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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꽃으로 들썩입니다. 호들갑으로 들었던 꽃 멀미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날들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 강변에 오늘은 색다른 한 무리의 꽃들이 어우러집니다. 시 주관으로 열리는 ‘평생학습축제’장을 찾은 사람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예쁜 꽃도 자꾸 보면 싫증나는데 사람꽃은 볼수록 예쁘다고 하시던 옛 어른들 마음도 헤아려집니다. ‘사람’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대상이 그만큼 소중해진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지요. 꽃과 사람으로 북적이는 축제장에서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백일장에 참가하신 어르신들입니다. 그분들의 잔치인 ‘문해백일장’은 축제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종목 중의 하나거든요.
그것은 까막눈에서 해방된 어른들이 새로 익힌 우리말 실력으로 글재주를 겨루는 행사입니다. 우리 지역에는 글 배울 기회를 놓친 어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습니다. 종교단체나 복지센터 찾아가는 한글교실 등 ‘문해교육기관’이 그것입니다. 수강생들이 모두 여성인 것은 남녀차별이 심한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이겠지요. 딸로 태어났기에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아들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한 노동으로 허리가 휘어진 누이. 자식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느라 손에 물마를 날 없었던 엄마. 늙고 병들어서야 서러운 일생이 한이 되어 한글 공부를 시작한 어르신들입니다.
백일장을 주관하는 기관의 봉사자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사용할 필기구와 원고지 간식 등을 준비하고 작품을 심사하고 시상을 돕는 것이 오늘 할 일이예요. 참가자는 일흔부터 아흔이 넘은 나이까지 70여 명의 할매들입니다. 백일장이라지만 글제를 따로 정하지는 않았어요. 자유주제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교사들의 요청이 있었거든요. 운문과 산문으로 나누는 여느 백일장과는 달리 각자의 수준에 맞게 예쁜 글씨쓰기와 삼행시, 그리고 글짓기 중 하나를 골라 쓰도록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나눠준 연필로 원고지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행복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참가자가 가장 많은 분야는 애국가 1절을 베껴 쓰는 ‘예쁜 글씨쓰기’였어요. 글자를 온전히 알지 못해서인지 베껴 쓰는 데도 맞게 쓴 것들이 드물었습니다. ‘삼행시’를 쓴 참가자가 두 번째, ‘글짓기’를 택한 어르신은 의외로 적더군요. 글짓기에 도전한 분들은 비교적 우리글 실력이 좋았습니다. 손자에게 편지를 쓰며 감격한 이야기. 은행에서 자신의 힘으로 돈을 찾고 택배용지에 아들딸의 주소와 이름을 쓸 줄 알게 된 기쁨. 자신이 타야 할 버스번호를 익혀서 스스로 그 번호판 앞에 가서 기다린다는 자신감. 거리에 늘어선 간판을 읽으며 느끼는 행복감이 나이든 소녀들의 글에 보석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오늘 최우수 작품은 ‘인생사’를 주제로 쓴 삼행시였어요.
‘(인) 인물 좋다고, (생) 생각했는데, (사) 사진을 보니 늙었다.’
짧은 문장에 말하고자 하는 뜻이 명쾌하게 드러나 있는 글이지요? 제대로 글을 배웠다면 이름 있는 시인이 되었을 재주라며 심사에 참여한 모두가 안타까워했답니다. 산문을 쓴 분들의 이야기는 진정성 면에서 웬만한 작가도 따르지 못할 명작들이었어요. 배움에 때가 있다면 나이보다 꼭 필요한 순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절을 잘 만나서 제 나이에 글을 익힌 나에게는 배우는 기쁨이 그렇게 절절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새로 배운 글자로 일기와 편지를 쓰는 참가자들. 일상에서 얻는 느낌을 글자로 표현하며 글 쓰는 행복에 젖는 할머니들. 배우지 못한 한을 풀고 새롭게 태어나는 즐거움을 행간마다 쏟아내는 작가들. 문맹에서 깨어난 기쁨과 긴 세월 상처 받은 사연들을 작품 속에 깨알같이 쏟아낸 어르신들의 고백에 흠뻑 젖었던 시간이 좋았습니다. 어린이 마음이 좋은 글을 쓰는 바탕이라는 것을 배운 귀한 시간이었지요. 글에 순위를 정하고 진행을 돕는 봉사자라는 것을 잊고 글속에 빠져 보낸 봄날이었습니다.
산과 들과 강변이 온통 꽃 천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꽃들이 향기와 자태를 뽐낸다고 해도 오늘의 으뜸 꽃은 할매들입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뒤늦게 밝은 세상을 만난 늦깎이 학생들. 잔치마당을 빛낸 그분들이 남은 날들도 꽃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 최 현숙