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점점 더 단순해지다 못해 조금 전에 읽은 글도 금방 잊어버리는 요즘의 나. 머리카락이 남보다 빠르게 백발이 되어 버리더니 머릿속도 그에 못지않게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말도 점점 더 어줍어지고, 평소 잘 쓰는 단어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고민할 때가 많다. 아마 혼자 놀 때가 많아서일 수도 있겠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남편이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남편이 싫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남편처럼 혼자 노는 시간이 대부분이며,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더니. 어느덧 비슷해진 우리 두 사람을 보면 둘이 함께 산 35년이 적은 세월 같지는 않다. 어쩜 지병으로 기운이 소진 되어 웬만한 일이면 다 그려려니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약과 기계의 힘으로 심장이 뛰고 있지만, 어제 만난 주치의는 페이스메이커가 있어도 심장은 멈춘다고 말했다. 그렇겠지.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심장이 멈추고 싶어 하는데, 그걸 막을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만보 걷기를 하던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피곤은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그 이후로 의욕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모든 것이 귀찮고 집중하기도 힘이 들고 가슴도 답답하다. 지금 역시 약간의 두통과 더불어 답답한 가슴으로 깊은 숨을 내쉬면서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약간의 미열이 있는 듯도 하다.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다. 어제 찍은 목 엑스레이와 혈액 체취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4~5일 정도는 기다려야 하니, 그동안 마음 편히 재미있는 드라마나 보면서 지내련다.
어제 병원에 다녀오는 바람에 큰애와 즐거운 데이트를 했다. 입부터 행복하게 하고 싶었다. 캄보디아 레스토랑에 가서 락사와 군만두를 먹었다. 맛있게 먹었다. 그 집 음식이 맛있기도 했겠지만, 큰애와 단둘이 사먹는 거라서 더 맛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서 아이스크림과 브라우니와 애플파이를 샀다. 가족들의 디저트를 위한 장보기였다. 물론 내가 먹고 싶은 것들로만 샀지만.
엊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외출을 한 날은 빨리 피곤해져서 일찍 잠이 드는 편이다. 그런 만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게 된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뭔가 하고 싶다. 될 수 있으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보고 싶다. 나의 그런 바람을 큰애에게 말했다. 큰애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할 일의 힌트를 얻게 된다.
큰애와 나는 우리 둘이서 한 작업이 제법 있다. 둘이서 한 작업이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재미도 있었고, 스스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었다. 음악 앨범 디스크재킷, 책 출판 작업들을 하면서 창조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내가 하는 작업이 돈을 벌게 한다면야 금상첨화이지만,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라면 그 작업은 나에게 있어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 그대로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 또한 없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건강하지 못해도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내 몸에 무리가 오는 일은 피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
내가 이번에 왜 이렇게 아팠는지 나는 잘 안다. 나 자신을 과신해서 무리를 한 탓이다.
과신이 불행을 초래한다. 나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게 되면 몸과 마음에 무리가 오지 않으며, 행복해진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대 영성인 들도 모두 다 우리가 사는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요즘 법륜 스님의 행복학교에 등록을 했는데, 법륜 스님께서는 ‘욕구에 구애 받지 않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씀하셨다. 요즘 내가 행복한 이유가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내 건강 때문이지만, 내려놓으니 감사와 편안함의 선물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렸다.
우주의 흐름에 따르면 인생이 잘 풀린다는 말을 그 어디에선가 읽은 거 같은데, 우주의 흐름에 따른 다는 게 바로 내 에고를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리라.
물의 흐름에 따라 함께 흘러가면서 모난 돌이 둥그런 자갈돌이 되듯 세월이라는 물은 우리들의 모난 곳을 둥글게 깎아내려 간다. 돌이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매우 아팠을 것이다. 돌이 연마가 되듯 우리 또한 모진 세월 속에 이리저리 깎이면서 둥글어졌으리라.
큰애는 나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자신이 만드는 짧은 도깨비 애니메이션에 스토리들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1분 정도의 스토리니까 가볍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엄마의 행복을 위한 딸의 배려 깊은 제안인 것이다.
큰애가 하는 일이 요즘 새롭게 밀려오는 물결인 메타버스라는 것이다. 사실, 난 들어도 잘 모르겠다. 너무 생소한 단어들인데다가 그저 내 딸이 작업하는 것이 AR, VR, 그리고 아바타...등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그것들뿐이다.
메타버스가 뭔지 모르지만, 딸 덕분에 메타버스에 무임승차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 딸들에게 해 준 것도 없이 낳아서 대충 키운 것 밖에 없는데, 딸들 덕분에 삶이 즐겁다.
내 창조물들 중 딸들이 가장 큰 창조물인 거 같다.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었더니, 엄마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살면서 내가 한 일 중 제일 잘 한 일인 거 같다.
큰애와 둘째와 다르게 막내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이 느렸다. 느긋한 성격에 아직도 노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아 선생님들이 그 길을 가면 좋겠다고 했지만, 막상 디자인 공부를 하더니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그만 두었다.
대학 중퇴 후 단순노동인 아르바이트만 하면서도 불만이 없다. 어찌 보면 우리 가족들 중에 가장 행복한 아이일지도 모른다. 동물들을 무척 좋아하고 특히 고양이 사랑은 유별나다. 그 덕분에 우리 집 페로는 왕비마마가 따로 없다.
막내는 취미로 디지털 아트를 하는데, 막내의 그림을 좋아하는 게임 마니아들이 그림 주문을 하곤 한다. 대부분 게임 캐릭터들인데, 내가 봐도 참 잘 그리는 것 같다. 큰애는 그런 막내의 일러스트 재능을 자신이 만드는 아바타에 써먹고 싶어 했다.
나는 대뜸 내 아바타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를 했다. ‘파미 할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막내가 그린 일러스트로 큰애가 아바타를 만드는 것이다. 내 아바타가 있다면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메타버스에 무임승차하고 싶은 야무진 할머니의 꿈을 두 딸들이 이뤄주고 싶은가 보다. 이참에 딸들 덕을 톡톡히 봐야겠다. 올해 말부터 나는 시내버스에 무임승차를 하게 되는데, 메타버스에도 무임승차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딸들이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내 아바타를 만들려면 아마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동안에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서 짧은 도깨비 이야기들을 상상하고 쓰면서 기다려야겠다. 그나마 남아 있는 나의 에너지를 소중하게 잘 간직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겠다.
감사하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있음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사랑해~~~내 몸아, 그리고 내 딸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