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에는 20여종이 넘는 새가 살고 있다. 푸드득거리며 날아다니는 새 몇 마리 바라보는 사이에 한해가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한국에서 여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여동생과 통화를 하는 어머니는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에 대해 긴 답변을 늘어놓으신다.
“잘 지내냐고? 아이고 말도마라~ 말도 안통하고 돈도 모르고 완전 바보가 됐어, 친구도 없고 어디 가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살지 뭐, 오빠? 맨 날 그림만 그리지 뭐, 팔았단 소린 못 들었어...”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냥저냥 멍청하게 살아가는 아들 얘기를 하시는 것 같아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한국에 살 때에는 몇 년, 아니 적어도 1~2년은 앞을 내다보고 살았는데 뉴질랜드에서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요즘같이 꽃가루에 풀가루까지 훨훨 날리는 계절이면 눈물 콧물이 앞을 다퉈가며 시야까지 가려주니 그야말로 정신이 몽롱할 따름이다. 왕가레이 망가타페르에 살면서 망가져 가는 것일까? 아니면 부화할 날만을 꿈꾸는 것일까?
이민을 오기 전 희망 반 걱정 반으로 이민경험담을 찾아보곤 했는데 그 당시 매스컴에서는 실패한 이민에 대해서 많이 나왔었다. 주로 같은 한인끼리 등쳐먹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몇 만 달러짜리를 몇 십 만 달러에 팔아 넘기는가하면 희망의 땅에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해 온가족이 노숙생활을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빈털터리로 한국에 돌아온 것이 너무 창피해 연락도 못하고 숨어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장 공감이 가는 이야기는 캐나다로 이민을 간 어느 가장이 영어 잘하는 아이들에게 의탁해 아이들 하자는 대로 이것저것 사업을 하다가 모두 망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보고 괜히 걱정이 되었다. 이거 나도 돈 몇 푼 가져갔다가 거지가 되는 거 아냐?...
이민생활의 예상은 언제나 빗나갔다. 집을 사서 리 모델링을 하고나니 집값이 폭락하고 게다가 먼지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비염, 알레르기는 악화되고 조각을 시작하니 오십견때문에 해머 질을 못하게 되고 그림을 그리다보니 눈이 침침해 붓을 놓을 때가 많다.
한때 아내는 중국인이 하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고 아들은 학교 다니면서 한인식당에서 일을 하고 딸도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두 식당에서 일을 하는 셈이었는데 식구들이 모이기만 하면 식당이야기를 하였다. 항상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들, 오늘 밥 몇 그릇 팔았어? 딸, 햄버거 몇 개 팔았어? 아이고 우리가게는 샌드위치부터 엄청 많이 팔았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밤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니 옆에서 듣기가 상당히 거북했다.
“아니, 당신이 식당 주인이야? 왜 매일 밥 몇 그릇 팔았냐고 물어보냐고~ 듣기 싫어 죽겠네, 내가 차라리 인테리어 멋있게 해서 식당하나 차려 줄 테니까 직접 하던지... 우리 집 식구들이 다 전문가들 아냐? 서빙전문가, 설거지 전문가,”
“아이고 여보~ 골치 아프게 뭐 하러 식당을 해, 그냥 설거지나 하고 주급 받는 게 편하지~”아내가 손사래를 치자 아이들이 말했다.
“아빠, 우리가 식당 차리면 다른 한인식당들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해? 괜히 욕먹는 거 아냐,”
“그것도 문제로군...”
요즘은 아내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는데 딸도 가게에서 일하고 아들도 학교 다니며 가게에서 일을 한다.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을 때면 온통 물건 파는 이야기뿐이니 밥 먹다 체하기 십상이다.
“아들, 오늘 얼마나 팔았어? 딸은 얼마치 팔았어? 나는 오전에는 죽 썼는데 오후에는 무지 많이 팔았어,”
“아니, 당신이 가게 주인이야~ 얼마치 팔았어? 얼마치 팔았어? 왜 매일같이 물어보는 거야~ 어휴 지긋지긋 해, 차라리 가게하나 차릴 줄 테니 직접 하던지, 점원들도 많겠다...”
“아이고, 여보 골치 아프게 가게는 뭐 하러 해, 그냥 물건이나 팔고 주급 받는 게 편하지,”
“아빠, 가게 차려서 한인가게들 모두 망하면 어떻게 해, 아직 영주권도 안 받은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문제로군...”
새가 날아간다. 푸드득거리는 날갯짓 사이로 멍청한 세월은 그냥저냥 흘러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