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은 예년에 비해 비바람이 자주 몰아치고 날씨가 쌀쌀했다. 게다가 햇볕까지 별로 없으니 심어놓은 채소들이 자라는 것이 영 시원치가 않았다. 어머니께 뒤 곁에 호박하고 오이를 심느냐고 여쭈었더니 오이만 많이 심으라하신다.
“호박은 뭐해~ 오이나 많이 심어,”
“아니, 왜 오이만 많이 심어요? 호박도 심어야지요. 여보, 고추도 많이 심어~”
아내는 고추를 많이 심고 그걸로 김치까지 담그자고 하였다. 매년마다 장모님이 고추 가루를 보내주시는데 고추 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럼 고추도 많이 심고 배추도 심어서 아예 김장거리를 몽땅 만들어 줄게,”
식당 개 3년이면 라면도 끓인다는데 왕가레이 시골에 산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김칫거리하나 못 키우고 있으니...
작년에 오이와 호박을 처음으로 잘 키웠는데 호박은 너무 많아 이웃에 나누어 주기까지 하였고 오이도 우리식구 넉넉하게 먹을 수가 있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어머니는 뒤 곁에 자주 가셔서 오이를 세어보시곤 하셨다. 하나, 둘, 셋... 지팡이로 오이나무 잎을 하나하나 들추시며 어라~ 여기도 오이가 숨어 있네, 이쪽도 또 숨어있고 이게 도대체 몇 개야~ 열둘 열셋...
아내가 오이를 따오라고 해서 큰 오이는 모두 따서 소쿠리에 담아 자랑스럽게 갖다 주었는데 아내는 신이 났지만 한참 후 오이가 없어진 것을 안 어머니가 노발대발하셨다.
“아니, 오이를 누가 다 딴 거야~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이를 세어보는 재미로 사는데 내가 경로당을 가나, 친구가 있나, 오이 세는 재미밖에 없는데~”
“어머니 그럼 호박을 세어보세요.”
“호박은 재미없어, 너무 크고 몇 개 안되고...”
내가 생각해도 호박은 커다란 게 빤히 보이니까 별 재미가 없겠어,
“그럼 고추를 세어보시지 그래요. 많으니까 온종일 세어보면 심심하지도 않을 텐데...”
어머니는 그 많은걸 어떻게 세냐면서 오직 숨바꼭질 하듯 오이를 찾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아내가 오이를 따오라고 하면 어머니가 세어보실 수 있게 남겨두고 몇 개씩만 따다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오이를 중간크기까지 왕창 따서 오이지를 담아버렸다. 어머니가 또 노발대발하셨다.
“오이를 누가 다 딴 거야~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이를 세면서 노는 재미로 사는데... 경로당을 갈 수 있나, 친구가 있나...”
“아니, 오이를 데리고 놀라고 키워요? 먹으려고 키우는 거지~ 뭐 놀게 없어서 오이랑 노세요, 강아지도 있지, 닭도 있지, 새들, 꽃들도 많지 같이 놀을 게 너무 많고 만, 여보 안 그래?”
“글쎄 말이야, 달마하고 논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오이랑 논다는 얘긴 나도 처음 들어봐, 호박이랑 노시라 했더니 호박은 시시하고, 고추랑 노시라 했더니 고추는 너무 많다고 안노신대, 고춧잎 들춰보면서 고추랑 숨바꼭질 하면 재미있을 텐데 말이야...”
“아이고~ 고추랑 노시면 너무 재미있겠네, 온종일 심심하지도 않고 식구들 귀찮게 간섭도 안하고... 호호호,”
올 봄에는 오이 씨앗을 2번이나 심었다. 처음 심은 것은 너무 추워서 그런지 죽은 것이 많지만 나중에 심은 것은 모두 살았다. 오이나무가 많으니 뒤 곁과 집 입구 울타리에 잔뜩 심어 놓았으니 어머니가 식구들 오나 벤치에 앉아 기다리며 오이를 세어보면서 놀고 또 놀고...
“어머니 오이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신이 나서 경로당 친구라도 만나러 가듯 지팡이를 짚고 서둘러 나가신다.
오이야 무럭무럭 자라 주렁주렁 열려서 꼬부랑 할머니랑 온종일 숨바꼭질 하면서 잘 놀아 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