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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난다고 한다.
여린 나비의 파닥임이 대기에 영향을 미쳐
시간이 지나면 증폭되어 강력한 토네이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모국 싱가포르에서 알고 지내다가 소식이 끊겼던 두 친구는
10여 년 만에 한국에서 재회했고 우정이 돈독해졌으며 불국사에서 함께 템플스테이를 했다.
둘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 인연의 경이로움을 두 친구는 봄꽃처럼 눈부시게 간직하고 있다.
한국 친구의 추천으로 템플스테이를 할 기회가 생겼을 때 황유림(Calista Ng) 씨는 가장 먼저 진수진(Daphne Tan) 씨를 떠올렸다. 3년 전 싱가포르에서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학과로 유학을 온 유림 씨는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귀었지만 수진 씨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이 특별한 인연의 친구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 수진이와 같이 케이팝에 흠뻑 빠져 지냈어요. 중학교 때까지 친구로 지내다가 이후 서로 소식이 끊겼어요. 2년 전 인터넷에서 한국 정부로부터 초청받아온 싱가포르 장학생 명단을 보다가 수진이 이름을 발견하고는 그 친구인가 싶어 연락처를 문의해서 전화를 했더니 내 친구 수진이가 맞았어요. 얼마나 신기했던지!”
만나보니 수진 씨는 외국어대학교와 가까운 경희대학교 조리서비스경영학과에 다니고 있었고 자취하는 곳도 서로 가까웠다고 한다.
“무척 놀랐어요. 서울에서 유림이를 다시 만나다니! 강의를 따라잡으려면 한국 친구들보다 배 이상 노력해야 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시간 내서 함께 싱가포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마음속 얘기를 나누기도 해요. 한국에서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템플스테이여서 유림이의 제안이 참 반갑고 고마웠어요.”
서울에는 아직 이른 벚꽃의 개화 소식이 남녘에서 들려오던 3월 말, 불국사 템플스테이를 위해 두 친구는 신라시대 천년의 고도 경주로 떠났다.
어떤 남자친구를 만날까?
불국사 템플스테이체험관은 불국사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한국을 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찰을 온전히 보존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보였다. 단아한 한옥으로 지어진 체험관만 보고도 유림 씨와 수진 씨는 신기해했다. 체험관에는 불국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는 도림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두 사람에게 차를 내어 줬다. 두 사람이 학생 신분임을 밝히자 스님은 반색하였다.
“저도 학생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불교는 인문학이지요. ‘마음’이 불교 공부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 중요한 것이 ‘연기(緣起)’이죠. 현재는 과거 없이 존재할 수 없지요? 불교에서는 세상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요. 지구인 70억 명 중 우리가 오늘 여기서 만난 것도 어떤 원인들의 결과물인 것이지요. 선한 원인은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이니 연기의 진리를 알고 복을 지어야 합니다.”
눈빛을 반짝이며 집중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호응하는 두 친구의 모습에 스님은 더욱 열정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보고 성장시키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다. 특히 남자친구를 사귈 때는 ‘홀로 있어도 마음이 충만한 사람’인지 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스님이 “오늘 내가 말한 것 다 잊어도 이건 꼭 기억해야합니다. 하하하!”라고 경쾌하게 그러나 힘주어 말씀하시자 두 친구는 동시에 “예!”하고 유쾌하게 대답했다.
이어 하나하나가 변화무쌍한 마음을 상징하는 구슬을 엮어 단주 만드는 법을 배웠고, 한지로 만든 꽃잎을 붙이며 연꽃도 만들었다. 정결하지 못한 진흙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처럼, 환경에 구애받지 말고 삶을 꽃 피우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고 하자 수진 씨는 “와우, 참 멋진 생각이네요. 연꽃처럼!”이라고 했다.
봄, 봄을 만나다
도림 스님의 안내로 진달래가 분홍 꽃구름처럼 피어난 선원숲길을 걸으며 걷기명상을 배운 뒤, 두 사람은 천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불국사에 이르렀다. 막바지 꽃샘추위로 날은 흐리고 자못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불국사는 다른 세상처럼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수려한 사찰건축과 어우러진 활짝 핀 벚꽃, 목련, 산수유꽃 등이 불을 사방에 켜놓은 듯 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 앞 목련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목련, 벚꽃 풍경 뒤로 저만치 보이는 다보탑, 석가탑의 모습도 눈길이 머물렀다. 스물넷 꽃다운 청춘의 동갑내기 친구들은, 봄꽃과 사찰을 배경으로 이른바 ‘인생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봄이 봄을 만난 풍경이었다.
절에서 무설전이란 공간은 스님들의 강의실이다. 강의실을 ‘설법이 없는 곳’이란 뜻의 무설전(無說殿)이라 이름 붙인 까닭은 진리의 본질이 언어를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곳에서 유림 씨와 수진 씨는 도림 스님에게 108배를 배우고 108염주를 만들었다. 팔과 다리, 손과 무릎, 발, 이마를 온전히 느끼며 바른 자세를 익히고 스스로를 가장 낮춘 자세에서 염주 한 알을 꿰었다. 그렇게 고요히 절을 이어갔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낮이 봄꽃 찬란한 빛[色]의 시간, 채움의 시간이었다면 밤은 침묵의 어둠[空] 속에 소리로 마음을 가다듬는 비움의 시간이었다. 산새 소리마저 잦아든 고요한 저녁의 산사에 생동하는 법고 소리가 울려왔다. 말과 글은 인간의 소통수단이기에 인간을 넘어 뭇 생명들에게 진리의 소리를 전하는 방편이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의 사물 소리와 진동이라고 소개하자 두 친구는 탄성을 자아냈다. 언어를 넘어선 진리, 곧 ‘무설(無說)’의 가르침을 환기하는 순간이었다. 대웅전에서 저녁예불에 참석한 두 사람은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말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했다.
석굴암 석가모니불의 시선으로 바라본 동해
이튿날 새벽 5시 무렵, 토함산으로 향했다. 유명한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부터 전망대에는 해맞이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토함(吐含), 곧 머금고 있는 것을 토해낸다는 산의 이름은 인접한 동해의 습기와 바람의 영향으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짙은 구름과 안개로 휩싸이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가도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나면 수려한 산세와 일출을 볼 수 있다니 일출풍경이 자못 기대감을 키웠다.
멀리 동해의 수평선 따라 바다와 하늘이 시시각각 빛의 향연을 벌이는 듯하더니 눈부신 태양이 솟아올랐다. 토함산 석굴암 석가모니불의 시선은 동해를 향해있다고 한다. 저 울림 깊은 일출을 석가모니불은 어떤 마음으로 그 긴 시간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생각하며 석굴암으로 향했다. 세계 최초의 인공 석굴, 1,300여 년의 시간을 오롯이 간직한 불교조각 극치의 아름다움. 석굴암 앞에 붙는 많은 수식어는 눈으로 보는 순간 초라해진다. 단단한 화강암의 물성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조형미,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자연스럽게 구축한 원형 주실의 천장, 기운생동하는 인왕상과 사천왕상, 관음보살상 앞에서 두 친구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석굴암의 감동을 간직한 채 아침의 불국사를 찾았다. 마침 불국사 주지 종우 스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는데, 스님은 두 사람에게 단주를 선물했다. 다시 활기찬 산새 소리와 화사한 봄꽃이 불국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두 친구는 1,300년 전 사람들이 만든 이상향을 거니는 이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설렘을 유지하는 습관 몇 가지
두 사람은 불국사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첨성대로 향했다. 1,000년 전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신라인의 자취가 어려 있는데 그 옛날 천문관측대였던 첨성대는 옛사람들이 바라본 하늘은 어떠했을지 상상력을 자극했다. 첨성대 주위에는 벚꽃이 한창이어서 유림 씨와 수진 씨는 빼어난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벚꽃명소인 대릉원으로 향하는 돌담길도 벚꽃길로 조성되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즐겁게 벚꽃길을 걷던 유림 씨가 “와, 이게 바로 이너 피스(Inner Peace)!”라고 말했다.
“여긴 서울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동안 공부하느라 지쳤는데 지금 완전한 ‘내면의 평화’를 느끼고 있어요.”라고 하자 수진 씨가 공감의 웃음을 지었다. 고대 신라왕들의 웅장한 무덤을 보며 수진씨는 “싱가포르에서도, 서울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에요. 책으로 배우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어젯밤 배운 108배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어요. 당연하게 생각했던 제 팔, 다리, 무릎 등을 온전히 느꼈고 절을 하면서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유림 씨는 “저는 스님들께서 법고 치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그분들이 집중하는 느낌이 참 멋있다고 느꼈고 소리로 다른 생명체에게 따스한 마음을 전한다는 생각이 감동적이었어요.”라며 소감을 들려줬다. 대릉원 풀밭에서 따사로운 봄볕과 벚꽃 향기를 만끽한 뒤 두 사람은 타임 슬립 하듯 요즘 젊은이들의 감성 가득한 황리단길을 산책하고 한옥을 개조한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두 친구는 새삼 서로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유림이는 삶의 주머니가 많은 친구예요. 그 주머니에는 다양한 관심 분야, 경험이 담겨있어요. 그래서 문제 해결책도 많고요. 외대에 유학 온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잘 적응할 수 있게 돕는 봉사동아리 국제학생회의 회장도 맡았죠.”
“수진이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친구예요. 공부도 잘하는 국가장학생이고요! 그렇다고 공부만 하진 않아요. 인생을 즐길 줄도 알죠. 노래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코로나 이전에는 버스킹도 다녔었죠.”
친구를 향한 이런 풋풋한 마음이 인연의 끈을 더욱 튼튼하게 하리라. 봄이란 글자는 평범했던 것들을 설레게 만든다. 비, 바람, 약속 같은 말 앞에 봄을 붙이면 설렘의 기운이 샘솟는다. 청춘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에게 청춘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향기로 자리매김한다. 두 친구의 봄을 닮은 인연은 지지 않는 봄꽃으로 두 사람의 마음에 피어있을 터이다.
■ 경주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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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