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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전국에서 양봉농가의 벌통에서 꿀벌이 자취를 감추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韓國養蜂協會)가 최근 협회 소속 2만3582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7.6%인 4173 농가에서 봉군(蜂群) 소실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77억 마리 이상의 꿀벌이 사라졌다.
지역별로는 전남에서 봉군 10만5894개가 소실돼 가장 큰 피해를 봤으며, 이어 전북(9만개), 경북(7만4582개), 경남(4만5965개) 순이었다. 지난해 약 558억마리의 꿀벌이 사육됐는데, 14%가 폐사했다. 작년 2-4월 이상 고온으로 아카시아(Acacia)가 조기 개화했고, 개화기가 10일가량 짧아져 벌이 꿀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이 준 것이다. 벌이 아카시아꿀을 충분히 먹지 못하여 면역력이 떨어져 폐사가 늘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이번 꿀벌 실종 현상은 해충의 일종인 꿀벌응애와 말벌로 인한 폐사, 이상기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피해 봉군(蜂群)에선 대부분 응애가 관찰되었으며, 이는 사양(飼養)꿀과 로열젤리(royal jelly) 생산 후 적기 방제(防除)를 하지 않은 탓이다. 일부 농가는 응애류 방제 과정에서 약제를 과도하게 사용해 제대로 발육이 안 된 꿀벌이 폐사했다.
경북에는 5,299농가에서 벌을 키우는데, 국내 전체 양봉농가의 19.2%를 차지한다. 경상북도는 벌꿀 생산 기반 안정을 위해 109억4,000만원(자부담 40% 포함)을 들여 피해 농가에는 벌 입식비를, 전체 양봉 농가에 진드기 구제 기능이 있는 소초광(밀랍으로 만든 벌집틀), 면역증강제 등을 지원키로 했다. 또 신품종(장원벌)을 연간 2,000군 보급하고, 병해충 예방을 위한 면역증강제 등을 확대 공급하는 등 품종개량과 병해충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충남도는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공주 ‘치유의 숲’에서 제77회 식목일 기념행사를 열고 밀원수, 경제수 등 나무심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양승조 충남도지사와 도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까시나무, 헛개나무, 산딸나무, 산수유 등 꿀벌의 먹이가 되는 밀원수(蜜源樹) 4종 600그루를 1ha에 걸쳐 심었다. 충남도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677.9ha의 밀원숲을 조성했으며, 올해는 15개 시•군 542ha에 146만9000그루의 밀원수를 심을 계획이다.
정부는 양봉산업 지원을 위해 2019년에 ‘양봉산업법’을 제정하여 국유림을 중심으로 아까시나무(아카시아) 등 밀원수(蜜源樹)를 연간 150헥타르(ha)씩 심기로 하였다. 북미(北美)가 원산지인 아까시나무(black locust)는 6ㆍ25전쟁 이후에 산림녹화를 위해 대량으로 심었으며, 서울 마포구 난지도(蘭芝島)에 공원을 조성할 때도 제일 먼저 심었다. 우리나라의 주요 꿀은 아카시아꿀이기 때문에 아카시아 꽃이 피는 철에는 벌들이 전국적으로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질랜드(New Zealand)의 경우 밀원수 조성을 위해 마누카(Manuka)조림지 조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마누카나무 꽃에서 채집되는 ‘마누카 꿀’은 항균작용 성분이 풍부해 ‘액체로 된 금(金)’으로 불린다. 뉴질랜드 정부의 밀원수 조림은 브랜드와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꿀 수확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채집된 꿀의 종류와 부가가치는 어떤 밀원수를 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벌꿀을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채집해 먹었다. 스페인의 한 동굴에는 인간이 벌꿀을 채집하는 모습을 그린 8천년 된 벽화가 있다. 우리나라는 약 2천년전 고구려 태조 때 중국에서 꿀벌을 가지고 와서 기르기 시작했으며, 백제 태자(太子)가 643년 꿀벌 4통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양봉 기술을 전했다. 삼국시대의 양봉은 토종벌을 활용한 것이며, 현대의 양봉(서양꿀벌, 洋蜂)은 ‘구걸근(具傑根)’이란 한국이름을 쓴 독일인 카니시우스 퀴겔겐(1884-1964) 신부가 서양 양봉기술을 가르쳤다.
꿀은 꿀벌의 면역을 높이는 중요한 먹이원으로, 양질의 꿀을 먹지 못하며 자란 일벌은 면역이 약화돼 질병과 해충에 대응하지 못한다. 꿀벌들이 1kg 꿀을 생산하기 위해서 거치는 꽃은 약 400만 송이이며, 총 이동거리는 140만km이다. 꿀벌의 행동반경은 직선거리 2km 정도로 꽤 먼 곳까지 날아간다. 이에 꿀벌의 식량인 화밀(花蜜, 꽃꿀), 즉 꿀을 분비하고 화분을 공급해주는 밀원식물의 수를 늘여야 한다.
‘꽃꿀’을 ‘벌꿀’로 만드는 과정에서 벌의 소화효소가 꽃꿀을 만나면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는 식품이 된다. 꿀은 코, 인두, 후두 감염성 염증 질환에 효능을 보인다. 또한 풍부한 미네랄과 비타민 덕분에 피로 회복, 피부질환에도 효과가 좋다. 술 마신 다음 숙취(宿醉)해소용으로 꿀물을 마시기도 한다. 꿀은 개봉 후에 직사광선을 피해 상온에서 보관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벌이 꿀을 빨아 오는 원천이 되는 식물이 많은 지역의 감소 등으로 벌떼 전체가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이 발생하고 있다. 2006년부터 군집붕괴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는 2015-16년 벌떼가 28.1%가 감소했다. 현재 지구촌 야생 벌 약 2만 종 가운데 4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쯤 꿀벌이 멸종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꿀벌이 멸종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2017년 12월 유엔(UN)은 벌을 보호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하여 매년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로 제정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매년 8월 셋째 주 토요일을 ‘꿀벌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토론과 투표로 꿀벌•플랑크톤(plankton)•박쥐•균류•영장류(靈長類) 등을 ‘지구상에서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될 5종’을 선정했으며, 꿀벌이 1위로 뽑혔다.
꿀벌 소실은 단순히 벌꿀(honey)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의 71%는 꿀벌을 매개로 수정(受精)을 한다. 농촌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주요 작물 75종 가운데 39종이 꿀벌을 통해 화분매개가 이뤄진다. 이에 꿀벌이 멸종하면 농산물 생산량이 지금의 29%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농작물 중에서도 사과, 딸기, 양파, 당근, 호박 등은 90% 가까이 꿀벌의 꽃가루받이에 의존하고 있으며,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E가 풍부한 아몬드(almond)는 무려 100% 꿀벌이 꽃가루받이를 해준다. 우리가 좋아하는 과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한 4가지는 햇빛과 물, 영양분, 그리고 꽃가루받이(pollination)를 해주는 꿀벌이다.
꿀을 찾아 꽃 안으로 들어간 꿀벌이 꽃가루를 몸에 묻히고 다른 꽃에 있는 꿀을 먹기 위해 이동하면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을 만나 암술대를 통해 밑씨(ovule)를 만나 수분(受粉)이 되면 씨앗이 생기고 열매가 맺힌다. 이에 꿀벌이 없어진다면 이런 식품들도 같이 사라질 수 있다.
요즘 농가에서는 꿀벌 실종 사태로 인하여 꽃가루받이(수분)에 필요한 꿀벌 공급이 부족해 애를 태우고 있다. 국내 수박재배 농가 가운데 약 90%가 꽃가루받이에 꿀벌을 이용한다. 3월 중순에 수박재배 비닐하우스 한 동당 꿀벌 봉군(蜂群) 한통을 넣어야 하는데 필요량의 절반도 구하질 못하고 있는 농가들이 많다. 대략 꿀벌 2만마리가 1개 봉군을 이루고 있다. 꿀벌을 구하지 못하면 외국인 근로자(일당 18만원)의 손으로 일일이 꽃가루받이를 해야 한다.
열매채소는 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게 사람 손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또 기형 발생을 줄이고, 당도(糖度)가 높은 열매를 생산할 수 있어 상품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에 국내 수박농가의 90%, 참외농가의 80%가 꿀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를 하고 있다. 사과, 자두, 복숭아 등 과수농가고 마찬가지다. 따라서 작물 수정을 돕는 꿀벌이 없으면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마이어 교수는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The Lancet)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한 해 142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먹이 사슬에 영향을 미쳐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 붕괴될 수 있다. 즉 대부분의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사라지고, 그러면 초식동물(草食動物)이 대규모로 멸종될 것이다. 또한 벌을 먹는 새들도 사라지고, 초식동물을 먹는 고등 동물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穀物自給率)은 22.5%로 세계 최하위를 맴돌고 있다. 이에 수입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밥상 물가에 타격을 준다. 우크라이나(Ukraine)의 곡물자급률은 302.8%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하자 시리얼, 소면 등 곡물 가공식품도 가격이 치솟고 있다. 최근 5개월간 전년 대비 3%대 물가 상승이 이어졌으며, 우크라이나 사태로 10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했다.
꿀벌의 실종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벌집에서 꽃가루, 밀랍, 애벌레 등을 수집하여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은 꿀벌을 해치는 해충, 즉 꿀벌의 몸에 붙어 피를 빨아들이는 진드기와 꿀벌의 몸 안에 사는 기생충 등을 관찰해 봐도 특별한 차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군집붕괴현상이 나타난 벌통의 벌들은 여러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고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사실은 발견할 수 있었다.
산업화된 농장으로 아주 넓은 땅에 한 가지 작물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장에서 자라는 벌들은 한 가지 꽃의 꿀만 먹을 수밖에 없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더 큰 문제는 농장에서 해충으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농약(農藥)을 많이 사용한다. 실험실에서 꽃가루를 관찰한 결과, 평균 다섯 종류의 농약 성분이 발견됐으며, 많게는 열일곱 종류의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물론 벌을 기르는 양봉농가에서도 벌을 괴롭히는 진드기를 없애려고 농약을 쓰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꿀벌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범인이 무엇인지 명학하게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농약과 바이러스, 환경 변화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이 합쳐져서 꿀벌이 살기 힘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과다 농약 살포, 환경오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꿀벌의 집단 실종이 발생했다고 본다.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한 원인에 살충제(殺蟲劑)로 인한 불면증(不眠症)도 추가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톨대학(University of Bristol) 제임스 호지 교수 연구진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곤충도 수면의 질이 건강과 장기 기억 형성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꿀벌은 사람과 생체주기가 비슷하여 하루에 5-8시간 잠을 잔다.
꽃을 찾기 어려운 밤에는 잠을 자야 하는데, 살충제로 인하여 생체 주기가 손상되면 한밤중에 일어날 수 있으며, 어두운 밤에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꿀벌은 생존이 힘들 수밖에 없다. 살충제에 노출된 꿀벌들은 날갯짓을 덜하고 꽃가루 수집량도 평소의 절반에 그쳤으며, 애벌레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다.
벌의 멸종위기 원인 중에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로 꽃이 피고 지는 기간이 짧아져 꿀벌이 꿀을 모을 수 있는 기간도 짧아져 생존권이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봄철 기온이 여름처럼 높아 아카시아 꽃이 조기 개화했고, 개화기간은 10년 전과 비교해 10여일 단축됐다. 개화기인 5-6월에는 저온, 강풍, 강우로 꿀벌이 꿀을 수집하기 어려웠다.
농업분야에서 꿀벌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양봉상업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양봉농가는 양봉을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라 생태계의 파수꾼인 꿀벌을 관리한다는 성숙한 직업정신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국민도 양봉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여 양봉농가와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간도 멸종할 것이다”고 말했다. 꿀벌이 일으키는 경제적 가치는 우리나라에서만 6조원에 달한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꿀벌의 적정 개체 수 확보를 위한 증식 노력과 서식지 보존, 농약 위해성 등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꿀벌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