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 번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지형적으로 강 옆에 있는 트랙을 산의 높은 곳에 만들어 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배낭을 메고는 산위로 기어 올라간다. 배낭 속에는 ‘걱정'이 추가되어 더 무거운 느낌이다. 10 여분 정도 올라가니 더 올라갈 수도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높이가 되어 버렸다. 나뭇가지를 잡고 올라갈 때는 평범해 보이는 길이 다시 내려가려니 경사가 심해 보이고, 손에는 등에 맨 배낭은 나뭇가지가 걸려 잔뜩 웅크리고 올라가니 허리가 무척이나 아프다. 올라갈수록 점점 확신은 작아지고 결국에는 제자리에 섰는데, 저 앞의 작은 나무에 붙은 오렌지색 이정표가 보인다. 아마 이번 트래킹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 아니었나! 이제는 정도(正道)만을 걷겠다는 다짐을 하곤 걷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다. 저 멀리에 보이는 나무가 없는 작은 구릉 즈음에 오늘의 숙소인 산장이 있을 듯싶다.
도착한 구릉에는 산의 지류가 흘러나와 물가에는 얼음이 얼어있고 산비탈 아래에는 얼마나 큰 산사태가 있었는지 수백 그루의 나무가 쓰러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이곳에는 오늘의 숙소인 헉슬리 산장이 없는 것이다. 계곡이 깊고 주위의 산이 경사가 심해 강 옆에는 산사태와 홍수로 떠내려 온 그루터기들이 너부러져 있다. 게다가 주위의 산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한 구름이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고 있다. 구릉을 지나 넘은 작은 숲을 지나자 작고 아담한 헉슬리 포크 산장이 멀리 보인다.
***** 헉슬리 포크 산장 *****
아담한 작은 사이즈에 허술할 것 같은 이 헛은 이래봬도 바람의 방향에 맞춘 입구, 바깥의 풍경을 고려한 창 내기, 단열이 잘 되어 있는 튼튼한 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릴 행복하게 맞아 주는 것은 문 앞에 쌓여 있는 잘 건조된 나무와 도끼, 그리고 무쇠 난로이다. 산장에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풀고 초를 꺼내어 불을 때기 시작한다. 잘 건조된 나무가 타닥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한 나무에 어느새 연통이 뻘겋게 달아오른다. 마지막에 내린 비로 축축이 젖은 옷과 배낭을 벗어 말리기 시작한다. 난로의 크기에 비해 산장의 공간이 좁아서 순식간에 실내가 더워진다. 산장 창문을 내다보니 비는 이미 그치고 저녁노을이 마지막으로 하늘을 태우고 있다.
***** 다시 돌아오기 *****
아침인데 아직도 실내가 컴컴하다. 촛불을 켠 후에 실내 습도를 위해 난로에 얹어 놓은 시커먼 주전자의 물로 상쾌한 아침 티를 마신다. 아직도 불이 살아 있고 실내가 따듯한 걸 보니 내가 곯아떨어진 동안에 창선 형님이 밤새 몇 번 동안 불을 지핀 게 틀림없다. 창선 형님에게 물어 봤더니, 밤새 비가 많이 쏟아졌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젖어 채도가 훨씬 강하게 보인다. 따뜻한 밤을 지내서 몸이 훨씬 개운해 졌다. 오늘은 어제 온 산길로 가지 않고 헉슬리 강의 평지를 따라 물길을 건너며 가기로 했다. 어제 산길을 기어 올라가며 유심히 본 결과 얕은 물을 두 번만 건너면 평지를 직선코스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