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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010. 12:47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원예 칼럼
1970년대 학창시절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화다. 일본 출장을 다녀온 교수님께서 일본에서는 오후 간식으로 차와 단무지를 먹더라. 그러면서 “일본사람들 그리 잘 사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얼마나 살기가 어려우면 간식으로 단무지를 먹느냐는 얘기다. 그 당시에는 반일감정이 팽배하던 시대로 일본 문화를 가볍게 보려는 현상이 강했다. 일본을 폄하하는 발언이 더 인기가 있어 그리 해석했는지 모르겠다.
필자도 1980년대 일본 농가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일본 농촌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서 도쿄 근교의 양잠농가를 방문했었다. 그 농가에서도 차와 함께 단무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 텁텁한 단무지를 씹으면서 일본인들이 단무지를 즐겨 먹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일본 사람들 단무지를 많이 먹는 다더니, 오후 간식에도 단무지를 먹는구나! 그래 무슨 맛으로 먹는 거지? 어떤 특별한 맛이 있는 게 아닐까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그러지만 좀 더 담백했던 맛 이외는 별로 기억나질 않는다.
한국에서 예전 겨울철 간식으로 떡과 동치미를 먹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겨울철 동치미 맛깔스러움은 과히 일품이다. 자그마한 둥근 무에 파, 마늘, 생강, 갓, 삭힌 풋고추, 그리고 간을 맞추는 소금이 전부이리라. 그런데, 동치미에서 우러나는 맛은 한국 백김치의 진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나긴 겨울밤 시원한 동치미와 함께 출출한 시장기를 달랠 수 있었다.
한국의 동치미, 일본의 단무지 모두 무가 주원료다. 단무지는 무의 뿌리 부분만으로 담그지만, 동치미는 무의 뿌리와 함께 이파리도 같이 이용한다. 무의 영양적 가치는 칼로리가 적은 대신에 여러 소화효소가 들어 있어 다른 음식의 소화를 촉진시키며, 또한 잎에는 비타민 A와 C가 많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무의 밑둥에는 영양가는 없는 대신 최근 건강식에서 강조하는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그래서 무를 식품으로 이용할 때, 단무지는 식이섬유 섭취가 주요한 역할이 될 것이고, 동치미의 무 전체를 이용하는 것이라 식이섬유와 함께 영양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어 한 수 위다. 그렇지만, 동치미는 겨울 한철이겠지만 단무지는 보다 긴 동안 두고두고 밑반찬으로 그만이다. 물론 무의 활용에서도 민족의 음식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단순한 비교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서구인들은 무를 ‘빨간무’로 샐러드에 많이 활용한다. 그리고 무의 특성상 그리 중요한 채소로는 여기지 않으며, 우리처럼 그리 많이 먹지도 않는다. 무 학명의 어원에서는 무는 아주 빨리 자라는 채소로 특징짓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척박한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서 재배하는 데는 환경의 부담을 적게 주는 작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동양인에게는 쉽게 생산해서 활용할 수 있는 건강채소로 통용된다.
여기서 무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 보기로 하자. 일본에서 먹을 게 충분치 못해서 단무지를 많이 먹었다 하더라도, 또한 겨울철 동치미가 우리의 배고 푼 시절의 음식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전통 음식문화에 깊숙이 자리한다. 현대의 넘쳐나는 기름진 음식으로 인한 지나친 칼로리 섭취로 이를 분해해내느라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요즘 사람들. 예전의 전통 음식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런 노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깐 칼로리가 낮은 밋밋한 무를 웰빙 시대의 건강식품으로 활용하는 방안 말이다.
어떤 이는 우리가 “장(腸)을 비워야 미인이 된다”고 역설한다. 그렇게 비운 장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도 역시 중요하리라. 우리의 장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데 싱싱한 가을무로 담근 동치미가 어떨는지? 다이어트에 민감한 여러분, 김밥에는 단무지 한쪽을 더 얹으시고, 겨울철 간식에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이시라. 우주인 식품개발에 우리 김치 활용방안이 강구되는가 하면, 현대인의 웰빙 식품으로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옛날의 동치미와 함께 우리 전통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멋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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