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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011. 08:59 NZ코리아포스트 (219.♡.51.194)
왕하지의 볼멘소리
저녁에 산책을 가는데 나보다 걸음이 빠른 아내가 이야기를 하느라고 느리게 걷고 있었다.
“아, 좀 빨리 걸어, 앞에 똥차가 못 가니까 뒤에 새 차도 못 가잖아. 추월하라고 비켜주던지...”
언젠가 국도를 달리는데 차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서 앞을 보니 똥차가 덜덜덜 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속도도 못 내고 똥 냄새는 풍기고 추월선이 나올 때까지 참고 가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아내를 추월하여 후다닥 걸어가자 아내가 물었다.
“당신 요즘 걸음이 왜 이리 빨라졌어?”
“새 운동화를 신어서 그런지 저절로 걸어가 지는군, 난 가만 있는데 말이야.”
지난번 딸이 하얀 T셔츠를 사왔다. 입어보니 딱 맞았지만 어깨가 아파 좀 헐렁한 옷이 입기가 편할 것 같아 큰 옷으로 바꿔 오라고 하였는데 문득 운동화 생각이 났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바닥이 구멍이나 걷다보면 돌멩이가 자주 박혀 돌멩이 빼내는 일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나는 딸에게 T셔츠를 운동화랑 바꾸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더니 아주 비싼 러닝화로 바꿔 온 것이다. 투박하고 너덜너덜한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가벼운 러닝화를 신으니 걸음도 저절로 걸어지는 것 같았다. 발속으로 시원한 바람까지 들어오니 기분까지 상쾌하다.
운동화 하면 참 생각나는 게 많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검정고무신을 신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다녔다. 양말도 안 신고 다니니 발에 땀이 나면 고무신이 잘 벗겨지고 미끄러져 넘어질 때도 있었다. 한 여름엔 신발을 들고 아예 맨발로 다니는 게 더 편했다. 어찌 보면 지금 뉴질랜드의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과 같은 셈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 그대로였지,
나는 운동화를 신는 게 소원이었다. 장에 가서 신발가게를 기웃거려보면 운동화라곤 까만색 밖에 없는데 그게 그렇게 신고 싶었다. 제기차기를 할 때에는 운동화를 신은 애들은 틱틱틱 소리가 나며 조용히 잘 차지는데 고무신은 퍽퍽퍽 소리만 요란하지 옆으로 삐지고 잘 안차졌다. 특히 축구를 할 때면 더욱 힘들었다. 공을 잘못차면 공보다 고무신이 더 멀리 날아갈 때도 있었는데 고무신을 쫓아가는 멍청한 애들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학교에 가다가 돌돌 말아진 돈을 주웠다. 그 돈은 운동화도 살 수 있고 그림물감도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나는 돈을 꽉 쥔 손을 주머니에 넣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교실에 앉아있었는데 그 날따라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한참 쳐다보셨다. 선생님의 표정은 너 돈 주운 것 다 알고 있다는 표정 같았다. 어느새 나는 선생님 앞에 가서 “돈 주인을 찾아주세요.” 하고 주운 돈을 드리고 말았다.
그 날 나는 집에 돌아와 돈을 주웠는데 선생님한테 주인 찾아주라고 드렸다고 어머니께 말했다가 꾸지람을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이 바보 같은 자식, 그 돈이면 운동화를 몇 켤레 살 수 있는데...”
어머니는 이웃에 사는 외삼촌한테 내 이야기를 하였다.
“길에서 주운 돈을 선생님 갖다 주면 선생님이 돈 주인을 어떻게 찾아 주냐? 그 돈은 선생님이 갖을게 뻔하다. 이 멍청한 놈아~” 외삼촌이 말했다.
며칠 후 어머니가 외삼촌하고 장에 갔다 오시더니 까만 운동화와 고기를 사오셨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운동화를 여러 번 신어보고 밤에 운동화를 꼭 껴안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를 가는데 너무 발이 가볍고 상쾌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런데 외사촌여동생도 새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여동생이 팔딱 팔딱 달려와 나에게 말했다.
“오빠~ 나 때문에 새 운동화 신으니까 정말 좋지?”
“너 때문이라니?”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외사촌 여동생이 우리선생님한테 가서 외삼촌이 잃어버린 돈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 돈을 받아 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외삼촌이 그 돈을 반타작하여 장에 가서 운동화도 사고 고기도 사 오신 것이었다.
모처럼 어린 시절의 운동화 신던 즐거움에 빠져있는데 어머니가 밖에서 소리를 지르신다.
“아범~ 빨리 나와 봐, 강아지가 새 운동화 물고 도망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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