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숲길이 시작되서 물길을 건너려고 했다. 물 깊이는 약 허벅지까지이고 물살이 제법 빠르고 물은 없는 것처럼 맑다.
창선 형님은 신발과 양말 바지를 벗고 건너려고 주섬주섬 옷을 벗는다.(한국식) 물을 건넌 후에 보송보송한 신발을 다시 신을 목적이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혹시나 넘어지면 카메라며 필름이 물에 젖어 버리기 때문에 신을 신고 바지를 입은 채로 건넜다. 맨발로 물을 건너기려면 중심을 잡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뉴질랜드 식)
물 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발이 쑤셔왔다. “아뿔싸 물 온도가 이렇게 차가울 줄이야.” 물살이 제법 세서 빨리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에서 돌아갈 수도 없어 걸었다. 먼저 건넌 창선 형님은 발을 움켜쥐고 “어이구~”하며 언 발을 움켜쥐고 있다. 나 역시도 겨우 물에서 발을 빼는 순간 묵직한 신발에 가득 찬 물의 온도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아 신을 벗고 양말을 벗어 물을 짰다. 발에 묵직하게 오는 통증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가뜩이나 차가운 발 위에 냉장고 특선실에서 꺼낸 것 같은 양말을 신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주위에는 서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걸을 때마다 찌걱대는 신발속의 느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한참을 걸어가니 다시 헉슬리 강의 지류를 건너야 한다. 이번에는 아까에 비해 물은 얕지만 폭이 훨씬 더 넓어 훨씬 힘이 들다. 신발이 젖고 발이 적당히 얼어 있는 내 발은 이제 적응이 되어 있지만, 아까 신을 벗어 발을 적시지 않은 창선 형님은 바지를 벗고 맨발로 이를 악물고 오는 모습에 카메라를 급히 꺼내 든다. 창선 형님은 이곳을 건넌 직후에 작은 습지에 발이 빠져 결국은 나 같이 젖은 채로 트래킹을 완주해야 했다.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젖은 옷을 캠퍼밴 바깥에서 홀랑 벗은 후 보송보송한 옷을 갈아입고 따듯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일상의 행복'을 진하게 즐겼다.
뉴질랜드의 트래킹은 ‘자연과 나’만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내가 어려울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준비와 규율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산행에서는 성냥을 가져가지 않아 오들오들 떨며 생쌀을 먹다 돌아 올 수도 있고, 랜턴을 가져가지 않아 야외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침낭을 가져가지 않아 매트리스를 위로 덮고 자는 경우, 날씨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아 비를 잔뜩 맞는 불상사도 흔히 맞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중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길을 잃는 것이다. 산행이나 인생에서도 우리가 길을 잃는 원인은 바로 ‘좀 더 쉽게', ‘좀 더 빠르게’때문이 아닌가 한다. 길이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경험과 착오 끝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번 트래킹에서 길을 벗어나 짧은 코스를 선택한 덕택에 나는 겨우 15분 정도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대신 5시간 내내 물이 가득 차 있는 축축한 신을 끌고 트래킹을 마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