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리 딱딱 벌려라 열무김치 들어간다.’ 어릴 적 들었던 동요의 일부분 이다. 그 밖의 내용은 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아무튼 분명한 건 ‘열무김치’라는 단어다. 그리고 여름철이면 시원하게 먹었던 그 아련한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노래가 구전되었던 걸로 봐서 열무김치는 서민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열무는 어린 무의 다른 이름이다. 무를 파종하고 나서 싹이 트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뽑은 것을 가리킨다. 아주 어린 것은 부드러워 된장국에 넣으면 제격이고, 좀 더 자란 것은 열무김치를 담가 먹으면 그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여름철 농촌에서는 찬 밥 일지라도 열무김치와 된장찌개만 있으면 한 끼 점심을 때울 수 있었다. 또한 그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
예전에는 여름철에 지금처럼 포기 배추김치를 먹기가 어려웠다. 동네의 어떤 집 결혼이나 환갑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여름철에도 포기 배추김치를 맛 볼 수 있었으나, 평상시에는 이런 김치는 맛보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열무김치에 의존하는 생활이었다.
무 배추 같은 저온성 채소의 여름철 재배는 예전에는 사실상 불가능 했다. 그래서 여름에 파종을 하고 늦가을에 수확을 해서 겨울철 김장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인 예이었다. 여름철에는 열무 수확을 목적으로 일찍이 무를 파종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여름철에 김장용 무·배추를 줄뿌림을 하게 되면 솎음용 채소가 생산되곤 했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가정에서 김장채소를 직접 심어 먹었는데, 김장채소 재배에는 땅속의 굼벵이 같은 벌레와 하늘의 새들의 피해를 받는 경우가 있어 아주 많은 양의 종자를 뿌렸다. 그리면 아주 베게 싹이 올라 왔고, 이것을 주기적으로 솎아 주어야 김장용 무 배추를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런 솎음 채소류는 아주 소중한 여름 김치용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니까 열무는 김치용 채소를 생산하기 어려운 단경기에 이용하던 채소였다.
이제는 서늘한 고랭지에서 여름철 무 배추 재배가 성하다. 또한 여름철에도 자랄 수 있는 새로운 무 배추의 품종 개발로 무더운 여름에도 김장용 채소가 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열무김치는 아련한 맛을 찾는 나이든 사람의 향수를 달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영양적으로 보면 열무에는 비타민A와 섬유질이 풍부한 여름철 건강식품이다. 또한 재배도 쉬워서 그냥 씨앗만 뿌려 놓으면 저절로 자란다. 그래서 환경 친화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지난번 어떤 모임에서 열무 냉면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열무김치가 잘 익어 시큼했고, 살얼음이 둥둥 떠서 정겨웠다. 그런데 열무가 너무 센 것으로 담가서 너무 질긴 게 흠이었다. 게다가 여름 날씨가 싸늘해서 몸이 떨릴 정도 차가웠다. 도저히 한 그릇을 다 비울 수가 없었다. 주문할 때 기대감은 어김없이 무너졌고 본전이 생각났다.
올해는 여름이 시작하자마자 무 씨앗을 뿌렸다. 다행이도 날씨가 서늘했고 비가 자주 내려 아주 잘 자랐다. 열무김치에 적합할 걸로 골라서 수확했다. 열무김치를 생전 처음 담아 보는 솜씨로도 열무김치는 아주 정겨운 맛을 제공했다. 열무김치의 부드럽고 시원한 맛은 여름철 식욕을 촉진했다. 열무김치 덕분에 올 여름은 고향을 맛을 듬뿍 느끼면서 보냈다.
열무는 재배가 아주 간단하다. 종자만 뿌리면 그냥 자라준다. 정원이나 뒤뜰의 좁은 면적에 유기재배로도 제격이다. 풋고추와 부추를 썰어 넣으면 아주 적은 양으로도 누구나 쉽게 그윽한 여름철 열무김치의 맛을 낼 수 있다. 보리밥이 아니더라도 어느 밥이나 냉면이나 국수나 어떤 것과도 잘 어울린다. 열무김치는 예전의 어머니 손맛을 생각나게 해서 정겹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