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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2010. 13:26 코리아포스트 (219.♡.51.6)
원예 칼럼
여름철 저녁 식탁에서 모녀간의 대화다. “어떤 고추가 맵지 않은 거야, 나는 매운 고추는 싫어" 하고 아이가 말하니. 엄마가 식탁 위 고추를 한 입 베어 먹고 나서 “이 고추 맵지 않다, 한번 먹어봐라.” 아이가 고추를 받아서 먹자마자 “아 매워, 이 고추가 맵지 않다고?” 풋고추를 즐기는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어떤 사람은 순한 고추를 찾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짜릿하도록 매운 고추를 즐긴다. 그러면 고추의 매운맛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은 걸까?
고추의 매운 맛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 매운 성분이 우리의 기분을 좋게 (Feeling so good, 다른 말로 Runner's High)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들어 음식이 점점 매워지는 경향이랄까? 고추장도, 김치도, 소스도 자꾸만 더 매워진다. 그러니 가정 식탁의 음식도 자연히 매워 질 수밖에. 이런 현상은 예전보다 고추가 더 흔해 졌고, 새로운 매운 고추 품종이 자꾸만 개발되기 때문이 아닐는지?
고추의 이런 매운 맛은 캡사이시노이드(Capsaicinoids)라는 화학물질에 기인한다. 고추는 자기의 종자를 지키기 위해 종자 번식에 도움이 되는 새는 먹을 수 있데, 쥐 같은 설치류는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매운 맛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 매운 맛을 즐기고 있으니.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닌지. 사람들은 매워, 매워하면서 자꾸만 그 매운 고추를 찾게 된다.
고추의 매운 성분은 고추씨를 달고 있는 얇은 막처럼 생긴 태좌(胎座)에서 만들어 진다. 그래서 그 부분에 매운 성분이 주로 분포되어 있다. 흔히들 고추씨에 매운 성분이 들어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잘못 전해지는 것이다. 정작 고추씨는 그리 맵지 않다. 풋고추의 경우 끝부분이 덜 맵고, 씨가 많이 달려 있는 꼭지 부분이 가장 맵다. 좀 더 자세히 말해서 고추를 네 등분으로 썰어 놓았다면 끝 부분이 가장 맵지 않고, 그 다음 부분은 조금 더 매우며, 꼭지가 달려 있는 부분이 짜릿하게 맵다.
인도 음식점에서는 이런 고추의 매운 정도를 표로 만들어서 손님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매운 맛을 즐기는 음식문화가 앞서 간다고나 할까? 또한 매운 고추를 사용하는 요리에는 고추 전문가의 조언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앞에서 나온 모녀간의 대화가 발생할 소지는 충분하다.
고추의 매운 정도는 유전적 소질에 의한 것이 강하다. 우리가 흔히 매운 고추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청양고추’처럼 품종의 차이에 오는 것이 많다. ‘파프리카’ 같이 전혀 맵지 않은 고추가 있는가 하면, 너무나 매워서 맨손으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졸로키아(Jolokia)’도 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고추의 매운 정도를 열 단계로 나누기도 한다. 이 분류에 의하면 우리 한국인이 즐기는 ‘순한 매운 맛’은 이삼단계의 낮은 등급에 해당된다.
의제 허백련 선생은 ‘고춧가루를 많이 먹으면 성질이 급해진다’고 이를 경계했다. 우리의 심성을 변하게 만든다고. 그래서 매운 고추재배 면적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했었다. 화끈한 성격을 좋아하는 현대인의 취향에 매운 고추가 제격일지 몰라도, 우리의 성향을 변화시킬 정도로 매운 맛을 찾는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는지?
주변의 음식이 매우니 입안이 늘 얼얼하다. 이런 매운 고추의 얼얼함은 냉수로는 식힐 수 없다. 우유나 아이스크림으로 달래는 것이 최고다.
무더위로 나른해지기 쉬운 여름철 고추의 매운 맛으로 식욕을 돋울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매운 맛은 우리 뿐 아니라 인도 태국 멕시코 스페인 같이 전 세계인이 즐긴다. 또한 고추장 김치 같은 우리 전통 음식이 고추를 만나서 그 독특한 맛을 더하고 있다. 게다가 고추에는 우리의 건강에 중요한 비타민, 항산화 물질이 듬뿍 들어 있다. 그러니 순한 매운 맛이던지, 짜릿한 매운 맛이던지 이 여름에 어울리는 우리의 매운 맛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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