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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산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Food Price Index)는 지난 5월에 173.4를 기록하며 통계를 작성한 1990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내년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 세계 밀 공급량의 10%, 옥수수의 13%, 해바라기씨 40%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Ukraine)가 전쟁을 치르느라 4-5월에 파종을 제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FAO는 우크라이나 농경지 중 20-30%가 올해 아예 파종을 못 했거나 수확조차 못 한 상태라고 보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공급망 대란으로 치솟고 있던 터에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중단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촉발된 식량 공급 부족 사태가 세계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 대응으로 확산하면서 세계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지렛대로 삼는 ‘식량 무기화’에 나서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개막 연설에서 “러시아의 흑해(黑海, Black Sea) 봉쇄로 수출 중단된 곡물이 2200만t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량(1억7000만t)의 13%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는 곡물 일부를 철도로 수출하고 있으나, 한 번에 운송할 수 있는 양이 화물선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화차(貨車)마저 부족하다.
우리나라 식품업계는 치솟는 곡물 값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국내 식품 기업들 사이에서 “내년이 더 두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식품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리서치회사로부터 분석 자료를 받아 봐도 내년 국제 곡물 값이나 팜유(palm oil) 같은 원료비가 30% 더 뛴다는 전망부터 100% 넘게 뛸 것이라는 분석까지 다양하다”라면서 “전쟁과 이상기후의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두렵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요 식량인 소맥, 옥수수, 대두유, 팜유의 국내 자급률이 0-1%에 불과해 소비자들과 식품업계가 식량 공급망 교란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6월 20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세계 각국의 식량 수출 제한 조치가 국내 물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수출 제한 조치 이후 국내 비료와 곡물, 유지 가격은 각각 80%, 45%, 30% 뛰었다.
2020년 기준 주요 식량 품목별 국산 사용량은 다음과 같다. <소맥> 수입산 사용량 238만6164t, 국산 사용량 2940t(국산 비중 0.1%), <옥수수> 수입산 216만4768t, 국산 2529t(국산 비중 0.1%), <대두유> 수입산 17만6280t, 국산 2043t(국산 비중 1.1%), <팜유> 수입산 24만6498t, 국산 0(국산 비중 0.0%)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가 펴낸 ‘식량 수출 제한에 따른 공급망 교란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세계 각국이 내린 식량과 비료 수출 제한 조치는 34개국 57건으로 이 가운데 80%인 45건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이뤄졌다. 주요 식량 품목별로 보면 소맥이 18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두유(10건), 팜유(7건), 옥수수(6건) 순이었다.
우리나라는 주로 식량을 수입하여 이를 가공하여 소비하는 산업구조이므로 국제 식량 공급망 붕괴에 따른 위험이 그대로 노출된다. 2020년 기준 국내 산업에서 사용하는 원료 곡물의 수입산 비중은 79.8%에 이른다. 여기에 소맥, 옥수수, 대두유, 팜유의 국산 비중을 각각 0.1%, 0.1%, 1.1%, 0.0%로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국내 곡물 재고량도 2017년 450만t에서 지난해 300만t으로 30% 이상 줄었다.
현재 수출 제한으로 영향을 받는 식량과 비료는 2007-2008년 세계 식량 가격 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때 수출 제한으로 영향을 받았던 식량과 비료보다 50-150% 이상 비중이 높아 위험이 더 큰 상황이다.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수출 제한 조치가 36건이므로 상당 기간 영향이 지속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대응책으로 단기적으로는 식량안보 공급망 데이터를 구축해 위험 품목을 미리 파악하고 대체 공급선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적으로는 해외 농업 개발, 해외 유통 터미널 지분 매입, 합작 투자 등으로 안정적 식량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인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이 ‘식량창고’를 걸어 잠그고 있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nternational Food Policy Research Institute)에 따르면 6월 1일 기준 전세계 20개국이 농축산물 수출을 부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전쟁과 원자재 수급불안 등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 식생활이 정책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따라 매5년마다 식량안보(食糧安保) 목표치를 설정하고 있다. 2011년 당시 국제 곡물 공급망이 휘청거리자 농정당국은 식량자급률(食糧自給率, degree of self-sufficiency of food)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여 발표했다. 즉, 2010년 54.9%던 식량자급률을 2015년 57%, 2020년 60%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식량자급률은 50.2%(2015년), 45.8%(2020년)로 역행했다. 이에 정부는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지면 슬그머니 낮춰 현재 ‘2022년 55.4% 달성’으로 끌고 가고 있다.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穀物自給率, self-sufficiency rate of grain) 목표치도 2020년 32%였으나 현실은 20.2%에 그쳤다. 우리 정부는 달성이 힘들 것 같으면 기준 자체를 낮춰버려 누더기 목표치가 된다.
반면 세계 주요국들은 식량안보(食糧安保)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스위스는 2017년 연방헌법 104조에 식량안보 달성을 국가 기본 책무로 명시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논•밭 작물 수입보전직불제로 보조금을 지급하여 밀, 보리, 콩, 감자 등의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식량안보는 제도적 장치와 충분한 예산지원이 뒷받침되어야 달성할 수 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6월 7일 언론 인터뷰에서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이 닥친다면 모든 비상 대책을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즉, 유사시 국내 곡물 수입 업체들이 미국, 우크라이나 등 해외 창고에 비축해 놓은 곡물 1150만톤 중 상당 부분을 국내로 반입하겠다고 했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이 주도하는 물가상승) 우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상황이라 안정적인 곡물 공급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포스코인터내셔널, 하림 등 곡물 수입 업체들이 해외에 보유한 곡물을 국내로 반입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있지만, 사문화(死文化)된 상태다. 물류비 등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국내 반입 대신 해외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반입된 해외 보유 곡물 규모는 75만톤에 불과하여 작년 총소비량(2132만톤)의 3.5%에 불과하다.
정황근 장관이 농촌진흥청장이었던 2016년 우연한 계기로 돌연변이 쌀 품종을 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물에 불리지 않아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쌀 품종(분질미, 가루용 쌀)으로 가공비용이 낮고, 껍질을 까면 바로 부스러진다. 그동안 품종 안정화 과정을 거친 분질미(粉質米) 쌀가루의 경제적 효과는 본격 보급에 들어가 2026년이면 연간 밀가루 수요의 10%(20만톤)를 대체하게 될 것이며, 식량자급률이 2020년 45.8%에서 2027년에는 52.5%로 높아진다.
농촌진흥청은 <수원542> <바로미2> <아로마티> <삼광> 등 분질미 품종 4종을 개발했다. 일반 쌀과 달리 전분 구조가 밀처럼 둥글고 성근 게 특징이다. 껍질을 벗기는 순간 가루로 부서져 건식 제분이 가능하다. 분절미는 6월 하순이 이앙(移秧) 적기이므로 6월 중순 밀 수확 후 심으면 안성맞춤이다. 농식품부는 이러한 분질미 특성에 주목해 생산량을 크게 늘려 밀가루를 일정부분 대체하겠다는 구상이다.
농식품부는 이를 통해 쌀 가공사업 시장 규모가 2021년 7조3000억원에서 2027년 1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식량안보에도 도움을 주어 식량자급률은 2020년 45.8%에서 2027년 52.5%로, 밀 자급률은 0.8%에서 7.9%로 각각 개선된다는 것이다. 밥쌀 수급이 2027년엔 균형을 이루면서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밀, 콩 등 식량자급 기반을 확충하는 재원으로 돌릴 수 있다고 본다.
밀은 쌀 다음으로 우리 국민이 많이 먹는 곡물이다. 쌀을 한해 360만t가량 섭취한다면 밀은 200만t 안팎을 먹는다. 하지만 자급이 되는 쌀과 달리 밀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밀 자급률은 2020년 기준 0.8%다. 최근엔 대외 불안 요인으로 밀가루 확보가 국가 과제가 됐다. 6월 1일 기준 국제 밀가격은 1t당 383달러로 평년과 견줘 104.6%, 지난해보다는 56.1% 상승했다.
정부는 몇 년 전부터 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오고 있다. ‘밀산업 육성법’을 2020년 시행했고, 지난해엔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도 수립했으며, 정부 비축 확대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계획한 비축물량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 밀 비축계획물량은 당초보다 3000t 늘어난 1만7000t이다.
한편 지난해산(産) 쌀이 수확한 지 반년 넘게 거리를 헤매고 있다. 산지에선 떨어지는 쌀값 하락폭만이라도 줄여달라며 수요량 이상으로 생산한 물량을 격리해줄 것을 정부에 수개월째 요구하고 있다. 국내 전체 농가의 절반이 쌀농사로 생계를 잇고 있다. 2020년 농업생산액 가운데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16.9%(8조4487억원)이며, 가구당 농업총수입(3603만3000원) 중 18.5%(667만3000원)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6월 5일 기준 20kg당 4만5862원으로 수확기(5만3535원)보다 14.3% 내렸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 5만5903원과 견줘 약 1만원 떨어졌다. 정부가 올해 2월과 5월 2차례에 걸쳐 2021년산 쌀 27만t을 시장에서 격리했지만 쌀값 하락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서 쌀 3차 시장격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만성적 공급과잉 상태에 국민적 피로감이 일면서 쌀 수급 구조에 근본적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인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00년 93.6kg에서 2021년 56.9kg으로 급감했다. 일본 사례에 비춰 향후 40kg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생산은 그만큼 줄지 않고 있다. 논에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쌀 생산조정제는 2003-2005년, 2011-2013년, 2018-2020년 간헐적으로 시행됐다. 생산 조정을 꾸준히 해야 할 정부가 잦은 정책 변경으로 농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세계적인 흉작이나 국제 분쟁 등 일시적으로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경우 품목별 부족량을 판단해 국내에 비축하는 방안을 확립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유럽연합(EU) 가입으로 역내 조달이 항상 가능해지기 전까지 매년 1월에 한 해 필요한 먹거리의 부족분을 전량 비축하는 제도를 운용했다. 또 비상시 국내 기업이 확보한 곡물을 안정적으로 국내에 반입하기 위해 수출국과 필요한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일본은 2014년 호주와 경제파트너십협정(EPA)을 맺고 호주가 곡물 수출을 금지할 때 일본은 제외하도록 했다.
농업의 미래산업화를 위하여 4차 산업혁명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농업을 도입할 경우,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33.6%, 농업소득은 40.5% 늘고, 노동 시간은 12.5%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 국내 스마트농업은 2단계까지 와 있으며, 2025년이면 3단계에 들어가 인공지능(AI)이 작물의 상태를 분석할 수 있다.
현재 우리 농업과 농촌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식량위기 시대를 맞아 더 이상 ‘농업홀대’가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농업도 반도체처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가 ‘농업•농촌 발전’이라는 열매를 거두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