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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2011. 12:26 NZ코리아포스트 (202.♡.85.222)
왕하지의 볼멘소리
딸이 괜찮은 한인 아가씨가 있다고 오빠에게 말하자 옆에서 아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아들아 당장 만나보아라~”
“어휴~ 엄마, 지금 내 상황이 여자 만날 상황이야~”
좀 차근히 이야기를 해야지 틈만 나면 아내가 재촉을 하니 아들도 귀찮겠지만 근데 뭔 상황이 어떻다는 거야?
“아빠가 결혼을 할 때는 정말 상황이 안 좋았다. 네 엄마가 서두르는 바람에 할머니에게 이백만원 빌려서 석관동 연탄공장 옆에다 방 한 칸 얻었다. 온 동네에 까만 연탄가루가 훨훨 날아다녔지, 엄마는 밖에다 빨래도 못 널었다, 여보, 안 그래?”
“연탄가루? 생각이 안 나는데...”
“하긴 뭐, 멋진 신랑이랑 사는데 연탄가루가 신경 쓰였겠어. 근데, 아들은 무슨 상황이 안 좋다는 거야? 영어 잘하지, 애비 닮아 그림 잘 그리지, 나중에 돈도 잘 벌 테지, 옛날에 미스터리라고 걔만큼 상황이 안 좋은 애도 없었는데...”
신혼 초에 나는 작은 회사에 팀장으로 근무했었는데 우리 팀에 미스터리라는 애가 있었다. 얼마나 착한지 여직원들도 마다하는 청소며 굳은 일은 혼자 다 하고 소탈한 성격에 히죽거리며 웃기는 얘기도 잘했는데 흠이라면 너무 못 생겼다는 게 흠이었다.
사장님은 일감이 줄자 호조건을 내걸고 미녀영업사원들을 채용했는데 회사분위기는 봄날처럼 화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자들이 북적거리고 무척 심난했다.
“미녀들이 찾아가는데 인간들이 일감 안주고 베기겠어? 큭크크,”
사장님은 매일 아침마다 미녀 영업사원들과 인간 꼬시는 회의를 진행하며 키득 거리곤 하였다. 그 중 미스한이 제일 예뻤는데 미스한은 어렸을 때부터 집에 한시도 붙어 있지 않고 싸돌아다니는 체질이라 영업사원이 딱 맞는다고 깔깔거렸다.
그즈음, 미스터리는 명랑하던 모습이 온데간데없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결근도 자주하더니 어느 날 사표를 내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에게 상의 할게 있다고 시간을 내달라고 하였다. 퇴근 후 우리는 종로 돼지갈비 집에서 한잔 걸치는데 미스터리는 침울한 표정으로 소주만 마시더니 눈물방울을 쭈르르 흘리고 있었다. 나는 무지 큰일인가 보다 바짝 긴장하여 이야기를 들었는데 들어보니 정말 대책 없는 큰일이었다.
미스한을 죽도록 사랑하는데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아 죽어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기 전에 누구한테 말이라도 속 시원히 해야 하는데 자기 말을 들어 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질질 짜고 있는 못생긴 미스터리의 얼굴에 눈물 콧물까지 범벅이 되니 정말 가관이었다. 거울이라도 있으면 보여주며 ‘자, 네 얼굴을 봐라. 미스한하고 어울리는 구석이 어디 한군데라도 있냐?’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쁜 상황에서 좋은 말만 해 주는 나의 버릇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였다.
“근데... 죽기 전에 미스한에게 네 마음을 한번 보여주지 그러냐? 미스한은 너의 겉모습만 보았지 비단결 같은 너의 속 모습은 보지 못했지 않느냐...???”
그래, 만나서 대화하다보면 대책 없는 짝사랑이 얼마나 쪽팔리는지 느낄 테고 그러다 보면 마음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나는 술에 너무 취해 그 이상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후 한동안 미스터리를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실장님, 아들 돌잔치 한다는 말씀 들었어요. 그 때 찾아뵐게요. 미스한하고 같이요...”
미스한하고 같이? 아니, 얘가 정말 실성했나? 나는 괜히 걱정이 되었다. 손님들 앞에서 질질 짜면서 뒈진다고 나자빠지면 어쩌나하고...
아들 돌잔치 날, 거실에 많은 손님들이 모여 있는데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미스터리가 히죽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그 뒤에... 화사한 옷차림의 아가씨가 나비같이 사뿐사뿐 걸어오는 게 아닌가, 아... 미스한이었다.
사람들은 음식이 가득 들어있는 입을 벌리고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누군가 말했다. “완전 미녀와 돼지로군,”
미스한은 예쁜 아기 옷을 사와 아들에게 입히면서 말했다. “실장님 아들이 너무 잘생겼어요.”
잘생기면 뭐하냐.... 그 때 돌잔치를 했던 우리 아들은 온 동네에 꽃가루가 훨훨 날리는 왕가레이에서 벌써 나이 삼십을 넘겼다.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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