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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서는 계약법과 관련하여 다소 전문적인 원칙에 관해 설명해볼까 한다.
불문법을 기반으로한 영미법에는 contra proferentem 이라는 원칙이 있다. 계약의 해석에 관한 원칙인데, 한줄로 요약하면 계약서를 해석함에 있어 의미가 불분명 할 경우에는 작성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Contra proferentem은 라틴어로 불리하다 또는 반대하다라는 의미의 contra라는 단어와, 제안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proferens라는 단어의 조합이다. 굳이 한글로 번역하자면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 정도가 될 듯 하다. Contra proferentem의 원칙이 적용되려면 그 선행 조건으로, 해당 계약에 의미가 불분명하여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조항이 있고, 그 조항이 계약 당사자 모두가 아닌, 한 당사자의 요구로 작성 또는 추가가 되어야만 한다.
큰 거래를 문서화하여 계약서로 작성할 때는 이해 당사자들이 각기 변호사를 선임하여 계약서를 작성하곤 한다. 쌍방의 변호사가 협의하여 계약서의 조항을 작성하기에 각 조항의 의미가 불분명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contra proferentem의 원칙이 적용하여야 할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계약 당사자들이 같은 등급이 아니라면, 즉 예를 들어, 큰 기업과 일반 소비자와의 계약이라면 이야기의 틀이 바뀐다. 쌍방이 협상에 따라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기업이 정형화하여 작성해 놓은 계약서를 소비자가 수정 없이 서명할 가능성이 높고, 이런 상황에서는 계약의 세부 조항이 계약서를 작성한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상대적 권한이 현저히 차이가 날때, 즉 소위 말하는 ‘갑’과 ‘을’ 사이에서는 강자인 ‘갑’이 제시하는 계약을 ‘을’이 군소리 말고 받아야 할 때가 있다. Contra proferentem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적 약자인 ‘을’을 보호하기 위해 법정이 만들어온 원칙이다. ‘갑’이 만들어온 계약서에 특정 조항의 해석이 애매모호하다면, 계약서를 만들어온 ‘갑’에게 보다 엄격히 적용된다. 즉, ‘을’에게 보다 유리한 해석을 채택하게 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계약 당사자중 한 당사자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책임의 한도를 미리 정해놓는 조항의 해석에서 보다 빈번히 적용이 된다. 특히 기업이 정형화 해놓은 계약서 또는 소비자에게 물품을 판매하는 계약 그리고 보험 계약(보험 약관)의 해석의 분쟁에서 많이 적용된다.
실제 존재하는 판례를 각색하여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의 매매에서 매도인이 작성한 계약서에 매도인은 자동차의 품질에 대해 “어떠한 보장(warranty)도 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매도인이 자동차를 파는 ‘조건’(condition)으로 가죽 시트를 옵션으로 끼워 주기로 하였고, 이 조건을 어겼다면, ‘보장’이라는 단어를 해석함에 있어 ‘조건’도 ‘보장’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매도인측 해석보다는, ‘조건’은 ‘보장’과 별개라는 매수인측의 해석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비슷한 예로 같은 조항에서 “어떠한 보장(warranty)도 하지 않는다(is given)”라는 조항이 있고,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자동차의 품질에 대한 보장을 현재(is) 시점이 아닌 과거(was)의 시점에서 미리 했다면, “어떠한 보장(warranty)도 하지 않는다(is given)”라는 조항은 매수인에게 보다 유리한 해석을 적용하여, 매도인의 책임을 제한하지 못한다.
자동차 보험 약관의 예를 들어보자. 보험 약관에 보험사는 “자동차에 적재할 수 있는 적정 무게(load)를 초과하여 운행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보험에 가입한 피험자(보험 가입자)가 5인승 차에 6명의 사람을 태우고 운전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면, 해당 조항을 해석함에 있어 무게(load)와 승객(passenger)의 수는 다르다는, 보험 가입자에게 더 유리한 해석이 적용 될 수 있다.
Contra proferentem. 약자를 위한 멋진 단어라 생각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