lake), 그리고 남알프스의 중심을 관통하는 길을 지났다. 셀 수 없이 많은 폭포와 눈 덮인 산, 이끼, 비치 숲, 맑고 차가운 계곡, 거침없는 능선과 평원, 바다와 조마조마한 협곡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절경이 길 전체에 담겨 있었다. 이 도로에서 보는 경치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이로움을 느끼는데, 사실 숨겨진 가치는 94번 도로에서 뻗어 나와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으로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작은 트랙과 샛길들에 있다. 뒤에서 자리를 펴고 있던 허영만 화백과 봉주 형님은 계속해서 좌우의 높은 봉우리를 보느라 고개가 뒤로 젖혀져 있고, 옆자리의 허 PD는 멀미도 잊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눈에 붙이고 다닌다.

밀포드로 가는 길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생수가 초당 수백 리터 흐르고, 다리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데, 물이 너무나 맑고 차가워서 물고기는커녕 이끼조차 보이지 않는다. 계곡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차갑고 맑은 공기가 기도를 따라 들어가니 오전의 나른함이 단번에 사라진다.

재롱둥이 키아새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남부 숲에서 볼 수 있는 꼬리가 긴 팬테일과 로빈, 톰팃 같은 호기심 많은 새들이 사람 가까이에 앉는다. 이 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산행 중에 만나게 되면 작은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오늘도 로빈 한 마리가 바로 옆까지 와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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