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돌아 내려가 다산초당에 도착했습니다. 초당에서 찬찬히 백련사까지 걸어 봅니다.
도반 혜장 선사가 그리워 발걸음을 재촉했을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느 봄날, 냉이밭에서 하염없이 팔랑거리는 하얀 나비를 보며 다산 선생은 탄식했습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곧장 백련사로 향했습니다.
한걸음에 도착해 다산은 혜장 선사와 차를 마시며 그윽한 우정을 나눴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의 벽은 차향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다산이 혜장 선사를 찾아가던 오솔길은 동백숲과 야생차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차와 꽃과 학문과 종교를 주제로 나눴을 두 사람의 대화는
이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되새겨지고 있습니다.
종합수행도량을 총림(叢林)이라 합니다. 수행자들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존재가 숲을 이루고 있어서 총림이라 했습니다.
봄이 살짝 고개를 내민 햇볕 따스한 날. 차를 달리고 달려 도착한 남도 강진의 백련사 동백숲은 또 다른 총림이었습니다.
꽃 중에서도 유독 꿀이 많다는 소문을 들어서인지 수많은 새와 벌이 각자의 노래를 부르며 꽃과 어울렸습니다. 꽃과 벌과 새가 만들어낸 하모니는 수행자들이 총림에서 만들어내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무와의 인연이 다해 땅으로 떨어지다 부도 위에 앉은 꽃도, 땅에 앉았다가 누워 버린 꽃도, 벌과 새에게 꿀을 내어주는 꽃도, 모두가 그 자체로 우주였습니다.
백련사 주지 보각 스님이 동백숲 길잡이를 자처하며 운을 뗍니다.
스님이 언젠가 당신의 노트에 메모해 둔 글이라 합니다.
오늘도 동백숲을 걷습니다.
동백꽃은
나무에 걸려 있어도,
물에 앉아 있어도,
땅에 서 있어도,
동백꽃입니다.
땅 위
하늘 아래
언제나 똑같은 그 얼굴로 고운 자태를 뽐내는 동백꽃.
동백꽃처럼 변치 않는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입니다.
동백꽃처럼 활짝 웃는 그 얼굴이 바로 부처님 얼굴입니다.
활짝 핀 스님의 얼굴에 동백꽃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보각 스님은 템플스테이를 위해 백련사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 매일 아침 이 길을 걷습니다. 길을 걷는 맛은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비가 예보된 다음 날에도 똑같은 시간에 나와 걸을 것이라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템플스테이와 길’을 생각해 봅니다.
템플스테이가 길(Road, 道)입니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가신 분,
언제나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했던 분, 부처님입니다.
팬데믹(pandemic)을 극복하는 길이 템플스테이에 있습니다.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찾는 길이 템플스테이에 있습니다.
템플스테이 20년,
길 위에서 많은 대중을 제접(提接)했던 부처님처럼 묵묵히 걷고 또 걸었습니다.
동서와 남북,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손을 잡았습니다.
앞으로의 20년, 마음을 더하겠습니다.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 강진 백련사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061-434-0837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