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 두번째 이야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일터 - 두번째 이야기

0 개 1,181 한얼
전 연재분의 마지막을 손님 이야기를 하며 마쳤으니, 이번에도 손님들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가장 대하기 어려운 류의 손님이랄까, 제일 꺼리는 방문객들은 당연히 어린 아이 내지 아기들이다. 어째서인지 가게에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은 아이들보단 물건에 더 신경을 쓰고, 그렇게 방치되다 보니 제멋대로 가게 안을 휘젓고 돌아다니거나, 심하면 물건을 건드려보고 망가뜨리는 어린이들도 심심찮게 생긴다 (그리고 그럴 때면 물론 뒷수습은 나를 비롯한 직원들의 몫이다).

가끔 사이렌을 방불케 하는 익룡 소리를 내며 우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면 부모도 아닌 내가 볼기짝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보통은 이걸 사달라, 저걸 사달라 떼를 쓰다가 부모가 들어주지 않으니 우는 경우인데, 마구 울고 발버둥을 치는 아이들도 대단하지만 거기에 꿈쩍도 않는 절대 다수의 부모들이 더 대단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도 직원에게 거듭 사과만 할 뿐, 결코 아이의 고집은 들어주지 않는다. 왠지 보고 있자면 통쾌해진다.

이따금씩 아이의 생짜에 못 이겨 결국 물건을 계산대로 들고 와선, 아이가 한눈을 파는 틈을 타 슬며시 ‘이건 사지 않겠다’고 내게 속삭이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그럴 때면 난 알았다는 공모자의 미소를 씨익 지으며 바코드를 찍는 척 하면서 치워버린다. 하지만 꼬마들이란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열에 여덟은 자기가 원하던 물건이 봉지 안에 없는 걸 깨닫고 엄마를 마구 잡아당기며 울어제끼기 일쑤다. 그럴 때면 엄마들은 부리나케 계산이 끝난 봉투를 들고 가게에서 사라진다. 참 측은하기까지 하다. 손을 흔들어주고 싶을 만큼.

그 다음으로 어려운 손님이라면, 웃지 않는 손님일 것이다. 웃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으면 더더욱. 모든 손님을 대할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걸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물건만 척 올려놓으면 내 미소도 싹 사라진다. 바코드를 스캔하고 돈을 받은 후 물건을 넘겨주는 동안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렇게 차갑게 맞대응을 한다고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하는 손님들은 없었지만 - 새삼 한국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처럼 좋건 싫건 웃어야 하는 근무 조건이었다면 난 금방 미쳐버렸을 것이다 - 직원도 무례한 손님에게 억지로 친절하게 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직원의 친절을 위해 가게에 오는 게 아니라 물건을 사러 오는 거니까. 상냥한 접객은 어디까지나 손님 유치를 위한 수단이지, 필수적인 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대화도 뭣도 없이 그냥 물건만 사고 나와도 목적은 달성했으니 상관 없지 않겠는가. 친절은 공짜가 아니지만 거기에 돈 대신 똑같이 미소와 인사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직원들의 친절은 고용주가 대가를 지불해주니까).

그 외엔 당연히 무례한 손님,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면 애꿎은 직원들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가게 욕을 하는 손님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나 싫어할테니 이하생략.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다행히 하나같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대인 기술이 제로에 가까운 내게는 그야말로 천우신조일 만큼. 상사들도, 동기 직원들도 모두. 정말 드문 일이다. 타인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더 편하기에 필요 이상의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지만, 그래서 그 사람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 제일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듯, 나의 직장과 일은 매우 피곤하면서도 다이나믹하고, 힘들지만 즐겁다. 내일도 열심히 해야지.

생일 - 이정표, 기념일, 생존기

댓글 0 | 조회 1,324 | 2015.04.15
생일이 지났다. 해가 갈 수록 나이를 먹는 것이 점점 빠르게 체감되어 안타까웠다. 어렸을 적엔 생일이 아주 즐겁고, 매년 손꼽아 기다리곤 하는 연중 하이라이트였는… 더보기

바뀌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

댓글 0 | 조회 1,318 | 2013.08.28
누구에게나 삶의 패턴은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규칙, 루틴, 어겨선 안 될 불문율, (이런 조잡한 표현을 사용해도 좋다면) 징크스.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더보기

무하전

댓글 0 | 조회 1,310 | 2013.07.23
정말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전이 있어 다녀왔다. 화가의 이름은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로, 대표작으로는 <… 더보기

요리 - 피할 수 없는 사소함

댓글 0 | 조회 1,298 | 2015.09.24
먹고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 하나: 요리. 요리를 잘 하냐고 묻느냐면 그저 그렇다고 답한다.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굳이 소질이 있지는 않아… 더보기

동물들 - 우리의 친구

댓글 0 | 조회 1,269 | 2013.01.16
동물 애호 사상이 강한 서양권 국가에 살고 있는 만큼, 거리를 걷다 보면 동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띈다. 주로 개나 고양이들이다. 크고 작고, 털이… 더보기

Piano - about music

댓글 0 | 조회 1,269 | 2013.03.13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거의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듣는 노래도 악보를 두고 꾸준히 연습하면 썩 들… 더보기

일터 - 첫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237 | 2015.06.10
내가 일하는 곳은 만물상이다. 적당한 크기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건들이 한가득 쌓여 있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나이든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찾… 더보기

스마트폰 - 디지탈과 아날로그

댓글 0 | 조회 1,222 | 2013.01.31
디지털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변화를 거부하고 ‘전화는 통화와 메시지만 보낼 수 있으면 장땡’이라고 여기던 내게, 얼마 전 커다란 변화가 일어… 더보기

놀이터

댓글 0 | 조회 1,219 | 2014.05.28
어른이 되었어도, 놀이터를 지나칠 때마다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10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어린아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그네를 타고 … 더보기

차근차근, 우주적으로

댓글 0 | 조회 1,190 | 2013.05.14
주말에 시간이 남아, 모처럼 브라우니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아주 신이 났다. 계란과 버터는 미리 꺼내두어 냉기를 제거해 두고, 양철 그릇과 주방용 저울과 재료들… 더보기

Going Out

댓글 0 | 조회 1,188 | 2012.12.24
나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내향성인 것이다. 여러모로 훌륭한 히키코모리의 기질을 타고 났다며 빈정거릴 지도… 더보기

현재 일터 - 두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182 | 2015.06.24
전 연재분의 마지막을 손님 이야기를 하며 마쳤으니, 이번에도 손님들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가장 대하기 어려운 류의 손님이랄까, 제일 꺼리는 방문객… 더보기

Scars, scars into stars

댓글 0 | 조회 1,182 | 2013.06.26
덜렁거려서인지 또는 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다치는 편이다. 하다못해 계단을 올라갈 때도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지거나, 책을 읽으면서 모퉁이를 돌다가 허… 더보기

Tea - the drink of my heart

댓글 0 | 조회 1,166 | 2013.03.26
매일매일 즐기는 날마다의 일과 중에 차를 마시는 것이 있다. 다도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거창하거나 엄숙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티타임&rsquo… 더보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과시적 고통

댓글 0 | 조회 1,142 | 2013.05.28
약 두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처음엔 그저 욱신거리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평소에도 지끈거린다. 특히 앉았다 일어날 때. 으으윽! 그 짜릿한 통증이라니. 이루 말… 더보기

회색 도시 - 향수(Ⅰ)

댓글 0 | 조회 1,131 | 2012.11.28
2008년, 나는 가족 방문을 위해 한국에 와 있었다. 겨울이었고, 매우 추웠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그럴 것처럼 흐린 날씨였다고 기억한다. 예전에 살… 더보기

우정과 허망 사이

댓글 0 | 조회 1,118 | 2013.04.23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십 대를 갓 넘긴 주제에 사람 관계가 하루살이의 하루만큼이나 덧없다는 사실을 아는 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물론 내가 … 더보기

회색 도시 - 향수(Ⅱ)

댓글 0 | 조회 1,099 | 2012.12.11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겨우 오르막길을 올라왔건만, 그 위에 있던 풍경은 나를 허탈케 했다. 언덕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잠시 내가 잘못 찾은 건 아닌가 싶었다… 더보기

시네마 - 은막의 마력

댓글 0 | 조회 1,060 | 2013.02.12
언제 가도 즐거운 장소 중엔 영화관이 있다. 동네의 비교적 작은 영화관도, 시골 구석의 박물관 같은 시네마도, 최신형 기계들과 대형 스크린을 갖춘 번화가의 영화관… 더보기

즐거운 자기 재확인

댓글 0 | 조회 1,033 | 2013.11.12
쇼핑을 좋아한다. 옷을 사거나 책을 사는 등의, 좋아하는 물건들을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사러 가는 일도 모두 즐… 더보기

조용한 크리스마스

댓글 0 | 조회 1,029 | 2015.01.14
크리스마스는 새해와 함께 별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행사들을 싫어하는 편이고, 기념일은 매번 잊어버리는 유형의 사람인지라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더보기

종이에 대고 외치기

댓글 0 | 조회 1,020 | 2013.04.10
코리아 포스트에 450자짜리 수필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개월이 지난 것 같다. 1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시간 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