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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011. 11:59 NZ코리아포스트 (202.♡.85.222)
왕하지의 볼멘소리
동네 산책을 하다가 별로 반갑지 않은 로저를 만났다.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먼 발치에서 보게 되면 소리만 한번 지르고 그냥 가면되는데, 로저는 반가운 듯 트랙터를 세우고 여러 말들을 건넸다. 로저는 소 그림 이야기와 우리식구들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리고 소 그림 하나를 준다고 했는데 왜 안주냐고 묻기도 하였다.
“로저~ 소 그림은 다음에 주겠다. 지금은 소 그림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로저, 너 때문에 말이야, 우리 아들 허리 다쳐 고생 무지하게 했다. 다 너 때문이야~ 이 말이 입속에서 튀어 나오려고 했지만 그냥 꾹 참고 입을 닫았다. 또 영어도 잘 안될 것 같고...
여름에 엄청 가물어 땅이 갈라지고 풀이 부족해 소들과 양들이 난리가 났을 때 어떤 사람은 길가에 트럭을 대고 휘어진 칼로 풀을 베어 실어 나르기도 하였다. 어떤 아주머니는 풀을 뜯어 자루에 담아 나르고 있었다. 옛날 한국 시골 풍경을 보는 듯했다. 논두렁에 지게를 받치고 꼴을 베어 담아 지고 나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풀이 모자라 고생하던 우리 집도 소 4마리를 몽땅 팔아치운 후에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는데 그 후 우리 땅은 언제나 풍성한 풀을 갖고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풀이 부족한데 누구네 짐승들에게 풀을 먹일까 궁리하던 중 아내가 큰길가에서 소를 몰고 가는 로저를 만난 것이다.
우리 집 골목길을 벗어난 큰 길 건너는 로저네 땅인데 땅도 크지만 소가 워낙 많다 보니 로저도 풀이 모자라 무척 고생하는 것 같았다. 우리 땅에 풀이 많으니 너의 소들을 옮겨 뜯어먹게 하라는 아내의 말에 로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는 엄청 자란 풀밭을 침을 질질 흘리며 바라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풀 값을 얼마를 줘야하냐고? 그냥 공짜로 준다했더니 그는 풀밭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보고 그 나무를 화목으로 잘라준다고 하였다. 몇 년 전 태풍 때 쓰러진 나무인데 워낙 나무가 커서 우리가 자르기에는 너무 힘들어 사람을 시켜 자르려고 했던 터이다,
그 날 로저는 23마리의 소를 몰고 왔다. 그리고 소들이 워낙 물을 많이 먹으니 로저는 이동식 물탱크로 물을 퍼 날랐다. 소가 많다보니 생김새들이 모두 달랐다. 우락부락한 황소부터 뿔이 잘라진 소, 밝은 색의 예쁜 암소들...
손자가 풀밭에 소가 많으니 신이 나서 뛰어 들어갔는데 갑자기 큰 황소들이 손자 곁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겁이 난 손자가 울고 있었다. 내가 얼른 뛰어 들어가 말했다.
“너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 안 봤어? 원주민 꼬마가 이렇게 폼 잡고 버티니까 소들이 다 멈춰서잖아. 소가 가까이 오는 것은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야,”
소들이 풀을 반쯤 뜯어먹었을 무렵 로저가 나무 자르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무의 밑둥치가 너무 굵어 자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쪽으로 반만 잘라 주겠다는 것이다. 로저의 속이 들여다 보이는 순간이었다. 소들이 풀도 거의 뜯어 먹어가겠다, 풀은 애초부터 공짜로 준다고 했겠다, 그러니 힘들게 나무를 다 잘라줄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소들의 사진을 찍는데 로저가 소를 사진 찍어 뭐하냐고 물었다.
“내가 요즘 동물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너희 소를 그리려고 그런다. 그림 그리면 너도 하나 줄까?” 로저는 그림 한 점 준다는 말에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소들이 풀을 다 뜯어먹었을 때 로저는 소들을 몰고 가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를 잘라준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로저는 오지 않았다. 아들에게 로저네 집에 가서 나무 언제 자를 거냐고 물어보라 했더니
“아휴~ 아빠 뭘 그런 걸 물어봐, 로저가 알아서 하겠지 뭐,”
결국 로저는 오지 않았고 인건비를 정하고 나무를 잘라주기로 한 마이클이라는 젊은 친구가 몇 차례나 오기로 약속했는데 일감이 작아서 그런지 그도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집에 있는 작은 체인소로 아들이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잘라놓은 나무를 운반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일주일동안 앓아누웠다.
“아들아, 일을 못하면 시키기라도 잘해야 되는데 이것도 저것도 못하면 평생 고생한다. 아빠는 한국에서 시키는 것은 참 잘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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