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좋은 날씨와는 반대로 하늘에는 센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이렇게 저기압이고 습도 높은 날이 되면 샌드플라이라 불리는, 사람의 피를 빠는 작은 벌레가 극성을 부린다.
약 2시간 가량 바닷가의 숲을 따라 걸어갔다. 간간히 파도소리가 나는, 깊고 아름다운 숲길이다. 그 후 아름다운 해변이 나타나는데, 사람의 발자국 대신 사슴과 멧돼지, 그리고 여러 가지 새들의 작은 발자국들이 잔뜩 있다. 이 해변에는 바위가 천혜의 방파제 형태로 둘러싸여 있어 파도가 들이치지 않는다.
그 방파제 형태의 바위 위에는 턴(tern)이라는 바다제비 종류의 새떼가 둥지를 틀고 있다. 날렵하게 생긴 흰 턱시도를 입은 형상의 이 깔끔한 새는 바다 위를 날다가 물속으로 다이빙해서 살아있는 작은 고기만을 먹는 까다로운 식성의 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가자 큰 소리를 내며 위협 비행을 한다. 아마도 새끼가 있는 모양이다 싶어서 얼른 자리를 떴다.
블루 클리프 해변으로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해변이 끝나는 곳까지는 2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데, 시작 지점에서부터 헥터 돌핀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해서 2시간 내내 우리 두 명을 따라온다. 우리가 돌고래에게 갖는 궁금함 보다 훨씬 더 궁금해 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껴질 만큼 가까이 접근해온다.
비가 쏟아지더라도 준비해간 수영복을 입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만, 픽업 차량이 오후 2시30분에 오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는 것이 아쉽다. 비가 쏟아지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걸어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35분. 커다란 스테이크와 적포도주 한 잔이 생각난다.
차를 타고 투아타페레에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직도 토탄(peat)이 타서 일부 숲이 검게 변했다(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시작된 이 산불은 그 날 내린 큰 비로 진화됐다).
투아타페레에 도착한 후에 정육점에서 이 고장 명물인 소시지와 고기를 샀다. 정육점이라야 마을에 하나뿐이지만, 이 작고 오래된 정육점은 수십 개의 상을 받았으며 역사와 맛, 그리고 친절을 지켜나가고 있다. 방금 만든 신선한 소시지이므로 너무 익히지 않는 것이 이 소시지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고 한다. 스테이크, 소시지, 적포도주 한 잔과 한적함이 산행의 피로와 어우러져 훌륭한 저녁식사가 되었다.
■ 재미있는 뉴질랜드 헥터 돌핀
- 사람과 수영도 함께 하는 돌고래
험프리지 트랙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헥터 돌핀을 과연 볼 수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 헥터 돌핀은 멀리 바닷가에서 휘파람을 불기만 해도 근처에 올 정도로 친근하고, 인간에 대해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험프리지 트랙에 갈 때에는 수영복을 준비해,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기회를 갖도록. 실제로 많은 트래커들이 돌고래와 함께 수영해본 경험을 이야기한다.
전세계에 2,000여 마리가 전부인 이 돌고래는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체중은 암컷이 45kg, 수컷은 35kg으로 바닥이 모래로 되어있는 얕은 바다에서만 산다.
육지에서 1km 이상 떨어지지 않고, 사는 지역을 바꾸지 않는다. 다른 돌고래와는 달리 등지느러미가 작고, 동그란 것이 특징이다. 2~3년에 한번씩 오직 한 마리의 새끼만을 낳기 때문에 개체수가 아주 느리게 증가한다.
활동적인 움직임과 친근함은 헥터 돌핀만의 트레이드마크다. 이 지역을 갈 때 망원렌즈나 쌍안경, 수영복을 꼭 지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