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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高血壓)은 ‘소리 없는 죽음의 악마’ ‘침묵의 살인자’라고 할 정도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결과 전 세계 사망에 대한 위험요인 1위가 고혈압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 중 고혈압 환자는 26.9%로 나타났다. 한편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지난해 고혈압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사람은 1374만명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근 2년간 고혈압 환자가 한 해 52만-53만명씩 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975년 6억명이던 세계 성인 고혈압 인구는 2015년 11억명 이상으로 증가하여 40년만에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고혈압 환자는 15-20억명 이상이며, 세계 인구의 25-3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고혈압연맹(World Hypertension League)은 고혈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고혈압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5월 17일을 ‘세계 고혈압의 날(World Hypertension Day)’로 2005년에 정했다.
미국심장협회 학술지 <고혈압(Hypertension)> 7월 20일자에 실린 미국 LA 시더스-시나이병원(Cedars-Sinai Medical Center)의 조셉 에빙거(Joseph Ebinger) 박사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고혈압이 당뇨병, 심부전 등 다른 기저질환보다도 코로나 증세를 악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즉, 다른 만성질환 없이 고혈압만 있는 경우 코로나19 증세가 악화해 중증(重症)으로 입원할 위험이 고혈압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2.6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오미크론(Omicron) 변이 돌파감염은 모든 연령의 성인, 특히 고혈압이 있는 사람에게서 더욱 많이 발생 할 수 있다고 했다. 에빙거 박사는 부스터샷(booster shot, 추가접종)을 맞고도 입원한 환자의 대다수가 고혈압 환자라는 것은 부스트샷이 고혈압 환자를 중증화로부터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에 대한 인식 제고를 통해 보호 장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혈압은 혈압(blood pressure)이 여러 원인으로 인해 정상보다 높아진 상태를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혈압 기준(18세 이상 성인)은 수축기 혈압 14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 90mmHg이상인 경우로 정한다. 혈압이란 혈액이 동맥(動脈)혈관 벽에 가하는 힘을 말한다. 혈액의 압력은 심장이 수축하여 동맥혈관으로 혈액을 보낼 때 가장 높고(수축기 혈압, 최고혈압), 심장이 이완하면서 혈액을 받아들일 때 가장 낮다(확장기 혈압, 최저혈압).
대한고혈압학회와 미국심장학회의 혈압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정상 혈압: 수축기 혈압 120mmHg 미만, 확장기 혈압 80mmHg 미만. (2)고혈압 전 단계: 수축기 혈압 120-139mmHg이거나, 확장기 혈압 80-89mmHg. (3)1기 고혈압(경도 고혈압): 수축기 혈압 140-159mmHg이거나, 확장기 혈압 90-99mmHg. (4)2기 고혈압(중등도 이상 고혈압): 수축기 혈압 160mmHg 이상이거나, 확장기 혈압 100mmHg 이상.
고혈압은 일차성(본태성) 고혈압과 이차성 고혈압으로 구분된다. 고혈압의 90-95%는 원인 질환이 발견되지 않는 본태성 고혈압(essential hypertension)이며, 나머지 5-10% 정도는 기저질환으로 혈압이 높아지는 이차성 고혈압이다. 이차성 고혈압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환에는 만성신장병, 심혈관 질환, 대동맥 협착, 알도스테론증(Aldosteronism), 쿠싱 증후군, 갈색세포종, 갑상선 기능 항진증 또는 저하증, 임신중독증, 수면무호흡증 등이 있다. 이차성 고혈압의 경우에는 원인 질환을 찾아 치료하면 혈압이 정상화된다.
본태성 고혈압이 생기는 근본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심장이 한 번 수축할 때마다 뿜어대는 혈액량인 심박출량의 증가나 말초 혈관저항의 증가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또한 고혈압과 관련된 위험인자로는 음주, 흡연, 고령(高齡), 운동부족, 비만, 짜게 먹는 식습관, 스트레스 등 심리적 및 환경적 요인 등이 있다. 유전적으로 부모가 모두 고혈압 환자인 경우는 자녀의 80%가 향후 고혈압 환자가 될 수 있다.
고혈압은 합병증이 없는 한 증상이 거의 없다. 고혈압에 의한 합병증은 혈관, 뇌, 심장, 신장, 눈 등 전신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이 전혀 없다가 심장발작이나 뇌졸중(腦卒中)처럼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혈압이 잘 조절하지 않으면 허혈성•출혈성 뇌졸중, 심부전, 심근경색, 부정맥, 신부전, 망막증, 대동맥박리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을 유발한다.
고혈압은 혈관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어 혈관을 단단하게 하는 동맥경화증을 비롯하여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이 붙어 혈관이 좁아지는 죽상동맥경화증의 진행을 악화시켜 뇌졸중, 관상동맥질환 등 심뇌혈관 질환의 원인이 된다. 그 외 대동맥확장증, 대동맥박리증, 하지 혈관이 좁아지고 막히는 말초혈관질환의 원인이 된다. 고혈압은 뇌졸중의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이다.
고혈압과 관련된 뇌졸중은 뇌의 미세한 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열공성 뇌경색(lacunar infarction)과 뇌출혈 그리고 죽상경화의 악화에 의해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腦梗塞) 등이 있다. 뇌의 큰 동맥이 막히는 경우 급성 허혈성 뇌경색이 발생하며, 뇌혈관이 터지는 경우는 뇌출혈(腦出血)이 발생할 수 있다. 고혈압은 죽상경화의 주요한 악화인자로 죽상경화증의 진행으로 인해 혈관이 막히거나 혈전(血栓, 피떡)을 유발하는 뇌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혈압은 뇌졸중에서 유발되는 혈관성 치매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에도 위험인자로 작용한다. 고혈압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이 생길 위험을 높이며, 심방세동은 뇌졸중 위험을 5배, 치매 위험을 2배 정도 높인다. 고혈압이 지속되면 심장 근육이 비대해지며 뻣뻣해져서 충분한 이완을 하지 못하는 심장의 이완 기능 장애가 발생하며, 수축 기능까지 저하되면 심부전(心不全)으로 진행할 수 있다. 국내 심부전 환자의 1/5가량이 고혈압에 의해 발생한다.
고혈압으로 신장(사구체) 내 압력이 증가되면 신장 조직 및 혈관을 손상시켜, 신장기능이 저하되고 단백뇨(蛋白尿)가 발생할 수 있다. 초기에는 단백뇨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점차 악화되면 신경화증, 만성콩팥병, 요독증(尿毒症, uremia)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눈의 망막 혈관 폐색은 고혈압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구 내의 미세혈관이 좁아지고 혈관벽이 두꺼워지며, 이후 혈관이 막히거나 출혈이 발생하면 시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 성인 고혈압 환자 중 고혈압 약제를 꾸준히 처방받는 환자는 570만명 가량이며, 이 중 60%가 2가지 이상의 고혈압 약제를 사용하고 있다. 고혈압의 유병률은 연령 증가에 따라 증가하여,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에서 고혈압 유병률은 65.2%에 달한다. 이는 나이가 증가하면서 혈관의 벽이 두꺼워지고 굳어져서 혈압에 영향을 준다.
한국인의 고혈압에 관한 인지율, 치료율 및 조절률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에 과거 30여년간 우리나라의 고혈압 유병률에 변화가 없음에도, 평균 혈압 수준은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고혈압 유병자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여전히 미조절율이 56%에 달해 앞으로 좀 더 적극적인 교육, 홍보 및 치료가 필요하다.
고혈압의 진단은 정확하게 혈압을 측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혈압은 측정 시간, 측정 환경, 측정 부위, 임상 상황, 외부 자극 등에 따라 변동성이 큰 수치이므로, 표준적인 방법으로 여러 번 측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표준적인 측정 방법은 허리를 편 바른 자세로 앉아서 최소 5분간 충분한 안정 후 자극이 없는 환경에서 1-2분 간격으로 2회 의사가 혈압을 측정하는 청진법(聽診法)이다.
고혈압 치료의 목표는 혈압을 140/90mmHg 미만으로 조절하여 심뇌혈관 질환 및 사망률을 낮추는 데 있다. 이미 심뇌혈관 질환이 발생한 환자에서는 혈압 조절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혈압 관련 임상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수축기 혈압을 10-20mmHg, 이완기 혈압을 5-10mmHg 낮추면 뇌졸중 위험은 30-40%, 허혈성 심질환은 15-20% 정도를 낮출 수 있다.
다만 목표 혈압은 환자가 가진 심뇌혈관 질환의 위험도 및 동반 질환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당뇨가 있는 고혈압 환자의 치료 목표는 140/85mmHg 미만이지만, 그 환자가 심혈관 질환의 과거력이 있다면 130/80mmHg 미만으로 치료 목표가 더 낮아진다. 또한 만성 콩팥병이 있는 고혈압 환자는 알부민뇨(尿, Albuminuria) 동반 여부에 따라 목표 혈압이 10mmHg 정도 차이가 난다.
고혈압 치료의 중요한 축의 하나가 비약물 치료인 생활요법이므로 환자 본인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확인하고 교정하여야 한다. 생활요법에는 소금 섭취 제한, 체중 감량, 절주, 운동, 식사조절 등을 실천해야 한다. 건강한 식습관은 칼로리와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채소, 과일, 생선류, 견과류, 유제품의 섭취를 증가시키는 식사요법이다. 고혈압 환자에게 권장되는 식단은 혈압을 낮추는 생활요법 중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소금의 섭취량은 하루 6g(1티스푼 정도) 이하로 한다. 고령, 비만, 당뇨병 또는 고혈압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서 소금에 대한 감수성이 높기 때문에 저염식(低鹽食)의 효과가 클 수 있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을 기본으로 아령 운동과 같은 등장성 근력운동과 기마자세 유지하기와 같은 등척성 악력운동을 병행하도록 한다.
고혈압을 예방하여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생활수칙은
▲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는다,
▲ 살이 찌지 않도록 알맞은 체중을 유지한다,
▲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운동을 한다,
▲ 담배는 끊고 술은 삼간다,
▲ 지방질을 줄이고 채소를 많이 섭취한다,
▲ 스트레스를 피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다,
▲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 등이다.
일본 오사카대학 연구에 따르면, 생활 습관 개선으로 인한 혈압 관리와 수명 연장 효과는 80세 이상에서도 유용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신규 확진자가 10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재유행 정점 규모는 하루 20만명 내외 수준에서 그칠 전망이다. 7월 29일 0시 기준 위중증 환자 234명, 사망자 35명으로 두 달여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면역회피가 강하고 전파가 빠른 BA.5 검출률이 56.3%로 사실상 우세종이 되었다. 한편 백신 4차 접종 완료자는 전체 국민의 10.6%인 546만여 명이다.
계속되는 폭염(暴炎)과 열대야(熱帶夜)로 인하여 무더운 실외와 냉방 실내를 오가면 급격한 체온 변화와 함께 혈압도 요동친다. 이러한 ‘비상’ 사태를 맞아 고혈압 환자는 혈압 관리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 장기간 혈압이 조절되지 않고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 합병증은 물론,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체중조절, 식사요법, 운동요법, 약물요법 등 예방과 치료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