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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2011. 12:43 NZ코리아포스트 (202.♡.222.53)
왕하지의 볼멘소리
주방에서 아내가 음식 찌꺼기를 닭 주고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냄새나는 음식 통을 들고 터덜터덜 닭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우드드드~~ 옆집 말 목장 테리가 목장차를 타고 말밥을 주러 폼 나게 다니고 있었다. 제길, 격이 달라도 뭔 격이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옆집이나 우리 집이나 마릿수로는 한 20마리씩 비슷한데 테리네 말은 한 마리당 50만 달러라니, 그럼 우리 닭은 한 마리당 5만 달러는 가야되지 않겠는가? 쩝,
내가 지금 왕가레이 시골구석에서 음식찌꺼기나 들고 다닐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문득, 도사님 말씀이 생각났다. 도사님 말씀으로 치자면 이건 정말 아니었는데...
풋 냄새가 풀풀 풍기던 총각시절, 회사 부장님께서 옆집 족집게 도사님의 도안 일을 해준 적이 있었다. 도사님은 그 보답으로 부장님의 운세를 봐준다 하였는데 부장님은 혼자 가기가 쑥스럽다고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였다. 도사님은 워낙 유명하여 정치인, 사업가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어쨌든 나도 부장님의 강요에 못 이겨 도사님 방으로 졸졸 따라갔다.
부장님의 전직이며 가족사항이며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도사님은 더 많은 것을 꿰뚫어 보는데 정말 기가 막힌 족집게였다. 부장님은 얼굴이 빨개져 땀을 뻘뻘 흘리며 예예, 맞습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근데 저... 사업을 하면 안 될까요?”라고 여쭈었다.
“자네, 사업 할 생각은 하지 마. 자네는 군인이나 공무원이나 그런 일이 딱 맞아. 그리고 자네는 이혼 할 운수인데... 어때 이혼할 생각인가?”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열 댓 번씩 하는데요.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야지요 뭐...”
“그래 그렇다면 방법이 있기는 한데... 자네 부인과 떨어져 살아야하네. 멀리 지방으로 가든지 해외로 나가던지 그러면 이혼만은 피할 수 있네.”
부장님은 한숨을 푹푹 내 쉬다가 나를 가리키며 도사님께 말하였다.
“도사님, 얘도 한번 봐 주시죠? 우리 직원 앤데요.”
도사님은 내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씀이 없었다. 이윽고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한 도사님이 말문을 여는데 나를 갑자기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선생님의 운세를 본다는 것이 저에게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옛날 같으면 제가 큰절을 올려야 마땅합니다만 그러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옵고... 선생님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 약조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나는 갑자기 어안이 벙벙했고 부장님은 옆에서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가 도사님께 재촉하였다.
“아, 얼마나 좋길래 그래요. 빨리 말씀 해보세요?”
“이사람 잠자코 있게나, 자네는 이런 분 밑에서 일을 해야 돼, 그럼 걱정 할 일이 없어~ 선생님 약조는 다른 게 아니라, 훗날 선생님과 제가 만날지 못 만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인연이 되어 혹여 만나게 되면 저에게 선물을 하나 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선물 요?”
“그럼,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집을 한 채 사주셔도 좋고 차를 한 대 사주셔도 좋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해 주시면 됩니다.”
생각해보니 차가 훨씬 쌀 것 같아 차를 한 대 사드린다 하였더니 말씀을 계속 하셨다.
그 날 저녁 직원들과 회식을 하는데 부장님은 괜히 나에게 화를 내면서 신경질을 부렸다.
“인마~ 내가 네 밑에서 일을 하라고? 이 자식 웃겨, 세상이 두 쪽이 나도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다. 건방진 놈,~”
그런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부장님은 회사를 그만 두었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 달에 몇 백 만원 씩 벌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뉴질랜드 달러로 몇 만 달러 씩 벌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어느 날 낯익은 한 분이 찾아왔는데 부장님이었다. 부장님은 큰 기업에 취직을 하여 외국에 나가있었고 부인은 월급을 알뜰히 모아 커다란 집을 샀다고 하였다. 그런데 국내실정을 잘 몰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잘 나간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면서 내 밑에서 일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문득 도사님 말씀이 생각났다.
“부장님, 그때 도사님 말씀 듣고 저한테 화내신 거 생각 안 나세요?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제 밑에서 일 할리는 없다 하셨지요?”
나는 살아오면서 가끔 도사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나 보다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한 때는 돈을 갈퀴로 긁는다는 말도 들었고 한때는 이름이 알려지고 감투를 쓰라는 말도 들었지만, 요즘은 도사님 말씀이 많이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도사님 말씀의 한 구절은 악착같이 내 머릿속에서 윙윙거리고 있다.
“선생님이 가는 곳마다 물이 술로 변하고 나뭇잎이 돈으로 변할지니...”
얼마 전, 물에서 놀고 있는 오리 그림을 그려 키위에게 선물했는데 고맙다고 술을 잔뜩 사왔다. 어라... 도사님 말씀이 맞나? 물을 그리니 물이 술로 바뀌고 말이야, 이제 나뭇잎만 잔뜩 그리면 뭉칫돈이 우르르 몰려오겠어, 그리고 우리 집에 고물차가 4대나 있으니 혹여 인연이 되어 도사님을 만나게 된다면 차도 한 대 드릴 수 있는데 말이야...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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