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왕가누이 조폭 완장 금지법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칼럼을 기억하시는 독자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왕가누이 지역에서 갱, 즉 조직 폭력배와 관련된 완장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는 지역 법률이었는데, 2009년 제정된 이후로 아직도 해당 지역에서 적용되고 있다.
얼마 전 비슷한 명칭의 법률이 제정되었다. 필자는 이 법을 정부 건물 조폭 완장 금지법이라 번역했는데, 이 법률의 정확한 명칭은 Prohibition of Gang Insignia in Government Premises Act 2013이다. 이 법률에서 언급하고 있는‘gang’이라는 단어는‘갱’보다‘조폭’이 더욱 적절한 단어라 생각되어 이하 조폭이라 칭한다.
정부 건물 조폭 완장 금지법의 내용은 왕가누이 조폭 완장 금지법과 비슷하지만 특정 지역이 아닌 뉴질랜드 전 지역에서 적용된다. 이 법률에 따르면 정부청사나 공공기관 그리고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건물에서 조폭 관련 완장을 착용하는 것은 불법이고, 이를 위반할 시에는 최고 $2,000의 벌금이 부과된다.
조폭 완장이 뭐 별거라고 법까지 만들어서 못하게 하나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오클랜드 근교에서 거주하시는 교민들은 갱단을 본적도 없고, 관심 밖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지방 도시에서는 갱단과 관련된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무루파라라는 로토루아 인근 도시에서 17살 청소년이 경쟁관계에 있는 조폭이 애용하는 색깔의 셔츠를 입고 있단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조폭이 완장을 차고 있다고 해서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길거리에서 가죽재킷을 입고 조폭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모여있다면 독자는 어떻게 하시겠는가? 그냥 아무런 일 없듯이 가던 길을 걸어가시겠는가? 아니면 길을 돌아서 조폭들을 피해 가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조폭들을 피해가지 않을까 싶다. 이는 교민들만이 아닌 유러피안 또는 파케하라 부르는 뉴질랜드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필자만해도 집을 보러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 했지만, 길 건너편에 모 조폭의 아지트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구매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정부 건물 조폭 완장 금지법을 제정하기 전에, 국회에서는 완장을 착용하는 것은 의복에 관한 시민의 당연한 자유이자 권리이고, 완장의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의 침해가 아니냐는 문제로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국회의 표결 결과를 보면 전체 120표 중 69표로 가결 되었는데, 이 법안에 반대한 정당을 보면 예상대로 노동당, 녹생당 그리고 마오리당이 주를 이룬다. 이 법안을 지지했던 국민당의 마이크 새빈(Mike Sabin) 국회의원에 따르면 조폭 완장의 역할은 intimidation, 즉 위협이라고 한다. 조폭 완장을 얻기 위해 조폭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그렇게 얻게 된 조폭 완장은 다시 시민들을 위협한다는 논리다. 법안을 반대하던 노동당의 논리를 들어보면 조폭 완장을 금지하는 것은 겉치레 일뿐 바뀌는 것은 없다고 한다. 즉, 조폭 활동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정부 건물 조폭 완장 금지법은 가결되었고, 이 법안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건물에서 적용되는데, 이는 학교 건물 그리고 학교 소유의 운동장에서도 적용된다. 그러면 정부 건물 조폭 완장 금지법이 금지하는 조폭 완장은 무엇일까? 이 법은 34개의 조폭 그룹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들과 관련된 모든 기호나 상징 즉 사인관 심볼이 금지되고 있다. 단 이미 새겨진 문신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는지, 문신은 금지된 조폭 완장에서 제외된 듯 하다.
뉴질랜드에 조폭이란 것이 있었나 하시는 분은 Lee Tamahori 감독의 Once Were Warriors라는 뉴질랜드 영화를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뉴질랜드 마오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어두운 영화이지만, 갱에 관한 단편적인 일상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