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개
1,787
26/05/2010. 10:26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뉴질랜드 여행
전체 인구 3600여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뉴질랜드에서 가장 멋진 겨울 풍경을 자랑하는 카이코우라는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해안에서는 물개를 볼 수 있고, 바다에는 펭귄, 돌고래, 바다가재, 하늘에는 갈매기를 비롯해서 개닛과 앨버트로스 등 각종 새들이 가득하다. 또 카이코우라 앞바다는 조금만 멀리 나가도 수심이 수천 미터까지 깊어지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괴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빨 한 개의 무게가 1킬로그램이 넘고, 먹이를 찾기 위해 2000미터 이상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신비한 동물, 지구에서 가장 큰 육식동물이기도 하며 코끼리보다 4배 이상 무거운 향유고래말이다.
카이코우라의 향유고래를 보기 위해 하룻밤을 기다렸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대양 쪽에 바람이 너무 심해서 고래 투어가 취소된 것이다. TV에서만 보던 고래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서 허영만 화백이 무척 아쉬워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고래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은 두세 군데밖에 없기 때문에, 카이코우라의 고래 투어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코스다. 배를 타본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점프대 위를 질주한 것처럼 솟구쳐 오르는 배와 ‘떵떵’ 울리는 굉음에 뱃멀미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기 십상이지만, 100여 마리의 더스키 돌고래 떼와 신비한 새 앨버트로스를 직접 보고 나면 일순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고래 투어의 절정은 향유고래와의 대면이다. 한 번 숨을 들이마시면 2000미터가 넘도록 잠수를 하는 거대한 향유고래는 참치, 가오리, 상어 등의 대형 어종을 먹는 바다의 왕이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
약 2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잠수를 준비하기 위해 깊은 숨을 쉬는데 그 수증기에 무지개가 걸쳐지기도 한다. 10여 분간 긴 심호흡을 끝내고 잠수할 때 올라가는 꼬리는 향유고래의 멋진 인사. 돌고래가 날렵하고 다이내믹한 연예인 갇다면, 고래는 신비하고 점잖은 시인 같은 느낌이다.
일출이 시작되는 바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새 무리가 바다의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있다. 고래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겸 카이코우라의 유명한 해안 트랙을 돌아봤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바닷가에 이끼 하나 끼지 않은 베이지색 자갈들이 깨끗하게 깔려 있고, 바다에는 수정같이 맑은 물에 커다란 해초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마침 갈매기들이 알에서 나온 새끼를 기르는 시기라 넓은 바닷가 바위 위에 수많은 갈매기와 새끼들이 아무런 방어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바닷가 해안 트랙에서 보는 풍광은 환상 그 자체이다. 파란색의 바다와 대비되는 흰 벼랑과 그 위의 녹색 잔디는 자연의 또 다른 조화를 보여준다. 문명의 혜택이 훨씬 적더라도 이런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살면 가슴이 시원하고 마음 편할 것 같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문명을 피해 원시적인 삶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생기나 보다. 자연의 생명력을 대하게 되면 먹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이 과연 무엇을 바라며 사는 건가 되짚어보게 된다. 서로 나누고 감사하고 진실했던 삶은 이제 너무 오래된 얘기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