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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2010. 11:11 코리아포스트 (219.♡.23.25)
왕하지의 볼멘소리
뉴질랜드는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나라다 보니 국제결혼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2개 국어 이상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기가 말을 배울 때 2개 국어를 소화시켜야 하니 말을 하기까지는 일반 아이에 비하여 좀 늦는 편이다. 영어권 외의 다른 나라끼리 국제결혼을 한사람들 자녀는 말을 더 늦게 배우지만 아이들은 자동으로 3개 국어까지 구사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손자 샘처럼 한국어를 영어식으로 사용하다 보면 재미있는 말들이 생겨나고 어른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말들도 있다.
아내의 친구 중에 취라는 중국아줌마가 있는데 취의 남편도 중국인으로 이 곳의 컴퓨터 회사에 근무를 하고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취의 남편에게 내 그림들을 보여 주며 한문으로 써놓은 글의 뜻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는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옆에서 취가 말하기를 자기남편은 어릴 때부터 피지에 살았기 때문에 중국말은 잘하지만 글자는 못 읽는다고 말하였다.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오면서 또한 그것이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영어는 읽을 줄 아는데 말은 잘 못하기 때문이다.
아내보고 손자가 방학 때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더니 홀리데이에는 더 바쁘다고 오히려 5시까지 연장 근무를 한다고 하였다. 게다가 새벽미사까지 다니니 아침부터 삼시세끼는 내가 다 챙겨 먹어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손자에게 라면 끓여줘야지, 간식 챙겨줘야지, 정리해야지, 잔디 깎아야지, 짐승 먹이 줘야지, 작품 해야지 이정도니 전업주부도 내 앞에선 명함을 못 내밀 것 같다.
손자 샘의 친구 랜도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샘은 영어, 한국어에 능통하지만 랜도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왜냐하면 랜도는 4개 국어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랜도 아빠는 헝가리 사람으로 중국 침술학을 공부한 후 이곳에서 침을 놓고 있는데 한의원이 없는 이곳 교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랜도의 엄마는 스페인 사람이니 랜도는 헝가리어, 스페인어, 영어 그리고 마오리어까지 잘 한다고 한다. 샘은 랜도가 있을 때는 한국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랜도가 한국말을 못 알아 듣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손자가 사탕을 가지고 와서 큰소리로 말을 하였다.
"하지~ 사탕 문 열어줘~" 사탕을 까 달라는 말이다.
4개 국어를 할 줄 아는 랜도는 손자를 따라와 옆에서 사탕을 나에게 내밀며 눈만 깜박거릴 뿐이다. 손자는 랜도가 들으라고 더 큰소리로 말을 하였다.
"빨리 문 열어줘~~" 사탕이 반짝 종이에 갇혀 있으니 문을 열어 줘야 나와서 입속으로 쏙 들어가는데 날씨가 더워 사탕이 녹아서 반짝 종이에서 잘 안 떨어졌다.
손자는 친구랑 놀고 있으니 내가 좀 편하긴 하지만 온 집안을 어질러 놓고 안 밖으로 들쑤셔 놓아 정리하는 것도 큰일이다.
손자가 차고에서 텐트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달려왔다. 침을 튀기며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어 보는데 급할 땐 한국말보다 영어가 빠르니 영어로 말을 한다. 텐트를 쳐주면 이불 베개 등 집안 살림을 몽땅 옮겨 놓고 난리를 칠테니 텐트의 비 막이만 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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