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여행자의 천국이다. 특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그럴 수 밖에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판과 태평양 판이 맞부딪혀 남섬의 서부를 가로 지르는 서던 알프스, 환태평양 조산대를 통해 북섬의 중심에 불쑥 솟은 활화산들과 빙하가 깎아 만든 피요르드 지형, 섬들의 깎아지른 절벽과 아름다운 숲은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 독자들의 입맛에 최고의 선택을 주게 될 것이다. 이번 호는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뉴질랜드의 남섬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특히 겨울이면 모든 산은 흰 눈으로 덮여 웬만한 트랙을 넘으려면 ‘알파인 장비 및 경험 필요'라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름과는 도저히 같은 산이라고 할 수 없도록 무시한 난이도로 변화하는데 이러한 산을 꼭 올라가서 정복하는 것도 맛이 있지만, 고도가 낮은 트랙을 골라 이러한 아름다움을 멀찍이서 편안하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번 트래킹은 그러한 이유로 오하우 호수에서 시작하는 여러 갈래 트랙 중에‘헉슬리 포크 산장(Huxley Forks Hut)'으로 가는 트랙을 선택했다.
이 트랙은 뉴질랜드의 고도가 높은 하이 컨츄리(High Country)를 비교적 쉽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오하우 호수는 주변의 테카포 호수나 푸카키 호수의 명성에 가려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호수야 말로 남부 캔터베리의 진짜 보석이라고 생각한다. 오하우 호수에서는 수영, 보트, 카약, 낚시, 헌팅, 트래킹과 스키까지 모두 가능하지만, 주변에 숙박시설이 없고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뉴질랜드 사람들만의 특별한 장소로 숨겨져 있다.
주변의 테카포나 푸카키가 빙하호이기 때문에 청회색의 탁한 물빛이지만 오하우 호수는 아주 맑은 물이 항상 가득 차 있다. 오하우 호수는‘바람의 터'라는 뜻의 마오리 말로 수온은 일 년 내내 섭씨 7~8도의 매우 차가운 물이다. 이렇게 차가운 물에는 당연히 찬 물을 좋아하는 연어와 송어가 잔뜩 서식하고 있어 플라이 낚시꾼들에게 최고의 장소를 제공한다. 오하우 호수와 그 근방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트와이절(Twizel: 뉴질랜드 남섬 중부의 작은 마을 이름)의 자연 보호국(DOC)에 가면 자세한 자료를 무료로 받아 볼 수 있다.
***** ‘바람의 터’오하우 호수 *****
캠퍼밴의 커튼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잿빛이다. 어제 밤만 하더라도 별로 하얗게 뒤덮었던 하늘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오늘은 우선 트와이절에 있는 자연 보호국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 근방에는 산재해 있는 18개의 산장 중 가장 경치가 좋고 트랙이 아름다운 곳을 찾기 위함이다. 오하우 호수에서 시작하는 그물 같은 트랙들 사이에서 휴식과 안전을 보장해 주는 이 산장들은 최대 규모가 12인승, 최소 규모는 2인용의 아주 작은 산장들이다. 당연히 산장에는 아무도 없고, 6인 이상의 산장에는 아주 오래된 무쇠 난로와 장작이 있을 따름이다.
자연 보호국의 행복해 보이는 아가씨 커스틴은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서 우리를 반겼다. 이 근방의 모든 산을 다 돌아다닌 커스틴은 그 중에서 헉슬리 포크 산장을 우리에게 권해 주었다. 헉슬리 포크 산장은 헉슬리 강의 상류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산장으로 지도에는 8인용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6인이 겨우 있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산장이다. 산장 사용료인 10불을 카드로 지불하려고 하자 카드 결제기가 없다고 산행이 끝나는 때에 들려서 결재해 달라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연락처도 받지 않고 ‘믿어 준다는 것’에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남을 속일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도 남을 믿는다.
자연 보호국을 나와 주변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이런 작은 마을에는 먹거리가 다양하지 않아 가능하면 도착 전에 큰 도시에서 음식물을 장만해 오는 것이 좋다. 간단한 차와 짜서 마시는 커피, 육포와 과자 등의 이동식을 장만했다. 이번 여행은 한국에서 온 지인인 유창선씨와 함께 하기 때문에 음식을 조금 푸짐하게 싸가지고 가기로 결정했다. 쌀과 김치, 베이컨을 함께 가지고 가서 추운 저녁에 김치찌개를 해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다만 걱정 되는 것은 하늘인데 금방이라도 울컥 비를 쏟을 것 같은 모습이 범상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