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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2010. 14:32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원예 칼럼
카우리는 태고부터 뉴질랜드에 자리 잡은 터줏대감이다. 뉴질랜드 북섬에서만 자라는 세계적인 거목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나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면 그 위풍당당함에 압도 되지만 몇 천년을 산다니 왠지 존경스럽다. 마오리 사람들도 이 땅에서 처음으로 카우리를 만났을 때, 그 위엄으로 산림의 제왕으로 섬겨왔다. 그리고 생활을 통하여 건축자재로, 통나무 카누로, 조각 장식품 재료로 친숙해져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그러나 카우리는 새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몰려오면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카우리는 목재가 가볍고 질기며 또한 아름다워 건축, 가구, 철도 침목, 항만 빔 자재 등 여러 가지로 활용되어 왔다. 특히 배를 만드는 데 목재로 널려 알려져 있다. 마오리 사람들은 이 통나무로 카누를 만들어 그들의 전투함으로 사용했다. 18세기 유럽인들의 해양탐험이 시작되면서 어린나무가 그들의 탐험용 선박의 돛대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1995년 뉴질랜드가 아메리카 컵을 거머쥘 때도 카우리 목재가 요트 제작에 사용됨으로써 숨은 공로자가 된다. 이제는 바이올린 같은 고급 악기를 만드는 데도 활용되어 그 명성을 더 넓혀 나가고 있다. 이런저런 쓰임새가 늘어남에 따라 이 재목들이 무참하게 베어져 나갔다.
뉴질랜드가 처녀지로 존재할 때, 카우리는 북 섬의 절반 정도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몰려온 19세기 백년 만에 카우리 산림면적은 1/4로 줄어들었다. 그 이후로 뉴질랜드 정부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이 보존대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제 다시 사분지 일로 줄어들었다. 통계에 의하면 약 8만 헥타 정도만 남았단다. 예전의 카우리가 무성하던 지대는 대부분 가축목장, 과수원 같은 농장지대로 변했거나, 현재 경제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라디에타(Radiata) 산림지로 자리를 내 놓은 상태이다.
카우리 나무는 주변의 여러 동식물과 생태계로 연결되어 있다. 카우리 산림에는 카카, 코카코 같은 토종 산새가 함께 살고 있으며, 박쥐 리자드 곤충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또한 카우리 그라스로 알려진 백합과 풀로 둘러 싸여 있으며, 카우리 주변에는 나무 펀, 팜 나무 같은 여러 식물들이 뒤엉켜 살아간다. 카우리 산림이 줄어들면서 이러한 토종 동식물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태고의 원시림이 설 땅을 잃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이 카우리에게 또 다른 수난인 이상한 병이 번지고 있다. 나무 주변의 토양을 통하여 전염하는 흔치 않은 병(Phytophthora)으로 알려졌다. 이 병에 전염된 카우리는 송진 같은 액(Kauri gum)을 흘리며 죽어간다. 오클랜드 시청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등산객들에게 신발 소독을 강요하고, 전문 사냥꾼을 동원해서 멧돼지 사냥에 나섰으며, 세계의 전문가를 모아서 대책을 논의한다. 이런 종류의 식물 병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이 병이 번지고 있는 지역에는 일반 등산객의 출입을 제한하란다. 그래 보통사람들의 주말산행이 제한될까 염려된다.
필자는 고향의 오백년 묶은 은행나무 밑에서 공부하며 자랐다. 그리고 서낭당 느티나무의 늠름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여기에 와 Cascades Kauri Park에서 카우리 나무를 처음으로 만났으며, Pureora Forest Park의 필드 트립에서 쓰러진 천오백년 묶은 카우리 잔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카우리 나무에서 느낀 대자연의 웅장함은 새로운 감동이었다. 또한 주말에 들을 수 있는 카우리 산림의 산새 소리는 또 하나의 살아가는 즐거움이다. 이러한 감동은 필자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카우리는 우리 인류의 역사 보다 더 긴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 왔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대단하다고 자랑하지만, 카우리는 그들의 역사를 가슴에 품고 그냥 묵묵히 서 있다. 우리 보다 더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카우리 나무에게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물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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