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슨 산장은 굴랜드 다운즈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지형을 지난 후 나오게 된다. 몇 개의 구름다리가 ‘큰 강(Big River)'이라고 불리는‘아주 작은 강' 위로 가로질러 놓여 있다. 오후 1시쯤 색슨 산장에 도착, 먼저 뜨끈뜨끈한 발을 식히기 위해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발을 댄다. 발이 식는 동안 물을 끓여 매콤하고 시원한 비빔국수를 준비했다. 산에서 처음 시도하는데 시원함과 매콤한 자극의 느낌이 좋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후 오늘의 숙소인 제임스 매케이 산장으로 향한다. 색슨 강을 지나고 숲과 다운즈와 바위지대를 지나 제임스 매케이 산장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로빈, 데이브, 조니는 모두 등산화를 벗고 저녁 노을을 즐기고 있다. 산장에는 알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 웨카 5마리가 어미를 따라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다. 서쪽으로 내일 도착지인 히피강 하구가 멀리 어슴푸레 보인다.
오늘의 트랙은 해변 바로 옆의 히피 산장까지 연결되어 있다. 즉, 해발 0m까지 내려가는 내리막길이다. 고도차는 800m 정도이지만 20여 km에 걸쳐 완만한 경사를 가지고 있어 걷기 매우 편하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지만 루이스 산장까지는 깊은 숲속에 있어 삼림욕을 한다는 기분으로 서서히 내려오면 된다.
루이스 산장에 도착할 무렵 이 지역의 특징적인 나무인 니카우 팜트리(Nikau Palm Tree)가 눈에 띄기 시작하면 첫 번째의 루이스 산장에 거의 도착한 증거다. 이때부터 깊은 숲 사이로 강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강가에는 석회석이 쪼개져 백설기 같이 흰 돌들이 잔뜩 쌓여 있어 컴컴한 숲속에서 보면 마치 눈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루이스 산장은 루이스 강과 히피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오늘 숙소인 히피 산장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라면 물이 끓을 때 즈음 로빈과 데이브가 도착한다. 간단한 치즈에 건조 빵을 주로 먹는 키위들에게 매일 다른 메뉴로 먹는 필자의 모습이 이채롭다고 한다. 라면을 조금 권했더니 아주 즐거워한다.
루이스 산장을 지나서부터 긴 구름다리를 지난 후 석회석이 가득한 숲속을 걷게 된다. 숲 속은 거대한 석회석 틈에 박혀 있는 니카우 팜트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발 밑에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 자세히 보니 이 지역에 서식하는 육식성 자이언트 달팽이(대부분의 달팽이는 나뭇잎을 갉아먹는 초식성임)가 눈에 띄는데, 껍질 크기가 어른 주먹만하다. 길옆에 있는 이 껍질들은 쥐나 족제비 같은 포식자에게 잡혀 먹힌 것이다. 이러한 빈 껍질이라도 채집해서 집에 가져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 달팽이의 껍질이 숲에 칼슘을 공급하는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끼가 가득 덮인 석회석 벽이지만 석회암이 주변의 습기를 빨아들여서인지 공기는 습하지 않다. 강 하구로 내려와 히피 산장에 다가갈 무렵 강폭이 점점 넓어지며 조용한 강 하구가 보인다. 히피 산장은 강 하구와 모래사장, 바다가 인접하는 아름다운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다. 산장 속에는 16명 정도의 군중(?)이 바글거린다. 필자보다 하루, 이틀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마지막 날 산장에 모인데다 히피 산장의 끝에서 하루만 묵기 위해 온 사람들이 모두 저녁 준비를 하느라 배낭을 열어둔 채 바쁘다.
마침 저녁노을이 아름답고, 좁은 싱크대에 끼어들기도 미안해서 사진이나 찍을 목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바닷물과 합쳐지는 강 하구의 시큼함과 주변의 바위, 모래사장과 그 위에 아무렇게나 파도에 밀려 싸여있는 거대한 통나무들이 흰색으로 색이 바랜 채 누워 있다. 물가 모래톱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근 채 무료함을 즐기다가 들어간다.
저녁 식사로 쌀을 씻고 있으려니 이스라엘에서 온 친구가 옆으로 다가오더니 오늘 산장에 머무는 사람 16명 중 15명이 밥(쌀)을 먹는다고 한다. 저녁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모여 늦은 밤까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