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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내향적인 성격 탓인가요? 저는 어릴 때에는 ‘체육’은 너무 불편했습니다. 급우 모두들이 보는 앞에서 뚱뚱한 몸둥이를 움직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최악은 탈의실이었습니다. 저는 왠지 남들에게 제 맨살, 벗은 몸 보여주기가 거의 병적으로 싫었습니다. 좀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제 ‘사생활’의 선과 사회가 설정한 집단성의 선이 서로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냈던 것인데, 저는 좀처럼 남자들끼리 서로 벗은 몸을 보여주어도 되는 사회의 ‘상식’에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최종 학위를 받아 군 면제가 되어서 다행이지, 이런 성격으로 병영 생활을 어떻게 했을 것인지 저는 상상 자체가 안갑니다.
소비에트 시대의 공중 전화기들은 거의 다 아주 두꺼운 부스 안에 위치하곤 했습니다. 역설이지만, “집단주의”를 내걸었던 사회는 역으로 그 공민들의 통화의 프라이버시를 나름 챙겼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1991년에 평생 처음으로 서울에서 부스 없는 공중 전화기를 보게 됐습니다.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개인적 통화를 엿듣게 되는 게 내 인권 침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계속 했는데, 제가 체류했던 한 한국 대학의 기숙사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은 아마도 저뿐이었을 것입니다. 한데 소련이 망한 뒤에 러시아에서도 점차 ‘비경제적인’ 공중 전화기 부스들이 그 족적을 감추게 됐습니다.
처음 14년 전인가 페이스북을 보게 됐을 때의 충격도 엄청났습니다. 저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 개인 사생활의 상당 부분을 공개하는 가상 공간을 처음 본 것입니다. 모종의 대사회적 ‘의견 피력’형 포스팅들보다, 집안, 아이, 음식 사진이나 비디오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띄곤 했습니다. 처음에 그걸 보고 그냥 어리둥절했습니다. 정식으로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아이들의 사진이나 비디오를, 초상권 관련의 아무 절차도 없이 페이스북 등에 기재하는 부모들이 아동권 침해를 하는 게 아닌지, 계속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권리’ 차원보다 이 사생활 공개의 ‘의미’가 너무너무 궁금했습니다. 내가 먹은, 아니면 먹으려는 음식을 촬영해 공개하면 나 본인이 좀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워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식량 섭취 과정은 그 본질상 분비 과정 만큼이나 개인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남에게 내 먹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남들의 먹는 소리를 그다지 듣고 싶지도 않는데... 그러나 ‘먹방’이라는 한국어 신조어가 이미 영어나 러어 사전에도 외래어로서 들어간 지금에 와서는, 이런 생각들은 아마도 엄청나게 ‘구시대적’일 겁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개인은 ‘초연결’의 삶을 살면서 그 사생활 관련 제반 권리들을 스스로 반납하곤 합니다. 사생활 장면 하나하나를 SNS에 올리고 남들이 보고 듣는 데에서 휴대폰으로 들으란 듯이 통화하고 늘 휴대폰으로 연결이 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동 통신이 혹시나 갑자기 없어지면 그냥 아주 기쁘게 제 젊은 시절의 옛 ‘정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제 아이들만 해도 휴대폰과 SNS 없이는 아마도 하루라도 살아가기가 힘들 듯합니다. 그런데 초연결 시대의 인간들의 이 자발적인 ‘사생활 반납’의 저변에는 ‘고독’의 짙은 그림자가 깔려 있습니다. ‘페친’들이 수천 명 되고 인스타에서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얻어도, 이 사람들이 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이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서 뭔가를 내주고 희생할 수 있는 진짜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세계와 ‘연결’돼 있지만, 누구와도 ‘친밀’하지 못합니다. 물론 특히 성적 의미의 ‘친밀 관계’들이 - 성이 인간에게 1차 욕구인 만큼 - 그들에게 종종 생기지만, 그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파트너싶들은 대개 단명입니다. ‘노동자’에서 ‘소비자’로 그 정체성을 바꾼 후기 자본주의형 인간은, 친밀한 관계도 최신 아이폰처럼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관계 초기의 단맛을 만끽하고 나서 관계 유지를 위한 비용 (시간과 에너지, 인내심 발휘 등)을 지불하는 대신에 기존의 관계를 해체시키고 새 관계를 맺어 그것도 ‘소비’하는 것입니다. 단기 이익 위주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시회답게, 인간 관계에서도 장기 투자보다 단기적인 ‘인간에 대한 소비’가 선호되는 것이죠.
초연결 사회, 사생활 공유의 ‘쿨함’은 단기성 위주 삶 속에서의 고독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매분 매초에 SNS을 확인해도 고독을 잊기란 궁극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원자화의 정도가 높은 노르웨이 같은 사회만 해도, 아마도 20-30년이 지나면 공장 노동자보다 내면이 병든 동료 시민들을 치료해야 할 심리학자와 상담사, 정신 질환 전문가, 그리고 인생코치 등의 수는 훨씬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봐야 이런 사회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 박 노자
오슬로대학교수, 한국학자, 칼럼니스트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대학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